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양(2021)> : 그저 느끼면 되는 것들

영화 리뷰

by 다이앤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마음이 조금 일렁인다. 사랑하는 이들과 여행할 때면, 어느 순간 뒤로 빠져서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영상으로 담게 된다. 언덕이나 계단을 오르는 뒷모습이 멋진 풍경과 한 프레임에 담기게 되면 더 큰 기쁨이 터진다. 꼭 사랑하는 사람이 담겨 있어야 하는 건 아니어서, 앞서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자전거 오래 바라보다 경로가 엇갈릴 때 아쉬워했던 것도 떠오른다.


왜 뒷모습을 바라보는 걸 좋아할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종종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샷이 등장하는 걸로 봐서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아무래도 뒷모습을 보면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사람을 정면으로 오래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깊이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혹은 멀리서 바라보는 원경에서, 때로는 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자연에 눈이 오래 머무는가 보다.


그런 순간은 신기하게도 영원처럼 다가온다. 지금도 짐칸이 있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나듯이, 내 마음속 액자에 담기는 듯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렇게 영원히 남길 이미지를 만나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특히 마음에 먼지가 낀 채로는 영 어려워진다. 자연이 있는 그대로 빛나는 곳에 갔을 때나, 마음이 평온할 때가 아니고서는 무언가를 깊이 바라보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였나 보다. 영화 <애프터 양(2021)>의 ‘양(저스틴 민)’의 눈동자가 계속 생각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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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그저 평범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신을 구입한 부부와 그들의 입양한 딸인, 자기 여동생과도 같은 미카가 푸른 잔디 위에 포즈를 잡고 서 있고, 양을 부르고 있다. 얼른 타이머 셔터를 누르고 이리 와서 사진 찍자고. 양은 허리 숙여 카메라를 조작하고는 서서 잠시간 그 세 명을 바라본다. 잔디는 푸르고, 햇살도 좋고, 가족은 행복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양의 표정과 눈동자는, 극중 제이크가 인용한 다큐의 대사처럼 어떤 말로도 묘사할 수가 없을 것이다. 기쁘고 행복에 겨웠다기보다는, 굳이 따지자면 감동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마음이 움직인 순간. 아침 햇살처럼 조심스레 스며드는 행복한 마음.


그 장면은 정말로 영원이 되었다. 자신의 기억 장치 안에 파일로 저장이 되었으니 물리적으로도 그렇게 된 셈이다. 양이 떠난 후 그 기억을 보게 된 가족들의 마음에도 평생 갈 깊은 흔적을 남겼으니 비유적으로도 영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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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남긴 기억들은 우주의 무수한 별들과 같았다. 단순히 양이 많아서라기보다는 하나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매일 몇 초간의 기억을 메모리에 담기는 걸로 프로그래밍이 돼 있는데 그게 어떤 기준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양의 메모리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누구나 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언가를 골똘히 보는 미카의 뒷모습과 귀여운 머리 장식, 하늘과 나무, 집 안에서 차 내리는 것에 열중하는 제이크, 집 안의 장식, 거울을 바라보는 그 자신. 아침 햇살처럼 조심스레 스며드는 행복이 성실하게 갈무리되어 있었다. 때로는 소중한 사람의 아파하는 표정, 우울함, 이별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 내용의 색깔이 아니다. 소중한 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선 그 자체, 시선의 한 데 머물고, 또 움직이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뭐가 사랑일까?


로봇에 불과한 양이 어떻게 이런 사랑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인지, 제이크는 궁금해한다. 그런데 그게 일시적인 오류였든, 양이 문화와 역사에 정통한 휴머노이드인 ‘문화 테크노’로서 사랑을 학습한 것이든, 사실 원인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니지 싶다.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니까. 인간끼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애초에 사랑이라는 단어도 인간의 발명품이며, 그 개념도 문화권마다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지 않나.


사랑이라는 개념 밖으로 벗어나고 인간과 동물, 자연물과 인공물의 경계를 넘어 우린 모든 존재와 무언가를 주고 받고 있다. 집에 있는 반려동물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때로는 깊고 푸른 산에 감싸안아지고, 넓은 바다로부터 이해받기도 한다. 오래된 건물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 분주히 지나가는 작은 잠자리가 우릴 신나게도 한다. 물아일체의 경지를 말하는 도가 사상이 언급된 것도, ‘나는 멜로디가 되고 싶어’, ‘나는 바다가 되고 싶어’라는 릴리 슈슈의 노래 가사도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린 종종 라벨링하고 구분 짓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유행하는 성격 유형을 갖다 붙여서 이해 아닌 이해를 하려 하기도 하고, 다름을 부각하여 전선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우리에게 영화는 양의 눈동자를 빌려 친절하게 말해준다.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 정답이 있다고. 개념을 붙이려 하기보다, 그냥 느껴 보라고. 말로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들이 이미 도처에 널려 있다고. 모든 것에 도가 있다고 말한 도교의 진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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