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냉증, 배고픔, 아침 (29분 42초)
수족냉증, 배고픔, 아침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포함하여 29분 42초 동안 써낸 단편 소설입니다.
“내일 아침에 몇 시에 나가?”
문기가 씻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물었다. 문규는 집에서 시험장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미리 계산해 놨다. 6시 30분쯤 일어나서 대충 씻고 7시 안에만 역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될 것이었다.
“늦어도 6시 45분에는 나가야 돼.”
“데려다줘?”
“형이 웬일이야?”
“닥치고. 데려다줘 말아.”
“회사 안 늦어?”
“더 빨리 나가면 되지.”
“아냐 됐어. 괜찮아. 버스 타고 가면 돼. “
“뭘 됐어. 그냥 타고 가. 이번엔 꼭 붙고. 떨지 말고. “
문규는 문기가 참 희한했다. 그간 네 번의 고시 시험을 보는 동안 부지런히 눈치를 줬었다. 두 번째 시험에 떨어졌을 때, 다른 직업도 많다고 직설적이고 현실적으로 쏘아붙였다. 부모님은 시험 계속 보라고 응원해 주시는데 형은 왜 그러냐며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문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널 생각해서 말해주는 거야. 이런 말 내가 아니면 누가 해주겠어. “
위로랍시고 폭언을 쏟아내는 형과 다시는 말도 안 섞겠다고, 고시에 합격하면 바로 따로 살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세 번째 시험도 보기 좋게 낙방하고 말았다. 떨어졌다는 걸 알게 되고 문규는 그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피시방에서 평소에 못 했던 게임을 실컷 하고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다가 문기가 출근할 때쯤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시험 때문에 꺼놨던 휴대폰도 다시 켜지 않은 채 그날 하루를 밖에서 보냈다. 아침 여덟 시 반이 되자 문규는 슬슬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찜질방 수면실은 바로 옆에서 오토바이 시동을 건 마냥 누군가의 코골이 소리에 시끄러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팠다. 서둘러 집에 돌아가 싱크대 상부장에 하나 남아있을 육개장 컵라면을 먹을 생각이었다.
오직 육개장 컵라면 하나로 문규는 신이 났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입맛이 뚝 떨어지고야 말았다. 이미 출근을 하고도 남았을 문기의 신발이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소파에 문기가 떡하니 앉아있었다. 숨을 가다듬고 오늘 회사 안 가냐고 태연하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야. 너 휴대폰도 꺼놓고 집에도 안 들어오고 뭐 하는 짓이야?”
먼저 선방을 친 건 문기였다. 문규는 할 말이 없었다. 마주치기 싫은 것. 그뿐이었다. 이쯤 되면 솔직하게 말할 때도 됐다 싶었다.
“시험 떨어지면 형이 또 면박 줄 거 아니까 오기 싫었어. 왜?”
“그렇다고 애처럼 그렇게 잠수를 타냐? 엄마 걱정하시니까 전화 한 번 드려.”
문기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회사 동기라고 익히 들었던 도현과 통화를 하는 듯했다. 집안일이 해결되어 이제 출근을 할 수 있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문규도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곧이어 문기가 나갔는지 도어락 소리가 들려왔다.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부재중 전화 53건과 수십 개의 카톡이 와있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문기였다. 통화 목록 속 빨간 글씨로 띄어진 엄마라는 글씨를 엄지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엄마는 문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대뜸 눈물을 쏟아냈다.
“잘 있었으면 됐다. 문기한테 미안하다고 꼭 하고..”
수족냉증이 있는 문기가 새벽 내내 문규를 찾아다녔다는 게 이유였다. 문규는 형이 어릴 때부터 수족냉증이 심해 고생한 것을 알고 있었다.
“왜 그랬대.”
문규는 괜히 침대 머리맡에 앉아 발끝만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사건 이후로 문기는 문규의 고시 시험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토록 바랐던 격려를 해주니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네 번째 시험에 떨어진 날에는 함께 치맥도 먹고 문규가 좋아하는 시리즈의 영화도 봤다. 심지어 다섯 번째 고시 시험 전날엔 웬걸 시험장까지 데려다준다던 문기였다. 시험 당일날 아침이 되자 문규는 얼떨결에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운전하는 형의 옆모습을 보며 문규는 이번 시험은, 꼭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