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바라보기
백수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평일 오전과 낮, 한가로운 동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골드 축구단을 만난 그것도 요일 오전이었다. 적당히 일어나서 아침에 걷기 운동이라도 하고 하루를 시작할까 싶어 동네 근린공원에 간 나는 머리가 하얗게 센 축구단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막내 라인이 60대 중반 정도, 최고 연장자는 7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 축구단을…!
대략 오전 9시쯤 친선 경기를 시작한 듯했는데, 경기의 면면이 일반 축구팀과 사뭇 달라서 은근히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선 달리기의 느낌이 조금 달랐다. 기를 쓰고 이기겠다고 달려들기보다는 승부에 초연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말씀이 많았다. 물론 어느 축구팀이든 경기 중엔 이런저런 고함도 많이 지르고 하는 법이겠지만, 이 축구팀엔 짧게 끝나는 지시성 문장보다 양방향 구시렁거림이 많은 편이었다.
“아!!! 안 뛰고 뭐해!!!!”
유난히 체구가 크고 장군 같은 리더 같아 보이는 선수가 움직이지 않는 같은 편 수비를 향해 소리 지르면,
“아유, 뭐…”라거나
"아유 말 말어 됐어…”라거나 하는 식이다. 물론 소리치지 않고 주변만 들릴 정도로.
머리가 하얗게 세고 경우에 따라서 빛나는 선수들은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듯하지만 장군 선수의 마음엔 영 차지 않는 듯했다. 사실 달리는 분들보다도 멈춰있는 분들이 많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승부나 경쟁을 내려놓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설렁설렁한 ‘열심히’가 멋져 보였다.
어쩌면 아마 젊을 적부터 축구를 하셨을 분들일 텐데 이렇게 오랫동안 한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 아니었을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정기적으로 필드를 예약해 더운 여름에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잔디를 달리는 건 보통이 아니니까. 나도 러닝을 막 시작해서 오래 달리는 것의 힘듦을 절절히 느끼던 차였다. 그런데 어쩜 환갑, 칠순 넘은 나이에도 이렇게 축구를 하실까 신기할 따름이었다. 부모님께도 전화로 어르신 축구단을 본 얘길 했더니 좋아하셨다.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그 사이에는 좀 더 이른 시각에 러닝을 하느라 오전 9시에는 갈 일이 없었는데, 모처럼 갔더니 익숙한 하얀 머리들이 보였다. 그전에 봤을 때 스탠드에 앉아서도 오래 구경을 했더니 몇몇 분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그리고 마침 경기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는지 드디어 유니폼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밝혀진 어르신들의 정체는 바로 ‘ㅇㅇ 골드 축구단’이었다. 우와, 실버가 아니라 골드라니! 자긍심 담뿍 담긴 작명 센스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팀 이름을 정하던 상황을 상상해보니 더욱 재밌었다. 실버보단 골드지, 응?!
짧게 마실 겸이었기에 경기 뛰시는 것까지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쉬는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의 면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일흔 가까이 되셨을 한 분께서는 공차기 연습을 하시다 펜스 너머로 공을 넘기셨는데, 그쪽에 계시던 지나가던 여자 어르신께서 공을 주워주러 가시는 듯했지만 영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공은 돌아오지 않았고, 공을 넘긴 어르신께서도 끝내 직접 나서지 않으셨다. 축구장 출구가 어르신이 계신 곳에서 꽤 먼 곳 한 군데에만 열려있었기 때문이겠지 싶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려가는 길에 일부러 공이 떠나갔을 오솔길을 따라 내려왔는데 공은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띄었으면 “제가 주워왔어요!” 의기양양하게 드렸을 텐데…
실버 대신 ‘골드’라 이름 붙인 어르신들의 멋이, 새로운 느낌으로 경기하는 그 맛이 나는 좋다. 흰머리에 뜨거운 해가 비쳐 골드빛으로 빛나던 그 장면을 곧 또 뵐 수 있길 바라며 오전 9시를 노려봐야겠다. 골드 축구단 선생님들도 다소 느리더라도 덜 움직이시더라도 오래 건강하게 뛰시기를!
2022.06.2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