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튼, 안착, 손톱 (22분 27초)
커튼, 안착, 손톱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포함하여 22분 27초 동안 써낸 단편 소설입니다.
이제는 손톱의 색마저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빠졌던 엄지발톱도 자라기는커녕 호전이 되질 않았다. 주말 오후에는 병원에 가보려고 나갔다가 햇빛이 닿자 피부에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고통을 느꼈다. 말 그대로 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집안 대대로 튼튼한 이와 잇몸은 한 시간 간격으로 욱신거렸다. 이러한 증상들로 아무리 구글링 해봐도 영화나 드라마 리뷰와 줄거리만 나왔다. 도진 본인이 생각해도 콘텐츠에서나 볼 법한 드라큘라 혹은 좀비들의 증상이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허구잖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도무지 가늠이 안 갔다.
도진은 억울했다. 직업이 교사인터라 매일 학교와 집 그리고 헬스장만 드나들었다. 그토록 원했던 교사 일이 생각보다 맞지 않아 긴 시간 동안 힘들어했다. 이제야 어느 정도 안착하게 되었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화도 나고 눈물도 났다. 정확한 증상은 지난주 수요일부터 시작되었고, 금요일에 병가를 내고 그 이후로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낮에는 빈틈없이 암막 커튼을 치고 밤이 돼서야 걷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도진이 평소에 좋아하던 치킨이나 파스타 같은 건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음식이 괜찮은 건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먹는 음식 자체가 역했다. 먹을 수 있는 게 없으니 몸은 점점 말라갔고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간 집에서 고독사를 당할 게 뻔했다. 이걸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연락처를 뒤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임민정 선생님’
다다음주 토요일은 직장동료인 임민정 선생님의 결혼식이다. 캘린더에도 적어놓고 기억하고 있었다. 몸이 이상해서 축의금만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오는 전화는 예상외였다. 왜 전화가 왔지. 도진은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액정 빛에 비친 손톱은 더욱 혐오스러웠다.
“여보세요?”
아, 목소리.
목소리가 이상했다. 도진은 중저음이었는데, 목에서는 낯선 기계음 소리가 났다. 집에서 혼자 전전긍긍 앓다 보니 말을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목소리가 변한 줄도 모르고 전화를 받아버렸다. 도진의 목소리를 들은 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도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다시 목소리를 내뱉었다.
“여보세요? 민정선생님.”
“…? 여보세요? 도진선생님?”
“네, 선생님. 저예요.”
“선생님, 많이 아프세요? 목소리가..”
“아, 지금 몸에 좀 문제가 생겨서.. 어쩐 일이셔요?”
“이번주 금요일에 선생님들끼리 청모하려고 해서... 오실 수 있나 해서 전화드렸는데…..”
“선생님. 혹시 저 좀 잠깐 볼 수 있어요?”
“지금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21시가 조금 넘었다. 사적으로 따로 만난 적은 없었던 터라 당황했는지 민정선생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도진은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해야만 했다. 민정선생님은 해결책을 찾아줄 수 있을 만큼 의리도 있고 책임감도 강한 동료였다.
“네. 부탁드릴게 좀 있어서요. 제발…“
“아…. 네.. 잠깐은 될 것 같아요. “
“저번에 선생님들이랑 회식했던 고깃집 기억나세요? 저희 동네에.”
“네, 기억나요..”
“그 앞에서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아.. 네, 알겠어요. 지금 학교 앞이라 30분 정도 걸려요.”
“…. 감사해요. 곧 봬요.”
전화를 끊고 나갈 채비를 했다. 장롱 안에 있는 모자를 꺼내다가 오른쪽 가운데 손톱이 빠졌다. 살짝만 건드리고 비틀면 달랑거리던 것이 힘을 쓰니 바로 뽑혀버린 것이었다. 몸을 움직이자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정신이 혼미하고 위가 쓰렸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도 나고 온몸에는 힘이 없었다.
도진은 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캡 모자에 목도리를 둘렀다. 전 여자친구가 임용고시 합격 기념으로 사준 회색 구찌 목도리였다. 옷은 롱 슬리브와 기모 바지를 입었다. 밖은 한여름이라 체감 온도가 33도라고 하던데, 어제부터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며칠 만에 집밖으로 나온 건지 바깥공기가 어색했다. 밤에 나오니 살이 타들어가는 통증은 없었다. 만나기로 한 고깃집은 도진의 집에서 코너만 돌면 보였다. 약속시간 5분 전, 도진은 고깃집 건물 건너편 빌라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고깃집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고깃집 내부를 바라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고깃집에서 나와 도진을 향해 걸어왔다. 평소라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텐데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옷차림이 계절에 맞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빠진 손발톱을 들켰는지, 그것도 아니면 지난주에 모르고 낮에 나와서 썩어 들어간 피부를 보고야 말았는지. 남자가 가까워질수록 도진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차가워졌다. 해코지를 하면 머리를 후려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도진 옆에 멀찍이 떨어져 담배를 꺼냈다. 안도의 숨을 쉬던 도진이 갑자기 신음을 내며 자신의 턱을 붙잡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남자도 놀라 도진과 눈이 마주쳤다. 통증이 심하던 도진의 송곳니는 순식간에 길게 자라났다. 마치 칼처럼 뾰족했다. 급기야 도진의 눈마저 빨간색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남자에게 다가가 볼을 물어뜯었다.
“악!”
남자는 예상치 못한 충격에 손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떨어뜨렸다. 그 과정에서 도진의 구찌 목도리에 새빨간 피가 튀겼고, 모자는 벗겨졌다. 도진은 한 번 맛보자 미친 사람처럼 남자의 살을 여기저기 뜯어먹었다. 남자의 비명에 사람들이 뛰쳐나왔고, 귀가 찢어질 듯한 민정의 울음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