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 보험료, 차 (13분 25초)
혼인신고, 보험료, 차라는 세 가지 단어를 포함하여 13분 25초 동안 써낸 단편 소설입니다
우린 대화가 필요하다는 문자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 들어왔다. 그러게 말이다. 나야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속으로 도통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서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3개월째 대화를 거부하더니 갑자기 점심시간이 지나서 떡하니 문자로 대화를 통보하는 이레였다. 방식이 딱 그녀 다웠다.
“그러니까, 혼인신고를 왜 미루자는 건데?”
나는 그동안 그토록 궁금했던 질문을 내뱉었다. 매일 밤마다 삼키고 삼킨 말이었다. 퇴근을 하고 와도, 함께 밥을 먹어도,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도 와이프는 나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대화하자더니. 또 말이 없다. 대체 무슨 대화. 또 혼잣말이나 중얼거리겠지. 나 혼자.
이레는 대답 없이 평소에 좋아하던 꽤나 값비싼 찻잔에 따듯한 보이차를 두 잔 가득 따랐다. 나는 그녀의 이런 점이 답답했다. 할 말이 있어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닌가? 그것도 근무 시간에?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국성준.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팀의 막내 성준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고 뛰쳐나온 참이었다. 분명 업무에 차질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전화를 받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전화받아도 돼.”
“안 받아. 너랑 대화하려고 왔잖아.”
얼른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에 손끝이 떨렸다. 혹시 너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걸까, 아니면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헤어지자고 하는 걸까.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이 가질 않아서 자꾸만 속이 탔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 입술은 차를 마시는데만 집중했다.
나는 사실 이런 과묵함과 신비로움이 때로는 좋았다. 연애할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이런 점이 나랑 꽤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결혼하면 상대방의 장점이 단점이 된다던데, 그 말을 여실히 깨닫는 결혼생활이었다. 30분이 지나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번 달까지 이렇게 대화를 거부하면 갈라서자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상상만 백만 번 했다.)
“말 안 할 거야? 근무시간에 사람 불러다 놓고 뭐 하는 짓이야. 진짜.”
“보험료. 아니면 오빠 인생.”
“뭐?”
“나 아프대.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
".. 아프다고? 어디?“
“혼인신고 하면 나중에 재혼할 때 복잡할까 봐. 그래서 그랬어."
이레는 어색할 때 짓는 특유의 쓴웃음으로 넋 나간 내 표정을 똑바로 응시했다.
연애할 때 그녀가 말했던 나의 장점은 눈치가 빠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랑 혼인신고 하고 보험료 받을래, 아니면 오빠 인생 찾아서 떠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