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관악산에 완연한 봄이 피어나던 무렵 한 아이의 죽음을 기억한다. 새로운 곳에 왔다는 설렘, 꿈꿔왔던 곳에 입성했다는 환희, 시작을 앞둔 간지러운 두근거림이 모두에게 스며들던 날들이었다. 꽃이 프린트된 시폰 원피스를 입고 온 학생들이 설레는 발걸음으로 거닐던 캠퍼스였다. 그런데 이제 막 꽃을 피울 새내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니. 다른 사람들이 입밖에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속으로는 '서울대까지 와서 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애가 떠난 후 나는 아마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안의 어딘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터넷에는 단 몇 줄짜리 기사가 떴다. 평소 우울증을 앓아오던 새내기가 기숙사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했다고 쓰여 있었다. 나는 휴대폰에 그 기사를 띄워 놓고 그 애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의 부러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려야 했던 그 이유에 대해. 중고등학교만 합쳐도 6년 동안이나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를 했을, 끝내 자신의 목표를 이뤄냈지만 생조차 포기해버려야 했던 그 속내에 대해. 전부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떤 허망감, 상실감, 공허함 같은 것이었으리라 짐작했다. 사실은 남겨진 우리들도 종종 술 한잔 걸칠 때마다 조심히 꺼내보았던 마음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꿈에서조차 그려보던 서울대였다. 그런 학교에 왔는데 사실은 별 다를 게 없었다. 밖에서는 영웅이 된 것처럼 띄워주지만 학교 안에서는 사실 뭘 모르는지도 모르겠는 새내기일 뿐이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운 친구들은 또 열심히 달려 나갔지만 그렇지 않은 나 같은 애들은 그저 버들골에서 술을 마시고 수업을 마지못해 가는 정도였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에너지가 없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가, 하는 의문이 자꾸만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수업 시간에 제일 눈이 반짝이는 아이였다. 잘 모르는 것이어도 꼭 손을 들고 가장 먼저 대답을 했다. 틀려도 아쉽지 않았다. 교과서는 하나의 다큐멘터리인 양 탐구하는 재미가 있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나는 매일 그날그날 배운 것을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 선희를 따라다니며 종알종알 알려주었다. 선희가 밥을 차릴 때에도, 옷을 갤 때에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에도. 피아노나 체육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고 노력 대비 결과가 좋은 것은 오직 공부뿐이었다. 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선희는 내가 8살이 되자 영어 학습지를 제안했다. 매일 학습지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교재를 읽고 숙제를 검사받았다. 영어 테이프를 듣고 따라 해야 했는데 나는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매일같이 울었다. 영어는 같은 알파벳이어도 단어 속에서 항상 발음이 변했고 그중에서도 세음절 이상 넘어가는 단어는 너무도 어려웠다. 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영어를 배웠다. 그런데도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하기 싫어서 우는 게 아니라 해내고 싶어서 울어야만 했다.
그러나 중학교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일기장에 항상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 같은 말들이 쓰였다. 심지어는 고등학교 2학년 보름간 입원을 했을 때에도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슬퍼했다. 몸이 아파져서가 아니라, 기말고사가 있는데 입원을 해야 해서. 그 당시 나나 친구들은 잠은 네 시간 이상 자지 않았고, 걸으면서도 영어 단어를 외웠다. 밥은 빨리 먹고 남는 시간에 오답노트를 만들었다. 배움으로 인해 반짝이던 눈망울은 사라지고, 틀리지 않는 데에만 급급하게 되었다. 더 이상 손을 들고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틀리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자존심 상했기 때문에. 앎에 대한 간절함은 슬그머니 뒤편으로 밀렸다.
대학원 지도교수님과 식사를 하던 중,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탐구형 인간이 아니라 암기형 인간이 너무 많아졌어. 고등학교 때 진을 빼놓으니까 그래."
돌이켜보면 공부가 재미있던 시절은 고작 중학교 때까지였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전교 3등 안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애쓰기만 했다. 선행학습은 끊임없이 요구되었다. 대학교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교양 과목 시험들을 관악 암기 대회라고 불렀다. 하나 틀리면 A+를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암기 대회.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 간의 경쟁은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려, 언아더 레벨(another level)이었다. 수업 중 질문하는 사람은 없고 필기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받아 적었다. 녹음기도 동원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째로 외워 시험에 토해내는 것이었다. 논술형도 예외는 없었다.
4년 전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과 다큐가 인터넷을 떠다녔다. '대학의 교육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키워주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연구는 서울대의 실상을 보여주었다. 교수의 말을 필터링 없이 받아 적고 그것을 달달 외워 시험을 보는 자들이 A+를 받는다는 결과였다. 자신과 교수의 의견이 다를 때에 학생들은 의견 개진을 포기했다. 오로지 학점을 위해서였다. 한 학생은 고등학교 때와 되풀이되는 것 같다, 자신은 대학에서도 수업을 견디고 있다고 토로했다. 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체화된 주입식 교육의 습관은 대학교에서도 반복되었고 우리는 창의적 인간이 아니라 교수님 말 복사기가 되어 있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우리에게 줄곧 이야기했다. 대학 잘 가면 인생 피는 거라고. 성공은 보장된 것이라고. 그 말을 절실히 붙잡고 믿었다. 그러나 정현이는 서울대에 오고도 삶을 버렸고, 우리 곁을 떠났다. 어른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공부를 하며 꿈꾸었던 미래는 적어도, 교수님 말 복사기는 아니었을 텐데. 정현이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이미 고장 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난간 끝에 서있었을 그 애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 애가 이제는 등수나 학점, 필기 따위에서는 자유로워졌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