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쓰는 일을 하시겠네요 (2)

마인드셋 말하기

by 다이앤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상담을 받으러 간 날엔 꽤 긴장됐다. 학원을 드나드는 수강생들과 마주쳤는데 내 눈엔 이미 아나운서 같았다. 상담 결과, 목소리나 발음은 꽤 괜찮다만, 이른바 ‘비디오’가 다소 약할 순 있어서 공중파 3사까지는 어렵겠다는 꽤나 솔직한 피드백을 받았다. 이 외에도 나를 위축시키는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혹시 체중을 얼마 감량해야 할까 여쭤봤을 때 47kg까지 몸무게를 감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라든지, 주변 수강생들이 받은 피부 미용 시술 얘기 같은 걸 들을 때, 의상 대여나 프로필 사진 촬영 얘기를 들을 때 특히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열등감은 참 몹쓸 녀석이다.



그래도 난생처음으로 목소리나 발음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참 기뻤다. 중학생 때 한창 아나운싱에 꽂혀서 혼자 뉴스를 받아 써서 연습하고, 표준 발음법을 공부하곤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현직에서 활동한 강사 분들로부터 배우는 게 재밌었다. 왜 건강, 경찰을 ‘그어언강’, ‘그여엉찰’로 발음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한자가 장음인지,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표정과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등, 기본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 아주 즐겁게 배우고 익혔다.



물론 가뜩이나 수강료가 높은 편인데, 수강생의 위기감을 자극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고, 학원에 많은 돈을 갖다 준 이들에게 좋은 추천 자리를 건네는 아카데미식 경영에 문제의식은 여전하다만, 그래서 대체로 수강하는 심화반을 고집 있게 수강하지 않고 기본반만 수강했지만, 그래도 두 달 남짓한 기본반 수업을 통해 역량이 향상되긴 했다. 보이스 코칭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단전에 힘을 주고 힘 있게 발성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훈련 첫 한 두 달이 가장 많은 향상이 생기는 시기이다. 힘이 생긴 내 목소리를 듣고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 또한 코칭을 할 때 확신과 자신감이 생긴다. 소극적인 성격까지 더해져 가늘고 약한 목소리였던 나도 목소리 힘이 금방 잘 붙었으니.



다만 아나운서 아카데미라는 특성상, 내 목소리를 계속해서 훈련한다기보다, 아나운서처럼 보이게끔 훈련하는 부분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누가 들어도 아나운서 훈련을 받은 말투로 비슷한 고저장단으로 말하는 조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일상적 말하기와는 거리가 먼 뉴스 리딩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기 때문에, 절도 있고 다소 딱딱한 아나운서 특유의 발음과 억양이 자리 잡게 되는데 나 또한 이후에 라디오 DJ가 되어 원고를 읽을 때 이를 빼기 위해서 오랫동안 애를 먹었다.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고 다른 수강생들과 스터디를 했던 몇 달을 떠올리면, 괴로운 마음을 부여잡고 피드백 받던 게 가장 먼저 생각난다. 원고를 낭독하는 것을 캠코더로 찍어 바로 모니터에 연결해 표정 피드백을 듣는데,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잘 나아지지 않고 지난한 시간도 길었다. 일대일 코칭이 아닌 4:1 수업이기도 했거니와, 학생 한 명 한 명에 세세하게 신경써주느냐는 전적으로 강사님의 역량에 달려있는 것이기에, 내게 딱 맞는 코칭을 받진 못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관성과 열등감을 억누르며 고데기를 하고 화장을 하고 렌즈를 끼고 나가는 시간이 분명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가 많아 무기력하여 늦잠도 자고 훈련도 많이 못하고, 주기적으로 눈에 다래끼마저 났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수업에 나가고 특강에 나가고 스터디에 참여했다. 가장 피하고 싶은 것에 직면하면서 맷집을 길러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사실 대학 신입생이 되어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흥미가 식었던 것은, 한창 사회의 어두운 면에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부 소속에다 사회학 전공을 염두에 두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불공정을 위해 활동하는 것만이 진정 의미가 있다고 믿기도 했었다. 지금이야 재능과 성향이 다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재능을 틔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무언가에 갇혀있었다. 사실 이것이 어느 정도는 ‘나 같은 사람이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까?’, ‘빛나는 이들이 많은 이 서울에서 내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까’하는 자격 없음과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오르지 못해 포도를 못 따면서, 저 포도는 신 포도야라고 최면을 걸며 상처를 방지하는… 내게 대학 시절은 방어기제가 두텁고 또 정교한 때였다.



다행히 욕심은 또 많아서 억누르려 해도 아나운서에 대한 미련이 새어 나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살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버스터미널 아저씨의 선견지명은 아마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겠지.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를 낸 때였다. 아카데미에서의 두 달이 끝나고, 얼마 안 가 여름에 학사모를 썼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의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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