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도 새옹지마

마인드셋 말하기

by 다이앤

라디오 피디님은 합격 통보를 하며 내게 물으셨다. “심야 방송도 괜찮겠어요?” 당연히 괜찮았다. 어떤 조건이어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간절했고, 이미 나는 많이 지쳐있었으니까. 서둘러 부산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어안이 벙벙했다. 감사하게도 부산 친구네에서 집에 남는 방이 있다며 나를 하숙생으로 맞아주셔서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다. 부산역에 도착해 지하철로 갈아타는데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서울 지하철보다 조금 아담한 지하철, 여유로운 빈 자리, 익숙한 경상도 말씨가 다정하게 다가왔다. 그만큼 ‘서울살이에서 다정함을 못 느끼고 살았었구나’ 싶었다. 친구네에 도착했더니 먼 길 오느라 찌그러진 택배 박스가 나를 반겼다. 불과 1, 2주 사이에 직장이 생기고 사는 지역이 영 달라졌다.


며칠 후 라디오팀 전체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내가 맡게 될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고, 나와 함께할 팀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서 환영회 겸 회식을 하는데, 선배들이 말씀하셨다. 1차 전형으로 제출한 영상에서 목소리를 듣고 내가 뽑히겠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고, 면접에서 선곡하는 걸 보고 더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깨달았다. 심야 방송 DJ를 뽑기 위한 공채였기 때문에 내가 붙을 수 있었구나! 새 채널을 개국하면서 신규 프로그램을 더 만들어야했고, 여러 이유로 심야 시간이 빈 상황이었다. 만약에 새 채널이 개국되지 않았더라면 사실 추가 비용이 드는 신규 채용은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 중에서도 밤 시간대 진행자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을수도 있는 건데-특히 비서울지역 라디오에서는 밤 시간대 방송에 투자를 잘 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잘 맞아떨어진 상황이었다. 지금보다도 더욱 ‘심야 톤’스러웠던 내 목소리가 아나운서 준비를 할 때에는 아쉽기도 했었는데, 이 덕분에 뽑혔으니 지금 와 돌아 보면 목소리도 새옹지마인 것이다. 우울을 음악으로 달래며 다양한 음악을 들어왔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사실 다소 퍼지고 부드러운 내 톤은 몇몇 분야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쫀쫀한 목소리로 쾌활하게 리딩하는 다른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부럽기도 했다. 특히나 내 목소리와 말하는 방식은 ‘차분함’, ‘신중함’, ‘내향적임’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한정된 이미지에 콤플렉스가 있기도 했다. 특히나 그때나 요즘이나 이른바 ‘아나테이너’라고 불리는, 연예인 끼가 많은 아나운서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런 내 목소리가 이번엔 승부수가 된 것이다.


개인이 가진 성격적 특질 하나가 장점이 됐다가 단점이 됐다가 하듯이,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쾌활하고 크고 분명한 목소리가 더욱 두드러지고,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묻힐 때가 있긴 하다. 그런 ‘차분러’들 중에는 분명 오늘도 할 말을 못해서 밤에 이불킥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일대일로 대화할 때, 차분한 분위기에서 내 의견을 얘기할 때, 신중한 사람을 원할 때, ‘차분러’들의 목소리는 빛을 발한다. 신중하고 진중한 인상을 준다.


지금도 나는 목소리 코칭을 할 때 각자가 가진 장점을 십분 살리려 하는 편이다. 단일한 톤으로 획일화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좋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두고 매력을 더하려 한다. 여러분 분들 중에서도 혹여나 목소리에 콤플렉스가 있다면, 그 또한 한 편에선 장점과 매력일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비음이 많이 들어간 소리는 밝은 에너지를 느껴주게 하고, 깊지 않은 목소리는 오히려 담백하고 깨끗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나의 목소리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지 탐구해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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