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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Mar 03. 2022

좋은 사람 만나는 법을 묻는 너에게

주지 않음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

안녕, A. 요즘 마음은 어때? 얼마 전 나눴던 얘기가 생각나서 이렇게 편지를 보내. 네가 울면서 찾아온 게 몇 번째였더라? 그러니까... 이번이 몇 번째 이별이었더라? 아무튼 너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표정을 하고 물었어.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말야. 다부진 표정에서 기껏 나온 말이 그거라니. 나도 모르게 조금 웃다가 네가 하도 흘겨보는 통에, 분주히 어떤 대답이든 꺼내 놓았지.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너는 인터넷에도 널려 있는 그런 조언은 사양한다고 말했지.


그때 내가 물었잖아.

"너한테 없는 게 뭐라고 생각해?"

너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대답했어.

"애인...?"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어. 그리고 우린 서로의 팔뚝 언저리를 가볍게 때려가며 한참을 웃다가, 금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고 말았지.


네게 나의 엄마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 너는 아마도 심드렁한 표정을 지금 짓고 있겠지? 자, 자. 조금만 침착하고 들어 봐.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스무 살 때 일이야. 내 엄마의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어. 그리고 엄마의 아빠는 엄마가 고등학생일 때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지. 그래서 오래 병원 생활 중이셨고 거동도 못 하셔서 상주 보호자가 필요했대. 집에 돈이 남아날 리가 없었지. 엄마의 고모들은 공장에 가서 큰오빠 학비를 좀 대주라고 했대. 그치만 우리 엄마는 아득바득 입학금을 모아서, 첫 학기 등록금은 은사님께 빌려서 대학에 갔어. 다음 학기를 다닐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채로 말야.


거기서 훗날 나의 아빠가 될 사람을 만난 거야. 엄마는 가난을 숨길 수 없었대. 친구들과 식당에 갈 돈도 없었고, 아픈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시간도 없었대. 그런데 어떻게 데이트를 했느냐고 내가 물었어. 지금부터는 엄마의 목소리를 조금 빌려볼게.

"그러니까 말야, 너희 아빠는 뭐가 그렇게 해맑은지. 자기도 그렇게 잘 사는 형편도 아니면서 매일 나를 찾아왔어. 내가 아버지 병원에서 보호자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도르르- 병실 문이 열렸어. 젊은 너희 아빠는 상쾌한 바깥공기를 묻히고 들어왔지. 그리고 바스락거리며 오래된 점퍼 주머니에서 사탕 몇 개를 꺼내 건네는 거야. 그러면서 소곤소곤 말하더라."

'아버지 주무시면 놀러 갈까? 나랑은 언제 놀아?'


그래서 엄마는 뭐라고 했어? 내가 물었어. 엄마가 발그레 미소를 띠며 말해주더라.

"다른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날 걱정했거든. 아버지 보러 가봐야 하지 않아? 혹은 어머니가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근데 너희 아빠는 아버지도, 동생들도, 학비나 돈 얘기도 안 하고 놀자고 하는 거야. 그런 사람은 걔 하나였어."

엄마는 장난스런 후회를 덧붙였어. 자기를 졸졸 쫓아다니며 수없이 고백을 건넸던 잘 사는 집 아들도 있었노라고. 걔를 만났다면 자기 팔자가 조금은 바뀌지 않았겠느냐고 말야. A,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있지. 우리 엄마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그 잘 사는 집 아들을 만날 수는 없을 거라고 믿어.


아마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일 거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시큰하고 외로워지는 일 년 반이 있었어. 몸이 너무 아파 두려웠던 병원 생활을 지나고, 집으로, 학교로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던 때야. 자주 체하고 무릎이 아프고 붓기로 무거워진 몸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어. 친구들은 다 취업 준비며, 졸업 준비며 바빴어. 그 와중에도 만나러 오겠다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어.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대답을 하는 것도, 그 대답에 걱정 어린 표정을 보는 일도 지겹고 아팠거든.


예전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책 모임에 갔어. 얼굴도 아주 빵빵하고 아픈 기색이 조금 어려있는 채로. 그리고 그곳에 네가 아는 S가 있었지. 그는 평소에 수줍게 말하다가도 일 얘기라면 눈을 반짝이며 조금 단호해졌어.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허세 없이 자기 자신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매일 최선을 다해 목표를 향해 걷는 사람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어. 부러우면서도 가까워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아프고 지쳐서 당장 내일을 생각하기도 싫은 그때의 나와는 아주 달라 보였으니까.


여럿이 걷다가 우연히 그와 나의 발걸음 속도가 같아졌어. 궁금한 마음에 조심스레 말을 건넸어. 그 시간이 좋아서 우리는 자주 함께 걸었어. 그러다가도 나는 대뜸 선을 그었어. 지금은 아주 밝아 보이지만 사실 나는  어둡고 잘 우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내게 밝은 모습을 기대한다면 당신과 나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 거라고 했지. 어느 날에는 내 삶이 너무 징글징글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엉엉 울어버렸어. 그는 잠깐 당황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픔이 지나가는 동안 묵묵히 곁에 있어 주었어. 그리고 내가 빨개진 눈으로 머쓱해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사람이 말하는 거야.

"우리 다음 주에는 담백하게 맛있는 걸 먹으러 갈까요?"


A.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느냐고 다시 묻는다면, 나는 그 대답을 이렇게나 장황하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리고 다시 한번 너에게 묻겠지. 너에게 없는 것이 무엇이냐고 혹은 너의 생 동안 필요한 말이 무엇이냐고 말야. 이 질문들을 안고 살다 보면, 어쩌면 너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주는 사람이 아니라, 주지 않음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아. 나와 나의 엄마처럼.


A. 언제든 울음을 털어놓으러 와. 달달한 디저트를 준비해놓고 기다릴게.







아픈 몸과 성장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희우 작가의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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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우 작가 일상과 조각글이 담겨있는 인스타그램에서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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