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nummer

EP04. 꿈을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

재미없는 나라에서 죽을때 까지 재미있게 살기

by 란트쥐

꿈을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

독일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스트레스가 가득했던 취준생 기간을 지나 드디어 필드에서 일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것도 장난감을 만들 수(도) 있는 회사의 디자이너.


장난감은 보통 스트레스 받을때 많이 산다




석사를 마치고 난 뒤에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은 나 이제 더 이상 학교 안 다녀도 된다!! 였고, 실제로 학위를 더 딸 생각은 없기 때문에 나의 최종학력이지 않을까 싶다. 공부가 끝나서 너무 좋아~ 시험도 없어! 하고 좋아했는데, 필드에 나온 디자이너가 공부를 놓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회사나 업계에 맞춰, 시대에 맞춰 변하는 트렌드와 업데이트되는 프로그램 등등 공부해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물론 성적이 나오는 공부는 아니지만 매해 직원평가가 있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아주 성적이 안 나오는 건 아닌 공부랄까.


이직을 해야 연봉이 확 오른다는데, 나는 아직 첫회사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다. 회사 동료들이 나쁜 사람들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인데 그래서 시골에서의 삶도 감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보통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을 하면 일을 주는 갑이 있어서 소위말하는 갑질당할 일이 있는데, 인하우스 디자이너에게는 사장님이나 결정권자만 있다. 그 갑이 쉽게 말해 같은 편이라서 억울할 일이 없는 편인데 물론 갑이 일을 급하게 끼워 넣거나 프로세스 없이 줄 때는 있다.



나는 인하우스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로 문구, 완구, 교구, 가구 디자인을 한다. 장난감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나는 장난감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장난감만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들이 교육기관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었다. 교구의 경우는 독일어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있고 (독일어 제품) 언어권에 구애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있는데 독일어 제품을 제외하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가 기본적인 언어로 제품 패키징과 설명서에 세 가지 언어가 들어간다. 디자인팀은 몇 년 전부터 제품개발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우리는 제품매니저 PM 이 원하는 제품을 디자인하거나,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서 제품을 개발한다. 물론 디자이너 외에 구매 쪽 일을 하는 동료가 회사 시스템으로 계산을 마쳐서 검토를 한 뒤에 제품개발을 할 수 있으며, 우리 회사의 주요 고객이 유치원, 학교, 공공기관이라서 제품 테스트를 까다롭게 한다.



매해 출장가는 토이페어. 이 분야 최대규모 페어다.




보통은 독일 (유럽연합)에서 판매가 가능한 제품을 위한 규정이 있고, 연령별로 나누어서 해야 하는 제품 테스트가 있고, 제품의 용도에 따라서 해야 하는 테스트가 있다. (feat. 테무에서 어린이용 제품을 사면 안 되는 이유)

우리 회사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도 있고, 독일의 거래처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 유럽의 거래처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 그 외 지역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있는데 보통 아시아 (다수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있다. 어디에서 생산하던 테스트는 모두 해야 하는데, 테스트가 비싸기도 하고 오래 걸리기도 해서 테스트에서 탈락을 하면 제품 일정이 미루어지는 거라 테스트에 탈락했다고 하면 한 며칠 기분이 좀 별로인 상태로 보내게 된다.


제품의 퀄리티를 제외하고도 규정이 자주 변하기 때문에 제품개발이 끝나서 상품화가 되고 판매가 시작되어도 수정이 이루어지거나 개선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예로는 포장지/포장완충제/재활용로고는 내가 일을 시작한 뒤로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는 중이라 여러 번 개선이 되고 있다.




언제나 고개를 꺾어 들어서 하늘을 보는 습관이 있다





교육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또 하나 매우 신경을 쓰는 부분은 성인지 감수성과 인종차별 그리고 문법이다.

실제로 제품의 기능적인 문제에 대한 고객피드백이 있는 경우도 있으나 그 외에 "성차별이다 혹은 인종차별적인 부분이 있다" 하는 경우도 있다. 제품 사진촬영을 할 때 여자아이들한테 핑크계열의 옷을 되도록이면 입히지 않으려고 하지만, 옷을 고르라고 하면 핑크계열의 옷을 고르는 나이대가 있다. 일부러 그런 옷을 제외할 때도 있으나 가끔은 역차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어린이 모델 촬영 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옷이나 머리스타일에 대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편- 인종차별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특별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인데, 가끔 어린이 그림이 두어 명 들어가야 할 경우 피부색과 머리색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문법은 교정팀에서 확인을 한다. 예전제품을 새로 주문할 때 성차별적인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는지 -독일어로 선생님은 여자선생님과 남자선생님이 명확하게 나뉜다. 학생도 마찬가지. 모든 성별을 아우르는 단어와 문장으로 글을 써야 한다- 확인을 하고 수정을 계속해야 한다.


한국어처럼 선생님 혹은 학생하고 중성적인 표현이 가능한 언어가 아니라 안 됐다! 하고 놀리는데, 사실 나도 여기서 일하니까 같이 셀프놀림받는 중이다. 그래도 가끔은 짜증이 날 때가 있어서 독일어는 왜 이래!! 하고 독일사람들한테 따지는 편이다.

나는 독일어에 남성형 여성형이 없어지고 중성만 남았으면 좋겠다 하는 아주 작고 소중한 바람을 품에 안고 산다.


내가 어린이를 아주 좋아해서 어린이용 물건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린이였다면 혹은 저 속에 들어가서 놀 수 있다면 이런 건 어떨까 하는 관점에서 물건을 관찰하고 생각한다. 물론 더 이상 알록달록 세상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배워가는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조그만 사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어른의 눈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업계에서 일하는 이상 꿈꾸면서 꿈을 먹고사는 어른일 수 있어서 좋다.



레고가 엄청난 내취향은 아니지만 집에없진 않다.물론 여기는 레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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