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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른도로시 Feb 13. 2023

외향형이냐 내향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박쥐형 인간의 인간 세상 적응하기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내향형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어린 시절 내내 워낙 수줍은 아이였던지라 스스로 그런 인상이 깊이 박힌 듯싶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나는 내향형이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자기 관리를 했던 것 같다. 사실 그 고정관념이 틀리진 않다. 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세상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즉, 나만 유별나게 꼭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동굴 속에 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MBTI가 유행하면서부터 사람들이 모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자연스레 자기는 무슨 성향인지 얘기하는 풍조가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NFP다. I인지 E인지는... I인 친구들과 만나면 "네가 뭔 I냐 넌 E다."라는 말이 돌아오고 E인 친구들 사이에 끼이면 영락없는 I 같다. 나 같은 사람을 두고 복합형이라고 하지 않을까? 아니면, 왔다 갔다 하는 박쥐형?



  그래서일까. 오랜 세월 극내향형임을 자처했던 것과는 달리, 찐 내향형(?)들과 있으면 그들과 나의 다른 점이 단번에 보인다. 우선, 그들은 진심으로 집 안에 있는 걸 즐긴다. 반대로 나는 집 안에 혼자 있으면 점점 울적해지고 에너지 레벨이 극하강한다. 그들은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를 즐기며 집콕 생활하는 걸 낙으로 여기지만 나는 심지어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도 사람 소리가 들리는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한다. 조용한 집안에서 홀로 차를 홀짝이며 만족감을 얻는 건 한 달에 한번 꼴인 것 같다. 대게는 그러다 보면 울적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향형'하면 떠오르는 에너지가 넘치고 활기찬 사람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다소 정신없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건 ADHD의 영향인 것 같고-콘서타를 안 먹고 밖에 나간 날이면 친구들이 대번에 눈치챈다.- 소위 말하는 외향형 다운 외향형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밖에서 보기에 나는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다. 실상은 주둥아리를 도무지 다물지를 않는 인간이지만.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너무 시끄러운 곳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러한 자극을 너무 한꺼번에 받으면 견디질 못한다. 소위 기가 빨린다고 해야 할까. 이 즈음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어쩌면 극도로 감각에 예민한 외향형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진실은 무엇일까. 예민한 외향형이거나 박쥐형이거나 혹은 혼합형일 것이다. 이런 나를 다뤄내기가 스스로도 쉽지가 않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에너지가 떨어지기 때문에 밖으로 나돌아야 하는데, 또 너무 자극이 심한 곳은 안 된다. 사람들 만나는 건 좋아하는데 또 너무 심하게 자극적인 만남(?)은 감각을 로켓 발사하듯 상승시켜 심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너무 한 곳에 익숙해지면 금세 질려서 울적해지고, 또 너무 새로운 곳만 찾아 돌아다니다 보면 안정감이 없어서 해야 할 일(나는 주로 카페에서 업무를 한다)에 집중을 못한다. 


  



 저번 한 주 아주 내향적인 삶을 살았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하고 요가를 했다. 계속 집-일터-요가원을 번갈아 돌아다녔다. 주말이 되자 넉다운이 되었다. 롤러코스터만큼은 아니더라도 짜릿한 자극이 필요했다. 새로운 환경과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평소에 보지 못한 경치가 보고 싶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리웠다. 집돌이 반려인을 꼬셔서 차를 몰고 가 좋아하는 매콤한 주꾸미 덮밥을 먹은 후 강변을 걸었다. 살 것 같았다. 사람이 득실득실한 뷰가 예쁜 카페에 가서 경치를 감상하며 음료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다. 살찔 걱정은 2%만 남겨 뒀다.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들고 갔지만 당연히 집중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그래, 이 맛이야. RGP게임에서 마나 포션을 마시면 마나가 쭉 오르듯 정신 에너지가 척수를 타고 올라가 온몸에 포자처럼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적당한 자극의 맛! 이 맛이었다. 저 번 한 주 내 일상을 돌이켜봤다. 


요가 - 내면에 집중하는 활동. / 일터 - 늘 하는 일이 거기서 거기. 지나치게 익숙함. / 집 - 늘 똑같은 집. 익숙함. 


 익숙함 투성이었다. 에너지 고갈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나친 자극과 지나친 익숙함 사이, 내가 에너지를 얻어야 할 곳은 그 중간 지점이었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너무 익숙하지도 않은, 그 사이를 늘 줄다리기하듯 균형을 타야 했다. 나는 지점에서 에너지의 우물을 길어 올려야 했다. 내향형과 외향형 사이를 박쥐처럼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추구해야 할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참 품이 많이 드는 사람이군." 반려인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 엄마도 나는 참 키우기 힘든 아이였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이 고집이 세고 감정 기복도 심했으니 말 다했다. 나라도 나 같은 애는 키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3n 년을 이 몸을 가지고 살았음에도 아직까지 나를 데리고 살기가 참 힘들다. 이 녀석의 컨디션을 늘 엇비슷한 상태로 유지시키려면 물속 오리의 발짓처럼 끊임없이 노를 저어야 한다. 나의 내면에서는 늘 이루고 싶은 이상과 현실의 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싸움박질하고, 늘 비슷한 일상에서 얻는 안정감에 안도하는 마음과 그 안정감을 지긋지긋해하는 변덕쟁이가 함께 살고 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외향형이든 내향형이든, 성향이 아주 뚜렷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혼자서 에너지를 잘 충전하는 사람들이 참 대견해 보인다. 어쩜 저리 자기 관리를 잘할까, 싶다. 나는 지나친 자극은 소화를 못하면서-싫어하진 않는다- 너무 안전한 건 따분해한다. 자기 계발서를 보면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루틴을 만들려면 필연적으로 '익숙함'이 필요하다. 익숙한 옷, 익숙한 장소, 익숙한 패턴이 필요하다. 나는 '패턴'에 쉽게 질려 버리는 사람이다. 익숙함에 젖으면 익사할 것처럼 숨이 막힌다. 패턴과 루틴을 만들고자 노력했으나 결과는 번아웃(burnout). 결국, 안 맞는 방식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현재 오전 7시에 문을 여는 스타벅스에 8시에 와 있다. 매장의 절반이 통유리로되어 있어서 비록 우중충한 도시 풍경이긴 하지만 바깥이 훤히 보이는 곳이다. 사방이 막힌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 후 기운이 심하게 바닥을 치는 후유증을 며칠 겪고 나서 공부는 반드시 뻥 뚫린 곳에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패턴을 자주 바꾸는 바람에 집중력이 흐려지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는 카페를 자주 바꾸기로 했다. 정말이지 비효율적이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방식이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걸. 


하루하루 나를 알아 가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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