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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정 Sep 06. 2024

플로리스트

-쾌락, 도파민, 음악 (24분 36초)

쾌락, 도파민, 음악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포함하여 24분 36초 동안 써낸 단편 소설입니다.

미애는 두 아들을 정신없이 키우고 나니 어느새 나이  50이 지나 있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자신 빼고 모든 것이 야속해 보였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으나 당시에 아들을 낳는 것은 모두가 축하할 일이었다. 한데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건 다 소용이 없었다.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었던, 무려 아들 둘을 둔 미애는 이제야 딸 가진 친구들이 질투 났다. 아들을 낳지 못해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던 중학교 동창 윤옥이가 특히 그랬다. 윤옥은 다 큰 딸과 목욕탕도 함께 가고, 여행도 함께 가고, 쇼핑도 할 수 있다고 만날 때마다 자랑을 했다. 다음 만남 때는 윤옥이 그간 딸과 무엇을 했는지 브리핑하는 것이 기대될 정도였다. 미애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부러운 걸 넘어서 대리만족까지 됐다.


그렇다고 해서 또 딸이 있는 친구들이 모두 행복한 건 아니었다. 일찍이 혼전임신을 해서 속 썩이는 일이 있는가 하면, 기껏 유학을 보내놨더니 공부는 안 하고 온갖 쾌락에 빠져 살다가 안 좋은 사건에 휘말린 이도 있었고, 결혼하지 말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려고 부모와 연을 끊고 사는 딸도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미애에게 필요한 건 확실히 딸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며느리를 빨리 들이고 싶었다. 미애는 첫째인 문기가 집에 올 때마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면박을 줬다. 문기는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비혼을 선언했다. 눈치로는 교제하는 여자친구가 있는 듯했지만 집으로 데리고 오거나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둘째인 문규는 고시 공부만 5년째 하고 있는 터라 애초에 기대를 일찍 접은 지 오래였다. 미애는 외로웠다. 남편과의 사이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좋았다. 미애는 다른 의미로 외로웠다. 그리고 이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미애는 일단 집 주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봤다. 집에서 5분 거리인 구에서 운영하는 여성 플라자에서 플로리스트 수업을 신청했다. 이튿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첫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했다. 들어오면서 확인해 보니 수강생들은 대부분 미애의 또래였다.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강의실에는 은은하게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울리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귀가 나름 즐거웠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음악이었다. 선생님은 젊은 20대 후반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하얀 피부에 쌍꺼풀이 없는 눈을 가졌다. 웃을 때면 눈이 반달 모양으로 참 예쁘게도 휘어졌다. 이름은 유진이라고 했다.


미애는 저런 딸이 있었으면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수업도 생각보다 야무지게 잘 가르쳤다. 분명 지금껏 살면서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꽃들은 미애의 손길이 닿을수록 깔끔해지고 조화로워졌다.


“처음 해보는 거 맞으세요? 너무 잘하세요. 손재주가 있으신 것 같아요.”


유진은 열 명이 넘는 수강생들 중 유독 미애에게 칭찬을 했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선생님의 칭찬에 다른 수강생들도 미애의 꽃을 보며 감탄을 하니  미소가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배운 미애는 도파민이 돌았다. 수업이 끝나고 미애는 제대로 치우고 가지 않은 수강생들 몫까지 청소했다. 유진은 미애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다 미애가 인사를 건네고 나가려 하자,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우물쭈물 댔다. 미애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뽐내 보았다. 보통 이렇게 웃어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계를 풀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곤 했다.


“어… 저희 엄마랑 진짜 닮으셨어요.”

“어머, 정말요?”

“네. 특히 웃으실 때 더 닮았어요. 깜짝 놀랐어요. 미애 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어머니도 미인이시겠네~”


미애는 농담이랍시고 던진 말이었는데 유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싶어서 빨리 인사로 마무리 짓고 가려던 참이었다.


“혹시.. 한 번만 안아 봐도 될까요? 정말 실례인 거 아는데….”


유진이 미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애는 당황스러웠지만 곧바로 유진을 꽉 안아줬다. 그러자 유진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미애는 유진을 밀어내는 대신 위로를 택했다. 등을 토닥이자 유진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미애는 그간의 삶의 경험으로, 무슨 일인지 소상히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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