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감정이 먼저다 (feat. 김남주)

마인드셋 말하기

by 다이앤

혼자 여행은 정말 매력적이지만, 때때로는 정말 심심하고 외롭기도 하다. 내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게스트하우스 침대에서 OTT를 뒤적거렸던 것도 심심함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새로운 것에 반응하고 기뻐하고 모험을 하다보니 약간 지쳐서, 생각 없이 푹 빠질 만한 도파민 분비에 좋은 드라마가 필요했고, 약간의 치정이 섞인 <미스티>가 이에 딱이었다. 그렇게 쿠알라룸푸르까지 가서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된 것이다.

김남주, 지진희 등 좋아하는 배우들이 등장해서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몇 편을 보고 있자니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뉴스 리딩 실력이 는 것이다. 까닭은 이렇다. 나는 평소에 중얼중얼하는 습관이 있는데, 길을 가며 간판을 읽으며 발음 훈련을 한다거나, 성대모사를 하면서 목소리 연기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스티>에서 앵커 역할로 분한 김남주 씨가 아나운싱을 하는 장면이 나올 때에도 나도 모르게 그의 목소리 톤과 억양을 따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3, 4년 방송을 하며 다양한 톤을 시도해보면서도 늘 어려웠던 시사 톤이 마침내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 공신은 바로 김남주 씨의 ‘감정’이었다. 노력파 배우 답게 물론 뉴스를 읽은 톤이나 억양, 그러니까 아나운싱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도 강렬한 집중력, 확신, 카리스마를 전달하는 감정이 압도적이었다. 깊은 곳에서부터 모은 강렬한 감정은 멀리 쿠알라룸푸르의 게하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러니까 김남주 씨의 말투를 따라한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쫓다 보니 ‘아나운서 다운 느낌'을 마침내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종결 어미는 내리고, 톤은 낮추거나 높이고… 목소리를 기계적으로 접근했는데, 만약 목소리 자체가 아보카도의 과육이라면, 감정은 큼직한 씨앗이었던 것이다. 그 통째로가 말하기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 경험은 목소리 쓰는 일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주었다. 잘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정 잡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보다 감정이 선행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잘 말하는 이들은 늘 감정이 풍부했다. 강연을 잘해서 청중들을 집중시키는 연사에게는 ‘자신감 있는', ‘확신에 찬', ‘나는 매력적이다'라는 감정이 깔려있었던 것이고, 물건을 잘 파는 쇼호스트에게는 ‘신뢰 가는', ‘우아한' 등의 감정이 짙게 깔려있었다.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는 휴먼 다큐 내레이션을 하는 경우에도 ‘따뜻한', ‘자연스러움’, ‘은은한 행복' 같은 감정이 풍부하게 깔려 있었다.


매거진 프로그램 내레이션 작업을 할 때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와 광대를 한껏 울리고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웃었던 것도 설명이 되었다. 말하기가 제대로 되기 위해선 그만큼 감정이 잘 뒷받침 돼야 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익혔던 모양이다. 라디오 오프닝 리딩이나 내레이션이 어색하다? 그럴 수록 감정을 더 쏟으려 했었는데, 이것이 다 말하기보다 감정이 선행돼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놓치는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이 감정이다. 내용만 전달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럴 거면 서면으로 하면 되지, 왜 굳이 많은 칼로리를 소모해가면서 말을 할까? 말할 때 우리는 ‘감정’이라는 아주 훌륭하고 또 소통에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감정이 발하면 표정과 제스처 등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많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도 내용보다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굳이 애초에 나눌 필요가 없다. 감정이라는 씨앗이 잘 잡히면 표정도, 목소리톤도 다 좋아지기 때문이다. 감정을 섞지 않고 그냥 무성의하게 말을 뱉는 것은 낭비인 것이다.


기왕이면 인사를 할 때에도 힘 있고 상냥한 감정을 섞고, 발표를 할 때에는 자신감에 찬 듯한 연기를 더하고, 수업을 할 때에는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속 깊은 대화를 할 때에는 다정하고 따뜻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러면 무엇보다 내가 달라진다. 목소리가 좋아지고 목소리에 힘이 생긴다. 사람들을 대할 때 자신감이 생긴다. 그때 비로소 나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을, 많은 청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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