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다이어리
사람마다 달리길 선호하는 시간대가 다르다. 이른 새벽 또는 아침에 달리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저녁이나 밤에 달리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시간에 달리든 각자 매력이 있지만 나는 주로 저녁에 달리길 선호한다. 나의 활동 에너지가 저녁에 왕성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게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루를 조금 늦게 시작하는 게 잘 맞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늦은 밤에 잠들어서 8시간을 푹 자고 일어난 뒤, 저녁 늦게까지 활동을 이어간다. 타고나길 저녁형 인간인지라 이른 시간엔 활동력이 떨어지고, 오후로 넘어갈수록 활동력이 커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달리는 시간대 역시 자연스럽게 저녁 시간대로 정해졌다. 계절에 따라서 한두 시간 편차는 있지만 보통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 달리러 나가는 저녁 달리기 패턴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오전 달리기도 매력적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저녁 달리기만의 기쁨이 있다.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로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다. 오전 달리기가 하루를 잘 여는 장점이 있다면 저녁 달리기는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장점이 있다. 나는 자책하는 마음이 강해지는 날이면 꼭 저녁에 달리러 나갔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세상에 나의 자리가 있긴 한 건지 의심이 들 때마다 밖에서 한바탕 달리고 들어오면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잘 보냈던 하루도, 잘 보내지 못했던 하루도 저녁에 달리고 나면 얼추 비슷한 모양새로 마무리할 수 있다. 어떤 하루를 보냈든 결국 마지막엔 달렸다는 사실만으로 부정적인 사고에 덜 사로잡힌다.
둘째로 바쁜 일상 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찾을 수 있다. 한창 바쁘게 일상을 살았을 때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별로 없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주변을 살피는 눈이 어두워져서다. 그럴 때마다 이룬 것도 없는데 나이만 자꾸 먹어간다는 부정적인 기분에 휩싸인 적도 많았다. 그러나 저녁에 달리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됐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는 것 같다가도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별을 보고 달리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작은 여유가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셋째로 불면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 나처럼 만성적인 우울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불면으로 고통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우울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괴로웠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해서 뜬 눈으로 하루를 보낸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저녁 달리기를 하고 난 이후엔 불면증으로 고생한 적이 거의 없다. 달리기를 통해 불규칙하게 널뛰던 심장박동을 규칙적인 심장박동으로 바꾸고, 몸에 남아있는 에너지를 다 소진하기 때문에 잠이 잘 오게 된 것이다. 지금도 달리기를 한 날과 달리기를 하지 않은 날의 수면 질 차이가 꽤 나서 격일에 한 번은 꾸준히 달리고 있다. 수면의 질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우울과도 멀어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른 오전에 달리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편견이 깨진 지 오래다. 한 번이라도 저녁에 달리러 나갔던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저녁에 달리는 사람도 상당히 많아졌다. 특히, 이 시간대엔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청년들이 달리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학업이 끝나는 시간과 퇴근하는 시간이 맞물려서다. 청년들끼리 뭉친 러닝 크루가 저녁에 유독 활동이 많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그것만 봐도 사람마다 생활 방식이 다르고, 운동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대가 다르단 걸 알 수 있다.
어떤 일이든 꾸준하게 해내는 것이 중요하듯이 운동도 마찬가지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내려면 사회나 남이 규정한 시간이 아니라 나와 잘 맞는 시간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저녁 달리기를 통해 그 속에서 기쁨을 찾은 것처럼 나와 맞는 시간을 찾은 이는 누구나 그 속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그러니, 사회나 남이 세워준 기준점을 벗어나서 내 시간을 살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늦는 때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