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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Apr 27. 2021

오너의 솔선수범, "정답"일까요?


솔선수범이 정답인 줄 알았습니다.

타인들과의 관계에서는 알아도 모르는 체하고 어려운 일에는 늘 앞장서서 나서야 하고

훌륭한 리더는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에 와서 알게 되었답니다.




 저는 출근이 매우 이른 편입니다.


보통 의료기관은 진료 시작하는 시간이 9시 또는 9시 30분입니다.

저희는 9시 30분 시작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아침에 7시 50분까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대체로 이 시간입니다.


처음 개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어릴 때부터 아침이 일찍이 기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른 출근을 하죠.


처음 한의원을 개원하고 설레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무엇보다도 일찍이 출근해서 직원들이 나오기 전에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하는 등 진료 준비를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직원 선생님들이 출근하면 청소도 하고 진료 준비하는 등 필요한 것을 하겠지만,  

당시 저는 청소는 직원들 만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의원 원장이랍시고 직원들이 청소하는데.. 모르는 체하는 것도 좀 미안했고.

함께 하면 서로 유대감도 형성되고, 권위의식이 없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 하. 하


직원들보다 먼저 출근해서 청소부터 해놓는 원장.

직원들 입장에서는 고마울까요? 불편할까요?



한의원 수도가 터졌습니다.


개원 첫 해,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기쯤 한의원 수도관이 터졌습니다.

새벽 4시 조금 안된 시간, 다급한 전화 벨소리는 건물 관리소장님에게서 온 호출 전화였습니다.

희읍스름히 밝아오는 하늘가의 안갯속을 뚫고 한의원으로 달려가니 한의원 옥상 제약실에서부터 물이 콸콸 흘러 2층 안내데스크와 복도로 넘치고 있더라고요.


근처의 직원에게 전화해서 깨울까 하다가 곤히 잠들어 있을 어중간한 시간이라,

미안해서 그냥 혼자 바닥 물을 다 퍼내고 쓸고 닦고 하니 출근시간이 되었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출근한 직원들은 원장이 새벽에 나와서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고

관리소장 아저씨만 "아이고야... 아이고야.." 하는. ㅎㅎ


자초 지중을 듣고 난 후, 전화 주시지 왜 혼자 하셨어요? 하지만,

물론 진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뭐 혼자 처리한 것이 기분 나쁘거나 억울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당시 제 진심입니다.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직원들이 고생하기보다 한 사람이 나왔으니 내가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죠.


새벽에 혼자 나와서 일을 처리한 원장

직원들 입장에서는 고마울까요? 불편할까요?




직원들과 수다 떨며 밥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직원들과 머리 맞대고 수다 떨며 점심 식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시간에 진료와 상관없는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직원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합니다.

우연히 직원들에 대해 모르던 부분을 알 수도 있고 직원들도 원장에 대해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서요. 그렇게 되면 진료상의 문제든, 기타 관계상의 문제든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방법을 찾고 한다면

직원들과 원장과의 관계도 편안해지고, 직원들의 직장생활도 즐겁지 않을까 생각되어서요.


매일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고 싶은 원장

허물없이 대화 나누고 싶은 원장

직원들 입장에서는  고마울까요? 불편할까요?



정답은?

 

정답은 뭘까요? 정답이 있나요?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서 저는 지역 한의사들과의 모임에도 나가는 등 지역에 적응하게 됩니다.

어느 날 한의사 동료들과 식사를 하던 중.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많이 궁금하신 것 같더라고요. ㅎㅎ


한의원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직원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등 별치 않은 이야기로 이어져 가던 중.

이른 출근에 대한 이야기,

직원들 출근 전에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한다는 이야기,

매일 직원들과 점심 식사한다는 이야기 등.

제 입장에서는 나름 한국사회에 잘 적응한다는 표현 인양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이야기했겠죠.


어쩌면 제 마음에는 자랑스러움이나 뿌듯함이 있었겠지만 들으시는 분들의 마음에는 교만함으로 비쳤을 수도 있었을 듯합니다만, ㅎㅎㅎ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솔선수범이나 편안한 관계 같은 건 다 필요 없고.


직원들은 원장이 가능한 늦게 출근하고 빨리 퇴근해서 눈앞에서 사라져 주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다고요.

이른 아침 출근해서 청소다 해놓으면 원장 입장에서는 좋을 수 있겠지만 출근해서 그걸 알게 되는 직원은 마음이 너무 불편할 것이고, 원장의 그 행동이 고마울 수가 없다고요.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고요. ~`

하하.. 그러고 보니 이해가 다 되더라고요..


솔선수범이 반드시 정답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원장과 직원들이 편안하게 지내면 좋기도 하겠지만

일찍 출근해서 청소해준다고 해서 꼭 편안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건 아니고

원장의 행위가 늘 고마움은 아니라는 것을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직원들을 편안하게 하려고 했던 제 나름의 행위들이

직원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민망했답니다.

엄청 후회했고 부끄러웠고 미안했어요. ㅎㅎㅎ


결국 이후 저는 방법을 바꾸었답니다.

이른 출근은 사실 어릴 때부터의 습관이라 바뀌는 건 쉽지 않지만요.


일찍이 출근해도 청소는 하지 않는다는 것.

탱자탱자 놀 지언정 직원들 청소하는데 기웃거리지 않는다는 것.

대신,

원장실 책상의 물걸레질은 꼭 원장이 한다는 것으로요.


직원들도 재롱으로  받아주더라고요. ㅎㅎㅎ


함께 일했던 우리  선생님들, 정말 고마웠답니다.






Image by Joseph Mucir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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