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바라보기
C언니가 감사하게도 초대를 해주어 충북의 시골로 향했다. 저녁 바비큐 때 선보일 비장의 무기 바비큐용 꼬치가 늦게 오는 바람에 택배 물류센터에 들렀다 가느라 여행의 시작은 다소 마음이 분주했지만, 이내 한적한 도로들이 펼쳐지면서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시골에 사는 친척이 없는지라 대학 때 농활에 참여했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 농촌 체험이었다. 소도 키우고 작물도 이것저것 많이 재배한다는 진짜 시골은 어떨까 무척이나 설렜다. 마침 근래 들어 가족끼리 태안 여행도 하고 전북 무주 영화제에도 가보면서 이 근방의 매력에 푹 빠진 터였다. 뭐랄까, 산새가 깊고 풍요롭고 촉촉한 느낌이었다. 경상도와 강원도와는 또 다른 느낌.
그때였다, 고라니가 나타난 것이. 어린이 정도로 보이는 고라니 한 마리가 갑자기 달리는 내 차 앞으로 튀어나왔는데, 다행인지 고라니가 발군의 달리기 실력을 보여주어 사고가 나지 않았다. 엄청 놀라긴 했다. 근처에 논밭이 있긴 하지만 분명 산길도 아니었고, 그가 건너간 방향에는 더더욱 고라니를 유혹할 만한 것이 안 보였다. 이후에 음성 네이티브 분께 말했더니, “으응, 고라니 원래 있어! 몇 마리 있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셨다. 아무튼 인터체인지를 지난 지 몇십 분 안 된 상황, 격한 환영을 받으며 첫 번째 목적지인 누룽지 삼계탕집으로 향했다.
누룽지 삼계탕집 단체방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C언니 남편과 딸과 딸의 친구, C언니의 어머님, 둘째 오빠와 오빠님의 따님, 그리고 이번 농활대(?)의 또 다른 손님 I선배와 선배의 친구 거기에 나와 내 친구까지 딱 열 명이었다. 더 많은 것처럼 느껴졌던 건 높아진 텐션 탓이었나 보다. C언니의 원가족 분들은 목청이 남달랐다. C언니는 오랫동안 연극배우로 활동했는데, 마이크도 없이 무대를 꽉 채우는 발성이 훈련된 것도 있지만 타고난 것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비결은 잠시 후 언니네 옥수수밭을 돌아볼 때 알 수 있었다.
서로 초면인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희한하게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상세하게 한 명 한 명 소개하고 알아가는 분위기가 아닌데도 마치 오래 같이 지낸 사람 마냥 익숙하게 서로에게 스며들어가 있는 이 묘한 분위기는 다음날 헤어질 때까지도 계속되었는데, 그 느낌이 서울에 온 지금도 자꾸만 생각난다. 무튼 목청 좋은 충청인 분들과 아이들로 시끌벅적하게 즐거이 한때를 보냈고, 누룽지 삼계탕은 정말 맛있었다.
이어서는 읍내 구경을 했다. 왜냐, 애들이 좋아하는 팬시 따위를 구하려면 읍내에 나가야 하기에… 읍내에 딱 한 곳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C언니 둘째 오빠 지인이 한다는 카페에 들러 세련되게 아아메를 주문해 마셨다. 둘째 오빠 지인은 음성 읍내 곳곳에 포진해있어서, 몇 마디마다 언급될 정도였다. 무슨 얘기하다가 경찰 얘기가 나오면, 그 경찰도 둘째 오빠 친구, 읍내 술집 사장님도 둘째 오빠 친구…
카페인을 충전하고 언니 집으로 돌아갔다. 여러 번 증축, 리모델링을 거쳐 근사하고 쾌적했는데, 특히 거실이 인상적이었다. 거실의 한 면엔 사랑스러운 손주들 사진으로만 장식되어 있었고, 티브이, 그 옆엔 모니터 하나가 있었다. 축사 내부를 볼 수 있었는데, 송아지들이 앉아서 쉬는 거, 혼자 뛰어노는 거, 그러니까 시골식 라방이었다. 어머님께 가장 예쁘고 소중한 것들로 채워진 느낌이었다. 집 안 화초들도 아주 건강했는데, 농사를 짓는 분들이 역시 금손이구나, 싶었다.
이윽고 집을 나서 본격적으로 근방 투어가 시작됐다. 언니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엔 크게 꾸렸다는 복숭아 밭도 보고, 이웃이 일구는 담배밭도 봤다. 난생처음 보는 거였는데, 엄마가 젊었을 때 시골에서 담배 조리를 아주 잘했었다고 몇 번 들었던 터라 괜히 더 반가웠다. 도로 건너에는 언니네 축사가 있는데, 올해 들어 송아지가 많이 태어났다고 한다. 쌍둥이 송아지도 태어났는데, 뛰어놀고 어미 젖도 먹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축사 한편엔 비닐하우스도 있고 정말 십 여종은 넘는 작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아스파라거스 같은 힙한 작물들도 많았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어르신들은 아스파라거스 이름 안 어려워하세요? 뭐라고 부르세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니가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아스파스!” 역시나였다. 참고로 브로콜리는 브루꼬리 혹은 구루꼬리 정도로 불린다고 했다. 어르신들의 말맛이 너무 좋다.
마침 소들이 저녁 먹을 시간이라 여물 주러 둘째 오빠님 트럭을 타고 다시 복귀했는데, 트럭 뒤에 서서 타는 그 맛을 나만 이제 알았구나, 억울할 정도였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도로와 시골길을 트럭 위에서 맛보는 그 느낌이란. 잠깐 옥수수밭에도 들렀다. 고라니를 쫓기 위해서 조명 장치를 해두셨는데, 태양광 패널에 연결을 해둔 상태였다. “근처 공사판에서 버리고 간 거로 만든 겨” 언니가 설명해줬다. 곳곳에 업사이클링의 흔적이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밭을 둘러보던 어머님이 뭔가를 쑥 뽑으셨는데 그게 바로 비트였다. 아주 실한 비트가 한 손에 뽑아져 나왔다.
한편 넓은 밭에서 대화하는 언니네 가족 분들의 목청이 한층 더 커져 있었다. 이제야 목청의 비결이 밝혀졌다. 밭도 크고 축사와 집도 거리가 있다 보니 크게 소리를 내는 게 익숙했던 것이다! 아빠 고향인 원주에 갔을 때 많이 접했던 억양과 발성 사이즈랑도 비슷했다. 땅이 넓고 산이고 인구밀도가 낮다 보니 그렇구나! 단서를 얻은 느낌이었다. 보이스 트레이닝 강사로서, 이 분들은 발성 연습이 하나도 필요 없겠다 생각이 들었다. 축사랑 집 사이 거리가 못해도 100m는 될 것 같은데, 언니 아버지께서 축사에서 “물~~~~”하면 집에서 어머님께서 알아듣고는 갖다 주시기도 했다고 한다. 거짓말 같지만, 장담하는데 이건 진짜다.
비트를 손에 들고서 트럭 뒤에 타고 탈탈탈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둘째 오빠님께서는 숯에 불을 붙여 주시곤 쿨하게 읍내로 나가셨다. 마당에 상을 펴고 하나하나 준비했다. 신기하게도 역할이 저절로 나누어졌다. 누구는 나르고, 누구는 고기 굽기를 시작하고, 누구는 칵테일을 제조하고, 한편에서 꼬치구이를 하고, 음악을 틀고… 사실 나는 고기를 안 먹는 데다가 굽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내가 데리고 온 친구 E가 야외 바비큐를 좋아하고 고기를 잘 굽는 편이라 역할 분담이 딱 맞았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나이의 다양한 이들이 모였는데, 신기하게도 아주 평탄하고 즐거웠다. 갓 딴 아스파스도 구워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무엇보다 들떴던 건 음성이 기점이 되어 소중한 이들이 모였다는 점이었다. 부산 방송국에서 일할 때 얻은 귀한 인연으로, 지금은 부산, 김해, 서울로 흩어져있지만 계를 함께하고 있는 나와 C언니, I선배. 사실 내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자주 못 보게 될 상황이었는데, C언니의 고향이 충북 음성이고, I 선배는 가까운 지인이 충북에 살아 종종 올라오는 상황이어서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더 이상 부산에서 만나지 못해도, 이렇게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행운인지. 칵테일을 빠르게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읍내에서 한잔하다 놀러 온 둘째 오빠와 그 친구 분들과도 수다를 좀 떨다가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자리가 파했다.
다음날 은은한 숙취와 함께 잠에서 깼지만 왠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요즘 오전 러닝을 하던 게 도움이 된 모양인지, 아니면 시골에 온 김에 밭일을 조금이라도 돕고 밥값은 하겠다는 의지였는지, 나는 콩 심으러 나가는 어머님과 동행했다. 다른 이들은 전날의 여파로 아주 단잠을 주무실 때였다. 빌려주신 몸빼바지를 입고, 팔토시를 야무지게 착용하고 또 트럭 뒤에 올라 탈탈탈 논길을 가로 길러 축사로 향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소들도 누워있었다-엄밀히 말하자면 앉아 있었다-. 나의 임무는 어머님이 새벽에 나가 파놓은 구멍에 물을 뿌리는 거였다. 워낙 가물었고, 막 감자를 캔 밭이라 물을 더 충분히 줘야 한다고 하셨다. 호스로 내가 물을 채우면 어머님이 아주 빠른 속도로 콩을 심고 흙을 덮으셨다. 열심히 논밭을 일구고 남편 분들 여의시고도 굳건히 일하여 지금의 대가족을 이룬, 강인한 손이었다.
웃는 인상이 너무나 좋고, 성격 면에서 어딘가 살짝씩 C 언니가 보여 더 신기한 어머님과 대화는 무척 즐거웠다. 무릎 수술을 하셔서 쪼그려 앉지는 못하지고 하체로 단단히 몸을 지탱해 허리를 굽혀 콩을 심으시는데, 보통 코어 근육으로는 저것이 안 될 텐데… 시골의 생활 근육에 새삼 감탄했다. 그래서 C언니가 근수저인가…. 그렇게 두 시간여가 흐른 것 같다. 소들이 때때로 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물이 구덩이가 차오르고, 콩을 심고, 흙을 덮고, 그 소리가 전부였다. 흙냄새, 멧비둘기 울음소리,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가는 소리. 뒤에 합류한 C언니 남편 K선배가 호스를 풀어주면 내가 끌고 물을 채우고, 어머님이 콩을 심고. 이 반복이었다.
서서히 기분 좋게 땀이 나고 등이 뜨끈해졌다. 10여 년 전 농활에 참여했을 때에도 느꼈던, 그래서 이후로 종종 그리웠던 딱 그 느낌이었다. 숙취도 어느새 가셨다. 전날 칵테일을 조금 마셔서 머리가 살짝 아프셨다던 어머님도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하셨다. 손 빠른 어머님 덕에 재빠르게 일이 마무리되고, 어머님은 어디에선가 오이를 따서 물에 씻어 주셨다. 맛있었다. 또 트럭을 타고 돌아가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손 필요할 때마다 내려오고 싶다, 생각했다. 이 콩들이 또 무럭무럭 자라서 메주를 쑤시겠지. 된장이 만들어지면 그게 또 3남매의 집으로 옮겨질 것이다.
일을 끝내고 돌아오니 이미 전날 파티의 흔적이 싹 정리된 상태였다. 일하고 씻으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어머님 표 김치 수제비가 너무나 맛있었다. C언니가 해주는 음식과도 비슷한 맛이었다. 깊은 국물에 쫀득한 수제비. 비싼 표고버섯까지 듬뿍 넣어주셨다고 한다. 많은 대인원 손님 치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어머님도 대단하시지.
헤어질 땐 또 쿨하게. 한 집씩 차를 타고 떠나는데 언니가, 옥시기는 7월 모일, 이라고 일러주었다. 옥수수 따러 또 오라는 어머님 말씀이 감사했다. 하루 정도였는데 정이 많이 쌓인 모양이다. 사람들의 힘이었을지 공간의 힘이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도시에서 하루를 보냈다면 이와는 분명 다른 결이었으리라. 오랜만에 어릴 적 쓰던 일기처럼 마무리를 해보련다. 7월에 옥수수 따러 꼭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