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꼭 받아야 하나요?
마이너스 통장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은행에 그대로 반납하고 한의원 개원 후 홍보도 하지 않고, 어찌 보면 순수해 보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개원 후 홍보가 없으니 오히려 한의원 근처 주민들은 잘 몰라도 지인들이 와주시는 덕에 그럭저럭 견뎌갔습니다.
개인 사업체를 운영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던 저는
한의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어떤 조건으로,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을 선택해서 뽑아야 하는지도 몰랐고,
간호사들이 어떤 일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급여는 어느 정도 책정해서 어떻게 지불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근로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하고 한의사와 직원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도 몰랐고,
더군다나 세무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등 모든 것을 모르는 그냥 흰 가운만 입은 의사였습니다.
오직 자신감 넘치게 가지고 있었던 건 환자에 진심을 다하겠다는 무용의 마음 하나뿐이었습니다.
병원에 환자들이 많아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에서 온 의사가 진료하는 한의원이라는 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고
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을 받게 됩니다.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질문이 " 병원에 환자들이 많아요?"입니다.
이 질문이 타당하지 않다고 느꼈던 이유는 병원에는 당연히 환자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병원에 환자가 없다는 것은 아픈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건강한 사회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정말 얕은 생각이었던 거죠. 한 면만 보고 다른 면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걸까.
미안하지만 지극히 성립되어서는 안 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당시에는요.~ 하. 하. 하. 참 미안하네요.
진료비 안 받으면 안돼요?
"진료비 안받으면 안되요?"
진료비는 왜 받아야 하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이니 치료받으면 당연히 돈을 받아야겠지만 65세 이상의 노인분들에게서 돈을 받는다는 것이 정말 내키지 않았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65세 이상분들에 한해서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건강보험상 일정 금액 이상은 진료비를 올리지 못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치료를 하든 늘 1.500원까지만 받을 수 있습니다.
간혹 1.300원이나 1.400원일 때도 있지만 1.600원이나 1.700원일 때도 있거든요.
사실 진료비 100원 200원 차이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분들이 생각 외로 많으시거든요.
꼬깃꼬깃 해진 돈을 괴춤에서 꺼내서 지불하실 때의 표정을 살피면서 늘 마음이 미안하고 조마조마했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돈 안 받고 치료해드리고 싶은데..
진료비를 지불할 여력이 있으면 받고, 그렇지 않은 환자분들은 그냥 치료해주고 싶은데.
의료법상 환자 유인행위에 해당하니 그럴 수도 없는거죠.
진료비 받는 것이 늘 괴로웠습니다.
점심값과 같은 의미
진심으로 괴로워서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내 마음이 늘 불편하고 미안하고 괴롭다고요.
그러자 친구가 뜬금없이 묻더군요.
" 너 점심은 근처에서 사서 먹어?"
"응"
"점심값은 얼만데?"
"글쎄.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6.000원~6.500원 정도 하지"
"왜 돈 그렇게 많이 줘? 3,000원 정도에 달라고 하지?"
"어떻게 그래? 그분들도 먹고살아야지~"
" 그렇지, 바로 그거야. 내 생각에는 점심 한 끼에 들어가는 재료값이 2.000 정도 아닐까 생각해.
하지만 우리는 6.000원 주고 사 먹어. 식당 자릿세. 식당 종업원들의 월급. 그런 거야.
병원도 마찬가지야. 당연히 돈을 받아야 하고 그 돈으로 너는 한의원 관리비 내고, 직원 월급 주고 하는 거야.
그것이 자본주의 원리인 거야. 진료비 1.500원`6.000원 받는 거 미안해하지 마.
그런 생각 계속 가지고 있으면 대한민국에서 적응하기 힘들어. 그리고 1.500원 안 받는다고 그 사람들이 너한테 고마워하지 않아. 돈은 받을 만큼 받고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면 되는 거야."
아주 깔끔하고 이해되기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무상치료의 체계 속에서만 살아왔던 사고방식, 물론 지금의 북한은 무상치료라고도 할 수 없지만 오직 그것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사고, 아픈 사람에게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 하던 사고를 돌아보면서 서서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의원 광고, 필요한 걸까요?
우선 치료하고 돈 받는 것에 대해 익숙해 지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 하기 시작합니다.
치료하고 진료비 받는 건 당연한 거야.
내 노력과 지식이 들어갔으니 미안해하지 말아야지. 미안해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마음만 가진다고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환자분들이 자신들이 내는 치료비에 대하여 아깝지 않고, 억울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하면 좋아하실까. 저렇게 하면 좋아하실 까?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면서 점차 적응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했답니다.
내가 받는 치료비로 나 스스로가 환자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 지 않도록 내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자.
그것이 환자를 대하는 마음이든, 의료행위든.
점차 한의원에 환자들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제 진료 스타일을 좋아해 주기 시작하면서 저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많은 환자분들께 나를 알려 나의 진료를 받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 나의 이 진심된 마음과 진료행위를 그분들을 위해 쏟아붇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렇게 홍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거죠.
필요한 환자분들이 많이 찾아와서 진심된 나의 마음과 함께 최선을 다하는 나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결국 한의원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것, 나를 알리는 것, 이런것이 홍보구나 하고요.
홍보는 안 한다고 하더니.
잘난 체 하더니.. 하고 비웃는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차분하게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터득했던 시간들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광고도 적극적으로 하고 치료도 열심히 하고 진료비도 제대로 받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 했었어도 결코 그것이 나쁘거나 속물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는 늘 환자가 먼저 있었고, 환자를 편안하게 하고싶었던 마음이 먼저였다고 변명하고 싶어요.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환자분에게서 받는 진료비의 무게가 귀하고 무겁고, 그 무게를 감당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최선을 다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의원을 처음 시작할 때 직원 2명 아르바이트생 1명이었습니다.
점차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한의원 직원은 8명으로 늘어났죠. 하. 하. 하.
뿌듯하고 재밌는 또 다른 느낌의 생활이 시작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