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 설날 보내기

엄마가 제일 호들갑이라구요.

by 영희

설날이다. 마트에서 떡국떡을 못 찾아 떡국 대신 카야토스트와 망고를 먹고 예약해 놓은 국립박물관 한국어해설을 들으러 지하철을 탄다. 우리 둘째는 그랩을 안 타고 지하철을 탄다고 입이 또 나왔다. 한 마디 하려다가 화 났을 때 가만히 두라고 한 게 생각나서 그냥 둔다. 한 번 환승을 하고 국립박물관에 도착한다. 조금 늦긴 했지만 다행히 해설사분을 만났다. 그냥 유물만 봤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말레이시아 역사를 배운 시간이라 매우 유익했다. 우리 아들들은 아닌 것 같았지만……둘째는 그랩을 탔으면 처음부터 다 들었을 거니까 차라리 지하철 탄 게 다행이라고 한다. 나 원 참.

국립박물관

근처에 먹을 만한 곳을 못 찾고 마스지드 자멕 역으로 간다. Warong Old China라는 곳에 들어가 나는 락사, 첫째는 차퀘이테오, 둘째는 치킨버거를 주문한다.

맛있다. 맛있다. 맛있다.

이 식당은 분위기가 예스럽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갑자기 100년 전으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눈과 입이 호강을 한다.


지난번 야경을 보러 왔던 므르데카 광장 근처의 낮이 궁금해서 다시 둘러보고 일사병 걸리기 전에 집으로 간다.

쿠알라룸푸르, 이름처럼 두 개의 진흙강이 하나로 만나고 있다.

오고 가는 길 모두 지하철을 타니 교통비가 확 줄어든다. 그랩이 싸다고 주로 이용했는데 역이 가까운 곳은 이제 지하철이다.


집에 오자마자 우리는 수영장으로 간다. 아들들은 이번에는 엄마가 꼭 수영장에 들어와야 한다고 한다. 나도 비록 수영은 못 하지만 더운 날 물속에 들어가고 싶어서 못 이기는 척 수영복을 입는다. 아들들은 신이 났다. 첫째는 좋은 수영 선생님이다. 물에 뜨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찬찬히 설명하고 잡아준다. 친절하고 다정하다. 첫째의 어른스러움에 놀란다. 반면 둘째는 그동안 연마한 물속에서 앞 구르기, 물 속에서 물구나무 서기를 보여준다. 귀엽다. 나는 오늘은 잠깐이지만 잠수를 했다. 물이 너무 무서웠는데 막상 물속으로 들어가니 해볼 만하다 싶다. 첫째는 서울 가기 전까지 배영을 공짜로 알려주겠다고 한다. 갈수록 듬직하네. 언제 이렇게 컸니.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짓는다. 밥 냄새는 어쩜 이렇게 따스하고 푸근한지…… 맛있는 저녁 시간이다.

그렇게 냄비밥의 달인이 됩니다.

오늘 사람 많은 관광지 길을 건너며 호들갑 떠는 아들에게 찬찬히 가자고 하니 둘째는 나에게 엄마가 제일 호들갑이라고 말한다. 웃음이 난다. 그런 엄마는 수영장에서 잠수한다고 물에 뜰 거라고 또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아들들은 엄마의 호들갑을 웃음으로 받아주었다. 우리 셋은 이곳에서 이렇게 친해지고 있다. 즐겁구나.


여기에서도 아들들에게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소리를 퍼붓기도 하지만, 그 횟수는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간 내가 보지 못했던 아들들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잘 크고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일한다는 이유로 어떤 날은 아이들 모습보다 내 피곤만 앞세우며 잔소리를 하곤 했다. 이렇게 쉬니 보인다. 내 아들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또 일을 시작하면 어떨지 아무도 장담은 못 한다. 그러나 또 다시 피곤한 하루가 온다해도 지금 우리가 낯선 곳에서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이 시간은 따뜻한 밥냄새처럼 우리 마음에 포근하고 아늑하게 남을 것이다. 사랑한다. 내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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