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삼촌

-심장박동, 리듬, 파란색 (30분 10초)

by 시니정 Nov 27. 2024
아래로


심장박동, 리듬, 파란색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포함하여 30분 10초 동안 써낸 단편 소설입니다.

오늘은 삼촌이 알콜 중독으로 결국 세상을 뜬 지 5년쯤 지날 무렵이었다.

엄마는 삼촌 얘기만 나오면 ‘그놈의 술’이라며 술을 원망하다가 끝내 울고 말았다. 겨울이 와서 코끝이 시리면 원하지 않아도 꼭 그날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삼촌과 거의 연을 끊다시피 살다가 그가 알콜 중독 치료센터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겨우 안도했다. 그리고 엄마는 곧바로 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병문안을 가자고 했다. 해독기간이라 예민할 수 있다는 의료진들의 말에 삼촌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엄마는 입원까지 결심한 삼촌이 기특하다고 자꾸만 읊조렸다. 그러다 술에 중독되기 전 멀쩡한 삼촌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집에 오는 내내 차에서 눈물을 쏟았다.

술을 마시면 엄마한테 죄짓는 기분이 들어 대학에 입학하고도 술자리에 가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삼촌이 세상을 떠나자 암묵적으로 술과 멀어졌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그러자고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으나 모두가 그 룰을 쉽사리 어기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신입생의 타이틀은 많은 걸 잃게 했다. 선배들은 물론이고 동기들도 좋아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나를 술자리에 부르는 사람들은 없었고, 그때부터 나는 혼자가 편했다. 유진을 만나기 전까지.

그런데 유진의 아버지가 술을 권했다. 유진과 4년을 만났지만 아버지를 뵌 건 처음이었다. 인사드리러 가자고 하면 매번 말을 돌리던 그녀였다. 결혼 생각이 없으면 그만하자는 말을 하니 그제야 나를 집에 초대했다.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인 만큼 연차까지 쓰고 정장에 구두, 현대백화점에서 산 과일 바구니와 한우 세트를 양손 가득 들고 갔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는 떨리는 마음에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집에 들어서니 하얀 난닝구에 파란색 체크무늬 사각팬티 차림의 그가 보였다. 대낮부터 빨간 뚜껑 참이슬을 두 병째 마시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노래에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꼭 마지막으로 본 삼촌의 모습이 생각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님. 하성준이라고 합니다.”

“우리 유진이랑 결혼하겠다고? “

앉자마자 웬 식당용 맥주잔에(어디서 가져왔는지 궁금할 만큼 뜬금없었다.) 소주를 가득 따라 주며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을 보고 유진은 곧바로 화를 냈다.

“아빠, 남자친구 술 못 한다니까.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진짜 왜 그래? “

그는 정확히 유진이 ‘술을 못 한다’는 말을 내뱉을 때 눈살을 찌푸렸다.

“술을 왜 못 마셔? 머스마가 사회생활도 안 해?”

“요즘 그런 게 어딨어. 그만해. 아빠. “

“사정이 있어서 못 마십니다. “

“무슨 사정? 이거 한 잔도 못 마시면서 무슨 우리 유진이랑 결혼이야 결혼은. “

“아.. 진짜 아빠!”

참다못한 유진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더 이상 밉보이고 싶지 않아 그가 따라준 소주를 원샷했다. 유진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말렸지만 그의 마음을 얻지 않으면 힘들게 분명했다. 내가 원샷하자 그는 물개 박수를 치며 곧바로 날짜는 언제로 잡을 거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대답도 하지 못했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부터 해병대 시절 얘기까지 쭉 늘어놓기 시작했다.

신난 그와 달리 나는 점점 온몸에 열이 오르더니 숨소리가 가빠지고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그에게 취한 걸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알콜 냄새에 쓴 맛 나는 이 투명한 액체를 왜들 그렇게 사랑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니 그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성준아. “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보니 삼촌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8년 만이었다.

월, 목, 토, 일 연재
이전 09화 플로리스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