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던 아이에서 조용한 아이로
어린 시절의 결핍 1 — 초등학교 시절
"희영아, 인사해. 언니야. 너보다 한 살 많아."
할머니의 말대로 아빠 손을 잡고 간 집엔 새엄마, 그리고 낯선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 언니가 생겼다고? 이제 나도 언니가 있는 아이구나?
그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빠와 새엄마, 그리고 새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눈치 많고 말수 적은 아이였는데, 새언니는 예쁜 옷에 장난감, 핸드폰까지 갖춘 밝고 활기찬 사람이었다. 모든 면에서 나와 달랐다.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짱구는 못 말려’를 보며 밥을 먹으려는데 TV가 꺼져 있었다. 나중에 새엄마가 통화하며 한 말이 귀에 박혔다.
“제는 짱구가 하는 짓을 똑같이 해. 못 보게 하려고 꺼버려, 아침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그렇게 싫은가? 내가 뭐가 짱구 같았을까? 그 생각에 잠들기 힘들었던 밤이 이어졌다.
언니는 아빠와 새엄마와 살기 전, 고모들과 함께 살았다고 했다. 그 고모들은 돈도 많고, 언니를 아주 예뻐했다고. 그 흔적은 고스란히 언니의 옷과 장난감에 남아 있었다.
반면 나는, 물려받은 오래된 옷뿐이었다. 언니는 유행하는 새 옷을 몇 번 입고 말았고, 그 옷들은 내 몫이 되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들이 옷장에 쌓여갔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언니는 고모들 덕분에 새 가방, 필기구, 공책을 한가득 받았다. 나는 그중 몇 개만 물려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엄마가 “새 가방 있다”고 불렀다.
기뻤다. 드디어 나도 새 가방을 갖게 된 건가 싶었다. 그런데 가방엔 ‘학원’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창피했지만, 가방이 없는 나로선 선택지가 없었다. 그 학원 가방은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내 가방이었다.
방학이 되면 언니는 고모들과 여행을 갔다. 나는 여행이 뭔지도 몰랐다. 대신 새엄마는 나를 집에 두기 싫다며 온갖 방과후 수업에 보냈다. 방학마다 학교에 나가는 건 나뿐이었다.
텅 빈 운동장 한가운데 혼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의 사랑이 너무 필요하다.
언니 생일이 다가오면 집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새엄마는 음식이며 손님 명단으로 분주했고, 생일 당일엔 거실 가득 친구들이 들어찼다. 나는 피자 한 조각과 치킨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달 후, 내 생일이었다. 조용히 생일상이 차려졌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생일인 줄도 몰랐기에 파티도 없었다.
그때 새엄마가 말했다. “제는 친구도 없네.”
그날 이후, 아빠는 나를 친구도 없는 ‘왕따’로 여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 또래의 남자아이가 집에 왔다. 새엄마는 그 아이를 “아들~ 아들~” 하며 부르며 무척 반가워했다. 또 하나의 낯선 가족. 또 하나의 내 자리는 아닌 자리.
새엄마는 그 아이와 언니 사이에서 웃고 떠들며 먹이고 안고 스킨십을 했다. 나는 그 옆에서 점점 작아졌다. 결국 방으로 들어가 벽을 마주 보고 앉았다. 눈물이 났다.
또 어떤 날, 집에 낯선 아줌마가 놀러 왔다. 목소리 크고 거칠었던 그 사람과 새엄마는 거실에서 내 험담을 나눴다.
“지 아빠 닮아서~”
“젠 이중인격이야. 이 사람 없을 땐 말 안 하고, 퇴근하면 말하고~”
“이 사람은 또 애를 그렇게 아껴~”
나는 방 안에 있었지만 그 말들이 벽을 넘어 나를 찔렀다.
가슴이 답답했고, 다시 눈물이 났다.
이건 나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사랑을 갈망했지만,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었던 아이의 이야기.
[사랑받지 못한 나에게]으로 브런치 북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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