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참았던 아들의 마음
첫째 어학원 하원 후, 하루종일 쏼라쏼라 영어 듣느라 피곤한 아들이 쉴 수 있게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지난번 못한 바틱 체험을 하러 간다.
그랩을 불러 센트럴마켓으로 가는 길, 오늘 우리 방 청소하는 날인데, 청소가 안 되었다고 메시지를 보내니, 우리 방 청소하는 날은 화요일이라고 한다. 무슨 소리냐, 나는 체크인할 때 목요일이라고 했고, 최근에도 목요일 청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그럼 다음 주부터 목요일로 바꿔주고 이번주는 안된다고 한다. 내가 그럼 이번주는 못하고 다음 주는 목요일부터가 맞느냐고 하니, 화요일이라고 한다. 슬슬 화가 나서 무슨 소리냐, 조금 전에 목요일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메시지 캡처본을 보내니, 네 방은 화요일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솔직히 나는 화요일이나 목요일이나 상관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일 하는 것이 못 마땅하다. 말이 계속 바뀌는 방식 말이다. 결국은 목요일로 바꿔주겠다.라고 하며 이야기가 끝났다. 이게 뭐람. 이 찝찝한 기분을 어쩔 것인가. 잊자. 잊자 하며 바틱체험장에 도착한다.
첫째와 나는 작은 도안을 고르고 둘째는 신중히 도안들을 쳐다보더니 나무가 그려진 큰 도안을 고르고 천에 색을 칠한다. 천에 물감이 서서히 번질 때마다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다. 첫째는 사실 오기 싫다고 문자를 하려다가 그만뒀다고 한다. 그런데 와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다며 즐거워한다. 정해진 구역에 스르르 색이 천을 따라가며 번지는 게 신기한가 보다. 둘째는 정말 신중히 색을 고르고 초록물감 하나로 물 조절을 해서 여러 색을 내고 그러데이션을 한다. 우리 둘째가 이런 면이 있었구나. 멋지다. 나도 작은 도안을 골라 색을 입힌다. 색을 만들고 색을 입히는 게 재미있다. 어느새 흠뻑 빠져있다.
바틱체험만 하고 바로 집으로 오려던 계획이었는데 비가 쏟아진다. 비가 그칠 때까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둘째가 기념품 하나에 꽂혔다. 못 산다는 말에 입이 나온다. 좋은 게 보이면 무조건 사려고 하는 버릇을 이 참에 고치자 싶었다. 얼르고 달래도 여전히 입이 나온 둘째에게 어떻게 갖고 싶은 거 다 가지느냐고 다그친다.
저걸 가지려면 그만큼 돈을 아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저걸 갖고 싶은 건지 더 생각해 보자. 그래도 갖고 싶으면 다음 주 목요일에 오자고 하니, 입이 조금 들어간다. 저걸 사려면 돈을 아껴야 하니, 집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타자고 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온다.
둘째는 나에게 “엄마, 화내지 말고 내 말 들어봐요. 엄마. 내가 화날 때는 그냥 가만히 뒀으면 좋겠어요.”라고 한다.
어머나
아들이 화날 때 내가 계속 화난 마음에 부채질을 했구나. 안 그래도 화도 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마음인 아들에게 쉴 틈을 안 주고 다그쳤구나. 잔소리가 사실은 내 기분을 무마시키고 아들 탓만 하는 잔소리가 아닌 가 생각해 본다. 아들을 위해 잠시 침묵을 지키자. 내 분에 먼저 화내지 말고.
집에 도착하니, 청소가 되어 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마음이 이상하다. 오늘 일정이 끝났는데 우리 방을 추가로 청소하신 건가 싶고, 내 잘못이 아님에도 내 잘못 같고…… 하지만 이런 기분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한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또 비슷한 상황이 있을 때는 지금보다 더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길 바라본다.
내가 첫째에게 아까 메시지와 지금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니, 첫째는 “엄마, 황당했겠어요.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축구에 비하면……”이라며 정리해 줬다. 오늘은 아시안컵에서 요르단에 진 날이었다. 후후. 큰 아들의 말이 참 좋다.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준다. 큰 아들은 이제 제법 어른스럽다. 장을 보면 장바구니는 본인이 들겠다고 하고 길을 건널 때는 차가 안 오는지 확인하고 엄마를 오라 한다. 무척 듬직하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모습이다. 우리 아들도 이곳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나 보다.
설 전이라 이 밤은 온 사방팔방에서 끊임없이 불꽃놀이 중이다. 시끄럽긴 하지만 한편으로 즐겁다.
벌써 설이구나……엄청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열흘남짓 지났다. 아들들과 싸우고 화해하기도 하고 속 마음도 이야기하며, 나를 돌아본다. 이곳 사람들과 대면하며 또한 나를 본다. 낯선 곳에 나를 데려다 놓으니, 연약한 내 모습이 보이고 그 모습을 사랑하게 된다. 엄마로서의 내 모습도 정비하게 된다.
꿀 송이 같은 휴식 시간이 흐르고 있다. 가계부를 쓰며 줄어드는 생활비에 마음이 착 가라앉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다. 지금 이곳,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