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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념있는 희애씨 Mar 19. 2019

집에서 '일'하는 사람, '집'에서 일하는 사람

나는 나의 영역을 존중받고 싶을 뿐이었다.

7번째 퇴사, 그리고 프리랜서


청년실업율이 역대최고치라는 기사가 도무지 끊어질 줄을 모르는 시대에, 나는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그것도 누구나 가고 싶어한다는? '신의 직장'인 공공기관을 쿨하게 뒤로 하고 나왔다. 뉴스 리포터, 프로그램 MC, 마케터, 은행원, 공공기관의 대리까지. 참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내가 가는 길이 무조건 옳다고 믿었던 탓에 7개의 직장을 거쳤다. 누군가는 멋있다고 찬사를 보내고, 누군가는 지구력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이제 더이상은 영혼 없는 자기소개서, 이력서를 내밀기보다는 '나 자산이 브랜드가 되자'는 놀이공원 헬륨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거창한 포부를 내걸었다. 




뭐든지 내 뜻대로 해야 직정이 풀리는 나지만, 퇴사는 내 의지만으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2018년 3월, 불과 1년 전 새하얀 드레스와 검은 정장을 입고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평생을 약속했다. 결혼이라는 약속을 하고 나면 나 혼자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더라. 그것이 설사 내 개인적인 커리어에 관련된 것이라 할지라도. '함께' 나아갈 미래를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것. 이런게 결혼인 줄 알았으면 서른이라도 넘어서 할 걸 그랬나 아주 약간의 (샌드위치 만들 때 뿌리는 후추 정도의) 후회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내가 결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으니 결국은 나의 뜻대로 된 셈. 모로가도 결국 서울만 가면 된다고, 내가 서울을 올 수 있게 해 준?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감사를 표하고자 선택한 방법. 아니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한 단어로 가득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돈'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방법, '집에서 일하기'다. TV도 없는 북카페 컨셉의 거실이기에 남편이 내 몫까지 2배로 벌어오기 위해 (월급은 그대로다) 출근을 하면, 오롯이 혼자 쓰는 공간이기에 무상으로 사무실을 얻은 셈이라고 오산했다. 그야말로 큰 오산이었다. 




직접 내린 커피에 베이글까지. 딱히 음악을 틀어두는 환경을 선호하지 않는 성향에 맞게 적당히 들려오는 생활소음까지. 뭐 하나 내 입맛에 거슬리는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돈 주고 사무실을 얻어도 이보다 좋을 수는 없으리라는 착각. 그래 착각이었다. 일을 좀 시작하려고 내가 애정하는 6인용 탁자 앞에 앉자마자 빨랫감이 눈에 밟혔다. 주방이 조금 더러운 것 같기도 하고, 심지어는 내 담당도 아닌 청소기라도 한 번 돌려야 되는 것은 아닌가 마음이 무겁다 못해 이거야 원 엉덩이만 붙어있을 뿐이지 이미 마음은 평소에 하지도 않는 대청소를 12번도 더 한 상황. 사무실 임대료라고 생각하고, 아니 사무실까지 왔다갔다하는 이동 시간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고 자기 위안을 하며 빨래를 돌리고, 어제 저녁 야식의 흔적들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오전 한 때를 이렇게 보내고 나면 무엇인가 벌이가 반토막, 그 보다도 더 작게 토막난 아내로서의 죄책감을 손톱만큼이라도 씻어낼 수 있었다. 


집에 있으면서 청소기라도 좀 돌리지


적어도 퇴근한 남편이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의 한 마디는 집에서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부정하는 것, 나를 순식간에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여자'(살림은 정말 힘들다. 이 땅의 모든 전업주부를 존경한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싸우기 싫었다. 빨래도 돌렸고 설거지도 했다는 애교 섞인 말로 환기를 하려 했지만, 이건 뭐 아기 돼지 삼형제의 막내가 지은 벽돌집도 그 순간의 냉랭한 분위기보다는 물렀을 것 같다. '하루종일 살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청소기 한 번 쯤은 돌릴 수 있지 않느냐'. 남편의 머리와 마음의 소리가 따로였다.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지만, 결국 몸이 '집'에 있었는데 '집'의 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마음의 소리. 물론 평소에 남편이 나보다 훨씬 많은 살림을 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말부부였기에 집안일을 남편이 더 많이 하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응당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남편의 태도 변화는 그저 나의 업무 장소가 '집'으로 바뀐 것 때문일까?


나는 그저 집에서 '일'을 하고 싶은 것 뿐인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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