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차, 벚꽃 (25분 30초)
양배추, 차, 벚꽃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포함하여 25분 30초 동안 써낸 단편 소설입니다.
생각해 보면 도현은 늘 누군가를 미워했다. 미워함을 넘어서 증오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주기마다 달랐다. 마지막 증오의 화살은 결국 매일 얘기를 들어주던 아영에게 갔다.
“난 벚꽃이 싫더라. 요 앞 사거리 벚꽃 시즌에 차가 너무 막혀.”
도현의 화법은 보통 이랬다. ‘싫다.’가 기본이었다. 무언가 좋다고 하는 말보다 싫다고 하는 말에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예쁜 것들을 예쁘게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것인지 도현을 통해 깨달을 정도였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며칠 내내 그 사람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그건 아영과의 장거리 연애도 소용없었다. 한 달 만에 보는 여자친구의 근황보다 자기가 회사에서 겪었던 일이 더 중요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싫은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게, 걔가 잘못했네.”
어느 순간 아영의 대답은 하나로 통일됐다. 걔가 잘못했네. 이 말 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아영은 편협한 시각에 민감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모두 도현이 증오하는 대상이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걸 진작에 알았다. 그렇지만 둘은 연인 관계였으므로 아영은 대체로 도현의 편을 들어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도현의 회사 동기인 문기가 했던 말이 화근이었다. 매일 점심을 함께 먹던 문기가 도현의 식습관에 대해 지적을 했다고 했다. 쩝쩝거리는 소리 때문에 사실 너무 힘들다고, 조금 조심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본 모양이었다.
아영은 왜 하필 한 달 만에 만나는 데이트 당일날 문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또 그 의견에 공감이 가는 게 문제였다. 사실 아영 또한 도현이 음식을 먹으며 쩝쩝거리는 것 때문에 만날 때마다, 함께 데이트를 하며 식사를 할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아영은 애써 넘겼지만 문기가 콕 집어 얘기를 했다니 참 용기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러게, 걔가 잘못했네.”가 나오질 않았다.
“암튼 그 새끼 너무하지 않아?”
입 안 가득 소스에 버무려진 양배추를 씹으며 도현이 말했다. 입술 양 쪽 끝에는 직전에 먹은 등심 돈가스의 튀김 가루가 몇 개 붙어있었다. 아영은 더욱 말문이 막혔다. 들고 있던 젓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남 얘기 좀 그만하면 안 돼? 특히 그 욕. 남 욕하는 거.”
이런 말을 처음 했던 터라 도현의 표정이 금세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영은 옆 의자에 놔뒀던 가방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하는 거냐고 묻는 도현을 뒤로한 채 가게밖을 나서 주차된 차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차에 올라타니 한숨이 절로 났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지쳐왔던 아영이었다. 차에 시동을 거니 뛰쳐나오는 도현의 모습이 백미러에 비쳤다.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고 도로에 진입하자 마음이 편안했다. 창문을 열어 긍정적인 공기를 만끽했다. 왼쪽 손을 뻗자 벚꽃 잎 하나가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