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바보 두 명이서 마주쳤으니'
비둘기
봄이 비와 어둠으로 가려진
추적추적한 어느 날
우산 쓰고 조용한 밤 길을 걷다
찰퍽찰퍽 작은 발자국 소리 들려보니
흔하게 생긴 비둘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가 오늘날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녀석인데
비가 꽤나 많이 오는데도
화단 쪽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피하면 그만이고
비가 오기 전에 숲 속으로 돌아갔으면 그만인데
네 녀석 참 멍청한 녀석이구나 생각하고 돌아가던 중
문득 생각이 났다.
비가 오는 주말 굳이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나라는 사람이
그래, 네 녀석
오래 굶긴 아이가 있었니
아님, 굶겨선 안될 사랑이 있었던 거니
내 배고픔이야 참으면 그만이지만
어떤 누구의 배고픔은 차마 볼 수 없는 그 마음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바보였다.
비 오는 날 바보 두 명이서 마주쳤으니
내가 특별히 먹을 것을 챙겨주마.
네 녀석은 이것을 물고 날아가며
새 대가리로 날 모두 잊어버리겠지만
그 기억력으로도 잊지 못하는 사랑이
비 속에서 널 돌아다니게 했으니
부디 너라는 존재에게도
봄의 행복이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