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도 맞는다

마인드셋 말하기

by 다이앤

첫 방송이 얼마 안 남았던 날, 많은 선배님들 앞에서 프로그램 데모 버전을 들려드렸을 때가 생각난다. 라디오 오프닝을 시그널 음악에 맞춰 읽은 짧은 파일이었는데, 선배님들은 기대만큼 못한 결과물에 실망한 눈치였다. 애써 돌려서 말해주셨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들어도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직되어 있고, 글자를 잘 읽으려 고만 했다. 마치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뉴스를 읽듯 오프닝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때 알았다. 라디오 오프닝 읽기가 정말 만만치 않게 어렵다는 것들.


2016년 5월 초 프로그램을 런칭을 목표로 우리팀은 4월 중하순부터 힘을 모아왔다. 정할 것은 한 가득이고 시간은 촉박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잘 준비되고 있었다. 가상의 문자들까지 만들어서 즉흥적으로 진행하는 훈련도 꽤 하고, 게스트 분들과 데모 녹음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중 생각지 못했던 복병이 바로 이 ‘오프닝 낭독'이었으니… 어떻게 읽어도 어색하게 나오고 있었다. 특유의 억양이 자연스러운 느낌을 훼손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방송부 시절에 익힌 ‘예쁜 고교 방송부 톤'에다가,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익힌 ‘아나운서 조’까지 섞여서 아주 혼란스러웠다. 담당 PD님은 그냥 사담 나눌 때는 씩씩한데 마이크만 열리면 목소리가 바뀐다고, “그냥 말하듯이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알고 보니 내레이션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말하듯이 자연스러운 내레이션이라는 걸 깨달았다. 차라리 밝은 척을 하거나, 슬픈 척을 하거나 뚜렷한 감정을 잡아 내레이션을 하거나 아예 감정을 배제하고 로봇처럼 상냥하게 안내 멘트를 하거나 설명을 하는 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색깔이 뚜렷한 감정선을 잡고, 단일한 느낌을 쭉 가면 되니까. 그런데 라디오 오프닝 같은 자연스러운 내레이션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일상의 감정을 갖고 표현을 해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을 막 시작한 초보가 그 분야의 끝판왕을 잘해내려고 용을 썼던 것이다.


자연스러운 읽기가 영 자연스럽지 못했던 또다른 이유는 그때의 내가 ‘나다운 것'이 뭔지 잘 모르는 스물 여섯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다는 건 그냥 나답게 편안하다는 건데, 나는 내 ‘페르소나’와 ‘진짜 나’ 사이에서 영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청소년기에는 주변의 칭찬과 인정을 먹이 삼아 성장하는 모범생이었고, 그 이후에도 ‘진정 나답다'라는 감각이 뭔지 알만큼 다양한 경험과 교감을 하진 못했다. 오히려 10대 때는 모범생이었다가, 대학 시절에는 인권 운동에 집중하는 활동가로, 다른 결의 삶을 살면서 혼란이 커졌다. 자아정체성이 확고해지기 전에 큰 변화를 겪으면서 길 잃고 표류하는 형국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취업을 하면서는 갑자기 부산이라는, 서울과는 또다른 도시와 처음 겪는 조직에 적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스로와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다운 걸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너답게 해!”라는 PD님의 조언을 들을 때마다 너무 답답했다. PD님께 말 걸듯이 말하다가 그 느낌을 바로 이어 오프닝을 읽는 훈련도 하고, 내 입말체에 맞게 종결어미를 바꾸어보기도 했다. 친구한테 말하듯이 하자니, 친구들을 대하는 방식도 나는 다양했다. 그래도 뭐, 어떡하겠나. 계속 연습했다.


그러고 퇴사 후, 그러니까 첫방송을 한 지 5년 반이 지났을 때 첫방송 오프닝을 다시 들어볼 수 있었다. 모니터링했던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아주 오랜만이었다. 퇴사 기념으로 첫방송 정도는 챙겨야할 것 같아서 모처럼 한번 들어보는데, 소감은 ‘의외로 꽤 괜찮은데?’였다. 사실 엄청 어색하고 망쳤을 줄 알았다. 이것 저것 흉내내는 어색한 톤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목소리엔 소극적이고 조심스럽지만 꽤나 즐기고 있는 내가 있었다. 첫방송이 주는 희열과 떨림과 설렘이 다 담겨있었다. 자신감있고 당당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안정감이 있었다. 솔직하고 대담한 매력은 없지만 대신 편안하고 사려깊었다.


무엇보다 그 당시의 나를 정확히 반영하는 목소리였다. 착하지만 조심스럽고 자기 자신을 개방하는 것에 서툴고… 비록 ‘나다운 것'이 뭔지 몰라 헤매었지만, 그것이 곧 나였다. 자기 확신이 부족해서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많이 봐서 뻔하고 바른 말만 하는 DJ였지만 나름대로 12시 심야시간대와 꽤 잘 어울리는 DJ였다. 조용하고 나긋하게 곁에서 함께하는 게 어울리는 시간대 아닌가. 오히려 경력이 쌓이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말투와 스타일이기에 귀하다면 귀할 목소리.


나름의 최선이었고, 무엇보다 결과물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 시절 괴로운 마음이 훨씬 덜했을텐데… 조금 아쉽다. 내 목소리를 다시 모니터링하는 게 무척이나 힘겨웠었고 피드백 하나 하나는 쓴 맛으로 늘 마음에 남아있었다.


내가 무슨 색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찾는 방법조차도 요원해 보였는데, 사실 덜 분명해서 약간 흐릿한 그 컬러도 하나의 색깔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시절에만 띨 수 있었던 색깔이다. 마음의 우울과 괴로움이 컸지만 그 덕에 오묘한 빛을 띨 수 있었고 그것이 자정에 라디오를 듣는 누군가에게는 아마 위로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만약에 지금의 내가 첫방송 때의 다희를 코칭할 수 있다면, 그냥 이 말만 반복할것 같다. 지금 충분히 괜찮다고. 다른 거 다 신경쓰지 말고, 전하고자 하는 내용, 특히 감정에 집중하면 된다고. 그리고 말없이 웃으며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 친구가 어떻게 성장할지 행복하게 기다리면서. 그러다보면 그때 그때 과업에 맞게 알아서 구체적인 질문을 갖고 올 것이고, 그럼 그에 맞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면 될 일이다.


그러니까 완벽한 목소리라는 것은 없다. 대신 목소리는 언제나 온전하다. ‘나다운 목소리'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목소리는 거울처럼 지금의 나를 반영할 뿐이니까.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목소리도 새옹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