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책상, 낯선 사람 (32분)
별, 책상, 낯선 사람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포함하여 32분 동안 써낸 단편 소설입니다.
윤지의 휴대폰이 계속해서 울렸다. 어제저녁에 집에 잘 들어갔다고 답장한 것을 끝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현재시각 오후 2시. 오전부터 읽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메시지가 왔다. 아침에는 잘 일어났냐부터 자기는 출근했다고, 점심에는 식사 맛있게 하라고 하면서 자신이 먹는 메뉴를 하나하나 알려줬다. 궁금하지 않다고 답장하고 싶었으나, 그럼 주선자에게 예의가 아니란 걸 알아서 생각으로 관뒀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린 지 한참 지났는데 교무실 민정의 자리는 휑했다. 그녀가 언제쯤 오려나 힐끔 거리다가 활짝 열리는 문에 놀라 시선을 거뒀다. 교무실에 들어선 민정이가 본인의 자리로 가지 않고 곧바로 윤지의 책상 앞에 섰다.
“선생님! 그래서 어땠어요?”
설명하지 않아도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윤지는 그런 표정이 귀여웠지만 애써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냥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하이볼 두 잔 마시고 집에 갔어요. “
민정은 이미 하이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입을 틀어막은 채 부끄러운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꺅! 그럼 좋았던 거 아니에요? “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뭐래요? 무슨 얘기했어요?”
“여행을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작년에 남미 여행을 갔었는데 우유니 사막은 저녁에 가야 예쁘다고.. 그 얘기만 한 시간? “
“오 우유니 사막! 사진 본 것 같아요. 밤하늘에 별이 장난 아니던데! 부럽다. “
윤지는 순간 이번 휴가에 뭐 하냐고 물을 뻔했다. 부러우면 가면 되지 않냐고 나랑 같이 가자고 당장이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소개팅남은 여전히 지치지도 않는지 또 카톡이 울렸다. 민정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하자 윤지는 서둘러 휴대폰을 뒤집었다. 윤지에게 소개팅남은 이미 뒷전이었다.
“오~ 휴대폰 불나겠어요! “
그런 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윤지의 옆자리인 5반 선생님까지 합류해서 놀리기 시작했다. 5반 선생님은 그 남자 사진도 봤다며 직업과 재력에 대해서 논했다. 민정은 또 그 소리를 듣고 대박 대박 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드디어 수업 종이 울리고 교무실에는 윤지와 민정만이 남았다. 민정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불렀고, 가만히 듣던 윤지가 말을 건넸다. 이미 수십 번 연습했던 말이다.
“클로저 봤어요? “
민정을 보면 나탈리 포트만이 생각났고, 닮았다는 소리도 꽤나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추천했었는데 봤다는 말이 없었다.
“아직 안 봤는데~ 오늘 볼게요! “
“왜 본다고 말만 해요? 그리고 우리 할 얘기 있지 않아요? 연락도 안 받고.”
윤지의 말을 듣던 민정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입을 뗐을 때, 교무실 문이 열렸다. 출석부를 놓고 간 옆반 도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어제 소개팅했다면서요! 어땠어요?”
도진 선생님은 오늘 하루만 해도 몇 번을 마주쳤는데 하필 이때 들어와서 저런 질문을 한다. 윤지는 그가 야속했다.
“아.. 뭐…“
대답하려는데 윤지의 시선이 교무실을 나서는 민정을 따라갔다.
동시에 윤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소개팅남의 전화였다.
민정도 나가고 전화가 끊기자 윤지의 폰 배경화면이 보였다.
영화 <클로저> 속 한 장면이었다. 빨간 숏컷 머리의 나탈리 포트만과 하얀 글씨의 자막이 보였다.
“hello, stra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