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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May 14. 2021

북한과 다른 한국의 '모텔'을 경험하며 드는 생각




남과 북.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그래서 서로 이해가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가지고 상대를 바라볼 때 상대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설사 틀린 부분이라 해도 한 번쯤 상대가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굳이 남한과 북한이 아니더라도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요?






한국에 와서 북한과 다른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당황했고 억울했고 답답할 때도 많았습니다만 정말 속상했던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왔던 북한 응원단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당시 미녀응원단이라고 불리웠던 북한응원단은 대한민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었고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때를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듯 합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사진이 찍혀있는 플래카드가 비에 젖고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 응원단은 "장군님의 사진이 젖고 있다"며 서로서로 달려가 비속에서 플래카드를 내려 가슴에 품고 눈물 흘리며 난리였습니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방영되었으며 많은 한국분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 매우 익숙되어있던 제가 보이에도 황당했고 민망했었거든요.


당시 저는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운영하는 포털사이트에 '남한 생활기'라는 코너 연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어주면서 코너는 한국 국민들과의 소통의 창구가 되어있었던 거죠.

이 뉴스가 나자 많은 한국분들이 전화로, 댓글로 저한테 "항의(??)"했습니다.


"이게 무슨 꼴이냐"

"저 행동과  눈물에 진심이 있느냐"

"가식적인 행동이 가소롭다"

"북한은 왜 저런식이냐"
"김지은 씨 답변해보세요!!" 등등.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겠죠.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플래카드를 거두어 가슴에 안았을듯합니다.


북한 응원단원들이 보였던 모습이 결코 가식이 아니라는 것이죠.

물론 개중에는 누구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들의 눈물과 행동은 진심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이기는 하겠지만 한편으로 남한국민들에게 "우리는 장군님께 이렇게 예의와 존경을 표한다"는 모습도 보이고 싶었지 않았을가 생각합니다.


그것이 북한 사회거든요.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세뇌되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정답인 줄 알고 있었고, 잘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옳은 행동이라 인지하고 있는 것 입니다. 

잘못인걸 아면서 일부러 그렇게 행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지요.


한국분들이 이해하기 힘든 상황임을 알고있습니다. 저도 그 모습이 부끄러웠고 어처구니 없었거든요, 

당시 제가 조금은 서운했던 건 많은 분들이 (당시 제 느낌으로는 온 나라가-라고 느껴지더군요)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희화하 하던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굳이 저한테 "김지은 씨, 이 상황 답변해 보세요! " 하던 이구동성의 외침,항의였습니다. 야, 당신도 한패잖아.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ㅎ


며칠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오해 받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평범했던 일상들이 한국사람들에게는 아주 이상한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이 현실이 슬펐습니다.

남과 북의 헤어져 살아야 했던 반세기넘는 세월이 슬펐습니다.

이렇게 희화화되고.조롱거리가 되는나라에서 내가 그동안 살았다는것이 억울하고. 분하고. 슬펐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다른 체제,  다른 문화,  다른 사고, 다른 생활방식으로 70여 년입니다.

같은 전통을 가진 민족이라고 하지만  다르게 살았던 70년은 많이 다른 현재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정착을 시작하고 20일 정도 되었을 때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정착 초기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도시에 주거지를 배정받았습니다. 당시 서울의대에서 소아과 세미나가 있었고 제가 토론자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소아과 의사였거든요)


세미나에 참석해본 적도 없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를 왜 부르는지도 파악이 안 되고 단지 북한의 소아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로 향했죠.

그리고 영등포역에 내렸습니다.


세미나 끝나고 바로 내려가기 어려운 상황이니 어디서든 하룻밤을 자야 하는 상황입니다. 정착교육을 받을 때 한국의 숙박시설은 호텔, 모텔, 여관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당연히 호텔은 비쌀 테고, 여관이 들어가려니 어쩐지 들어가기 망설여지고 결국 모텔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영등포 근처에는 모텔이 참 많습니다. 모텔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사람이 사는 작은 아파트인 줄 알았습니다. 숙박시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거든요.

암튼요.

한 모텔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약간 어둠침침하면서 사람도 안 보이고 조용하더군요.  

기분이 조금 이상해서 돌아 나오려고 하는데.. 접수실 안쪽에 누워있던 분이 몸을 일으키며 저를 부르더군요.


"누구세요?"

"사장님. 오늘 모텔 문 안엽니까?(영업하지 않나요 하는 물음입니다.) 숙박하려고요."

"네. 영업합니다. 혼자예요?"

"네. 혼자입니다."


혼자 예요?

무슨 질문이 이렇지?

혼자 들어온 걸 보면서 왜 묻지?
혼자 온 것이 어떤 의미가 있지?

이상한 질문이네.

그런데 다음 질문이 더 이상합니다.

"자고 갈 거예요?"


자고 갈 거냐고?

당연한 거 아니야?

나 분명 좀 전에 숙박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자고 갈 것도 아니면서 이곳에 오는 사람도 있나요?"


제 반문이 이상했던 걸까요? 아저씨는 한참 저를 쳐다보시더니 방 열쇠를 주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제가 아저씨가 있는 접수실(카운터) 옆방을 달라고 한 겁니다. 카운터로부터 멀리 떨어진 방은 외진곳이라 무서워서 옆방에 사람이 있으면 덜 무서울 거라는 생각을 한 거죠. 하. 하. 하. 

어쩌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장소를 가장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 순수함? 아니면 무지함?일까요.

 

참고로 북한은 부부가 함께 여관에 가도 남편과 아내를 다른방으로 안내합니다.

남성은 남성들끼리만.

여성은 여성들끼리만.

하.하.하.


그렇게 하룻밤 영등포역 근처 모텔에서 자고 다음날 서울의대에서 세미나 마치고 뒤풀이까지 하고 났더니 저녁시간입니다. 그제야 교수님들이 저한테 물었습니다.

"어젯밤 어디서 주무셨어요? 오늘 밤은 어디서 주무실 거예요?
저는 당연히 모텔에서 잤고 오늘 밤도 거기서 자고 내일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말씀드렸죠."


당시 저를 쳐다보시던 교수님들의 난감해하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30초 동안 모텔의 "사용 용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오늘 밤은 안된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어쩌나요? 저는 오늘 밤 하루 더 잔다고 아침에 나올 때 미리 숙박비 선불계산하고 나왔거든요.

교수님들 정말 난감해하시데요.. 가서 찾아와야 한다고요.~~

그것도 교수님 한분이 따라가면 모텔에 여자와 드나드는 모습이 누군가에 이상하게 찍힐 수 있으니 교수님 두 분과 함께 서울의대에서 영등포 모텔까지 가서 선불했던 숙박비 (35.000) 찾아가지고 그날 저녁은 이화여대 교수님 댁에서 자고 지방에 내려갔습니다.


모텔,

숙박 시설인 건 맞죠.

필요에 따라 출장 가면 자게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합법적이지 않은 용도로 사용되는 것도 현실입니다. 당시 제가 살던 지방은 학교 옆에 모텔이 지어지고 있었고 그 옆에 플래카드도 걸려 있었습니다. 학생 교육에 좋지 않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어지고 있죠.

모텔을 찾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의미겠지요.


당시 저는 모텔의 사용용도가 이런 이유(~**~) 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어지고 있다는 것(당시입니다~)은 모텔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불륜관계"인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모텔문화를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쩜 그 반대일 수도요.

그만큼 모텔은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크죠.

제 입장에서도

한국사람들은 바람 많이 피우나 봐. 이런 모텔들이 장사가 잘 되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러분들의 감정은 어떠신가요?

제가 바람둥이(물론 그렇지 않은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도 압니다만)이라고 일방적으로 지칭하면 어떤 기분일까요? 아마 대다수의 분들이  발끈하실 것 같아요.

모텔이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쭉~~ 존재하고 있었으니 특별히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북한 응원단이 보여줬던, 한국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황당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행동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표현이지요.

그렇다고 그 행동을 옹호하거나 찬양하는 것은 아님을 아시죠? ㅎㅎ


모텔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한국사람들을 싸잡아서 '바람둥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시죠? 서로 다르게 살아왔던 시간들에 의해 몸에 밴 문화가 분명히 있습니다.


비에젖는 프랭카드를 울면서 거둬내는 북한 응원단의 모습이나, 

합법적이지 않은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은 모텔문화나, 

두 상황 모두 장려할만한 행동이나 문화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북한사람들은 왜 저런 꼴불견이냐, 또는 남한 사람들은 다 바람둥이인가봐 하고 일방적으로 단정해서 지칭하는 것 도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한과 북한이 많이 다르다는것을 인지하면 이해 안되던 상황도 조금은 더 이해될수있지 않을가 싶네요.


남한이든, 북한이든 자신들만의 시스템속에서 개인이 저항못하고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살아왔던 70년의 시간을 좀 더 가깝게 줄여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남한과 북한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관계속에서도 상대에 대한 이해는 예의이고 품격이 아닐가 싶어서요.

정치와 상관없는 사람사는 관계속에서의 단상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람니다. ^^


프랭카드를 내리는 북한응원단 모습을 이해하는 것으로 북한을 이해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그 이면에 있는 , 그들이 받은 교육,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 주면 어떨가 하는 바램입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werner moser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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