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 냉장고, 수건 (15분 39초)
물감, 냉장고, 수건이라는 세 가지 단어를 포함하여 15분 39초 동안 써낸 단편 소설입니다.
요즘 시나리오를 많이 쓰고 있어서 문체가 좀 뒤죽박죽인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민성은 밤 10시만 되면 자꾸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정확히 아는 건 바로 민성 본인인데, 알면서도 그 안이 계속 궁금했다. 오늘은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한 지 고작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저녁으로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해 먹었다. 평생 되는대로 살아도 멀쩡하던 몸뚱이가 마흔이 되자마자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새로 산 삼텐바이미로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주인공이 먹고 있는 간짜장이 그렇게 맛있게 보였다. 가만 보자… 민성은 어제 사다 놓은 컵누들 짜장맛이 생각났다. 분명 그것은 싱크대 서랍에 자리하고 있는데, 발길과 손길이 향한 곳은 여전히 냉장고였다. 냉장고 문을 연 건 22시 이후 딱 여덟 번 째였다. 열자마자 민성의 시야에 보이는 건 상하목장 유기농 우유. 그리고 쌈장, 계란, 닭가슴살, 쌈 채소가 전부였다. 그 외에 다른 걸 넣어놓으면 어김없이 22시에 민성이 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자기 자신을 위해 다 처분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냉장고 문을 활짝 열었던 그가 곧이어 힘없는 액션으로 냉장고 문을 탁- 소리 나게 닫자 작은 방에서 기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응? “
“냉장고 좀 가만히 두면 안 돼? “
참다못한 이레였다.
“넌 왜 네 집 놔두고 우리 집 와서 지랄이야. “
“집에 혼자 있으면 괜히 심심하니까. “
“유화 냄새 풍기기 싫어서 우리 집에서 작업하는 거 아니고?”
민성이 이레의 목소리가 들리는 작은 방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지하철 타고 30분. 꼭 이레는 굳이 민성의 집에 와서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옷방 한편에 크게 자리 잡은 이레의 각종 물감들과 이젤, 앞치마와 여러 미술 도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괜히 바닥에 굴러다니는 유화 물감 하나를 발로 건들며 빈정댔다. 민성과 달리 이레는 뭘 하든 꾸준히였다. 그래서 얘가 결혼도 할 수 있었겠지.
“눈치는 좀 있어서 다행이다. 여자가 없어서 문제지. “
“닥치고. 내가 너 같은 여자 만날까 봐 무서워서 연애도 못하는 거야. 처남은 오늘도 야근이래? “
“웩. 네가 언제부터 처남 처남 했냐? “
“넌 그 말하는 싸가지가 문제야.. “
“어릴 때 다 너한테 배운 거임. 요즘 좀 바쁜가 봐. “
“더 늦기 전에 빨리 가라. 자고 가는 건 안 됨. “
쿨하게 말하고 다시 거실로 나가려는 찰나, 이레의 몸에 가려져 안 보였던 아끼는 텔카 수건이 보였다.
“너 설마…”
“뭐?”
“그 수건… 붓 닦는 용으로…. “
“이거 뭔데. 비싼 거임? “
민성은 까슬한 뒤꿈치를 쿵쾅거리며 이레 앞으로 다가갔다. 오른손잡이인 이레의 오른편에 있는 텔카 수건을 빼앗아 이리저리 살펴본다. 유화 특유의 기름냄새와 함께 형형색색의 물감과 붓 세척액이 범벅되어 군데군데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텔카 본연의 예쁜 색감은 온데간데 없었다. 실시간으로 일그러지는 민성의 표정을 읽은 이레가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너 다시는 오지 마. 우리 집이 네 작업실이냐? 그리고 이거 사다 놔라. 같은 걸로.”
화난 민성의 뒤통수를 보고 이레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말했다.
“야. 간짜장 시켜줄까?”
씩씩거리며 방을 나서던 민성의 뒤통수가 움찔거렸다. 그걸 놓칠세라, 이레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곱빼기로. 계란프라이는 내가 해서 올려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