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붙드는 건 언제나 너의 작은 손
큰아이는 늘 또래보다 빨랐다.
말도 빠르고, 학습도 빨랐다.
그리고 미운 네 살도, 미친 일곱 살도
사춘기도 빨리 왔다.
아직 준비되지 못한 나는
그 아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홉 살쯤부터였을까.
나는 아이를 참 많이 혼냈다.
마치 일부러 트집을 잡기라도 하듯,
시시콜콜한 일마저 아이 탓을 했다.
고작 초등학교 2학년.
그 어린아이에게 뭐 그리 혼낼 일이 많았던 걸까.
어느 아침, 등굣길에 옆집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안녕? 너 정말 예쁜 아이구나~”
다정한 인사에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큰 소리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인사도 잘하네~”
칭찬을 아끼지 않던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내 팔을 붙잡으셨다.
“애 키우기 너무 힘들죠?
그맘때 애들이 참 말 안 들을 때예요~”
안쓰러운 표정과 그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혔다.
아… 내 소리가 옆집까지 새었구나.
그만 혼내라는 신호였구나.
그 순간,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큰아이와 나 사이 살얼음 같은 공기 속에서
눈치 보던 작은아이의 얼굴이 스쳤다.
정말, 그제야 보였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사시사철 제철 재료로 정성껏 밥을 짓고,
숙제와 준비물을 꼼꼼히 챙기고,
일까지 병행하며 모든 걸 감당해 내는
나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저 밥만 열심히 차려주는
그런 엄마였는지도 모른다.
그 자책이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아이가 뭘 잘못한 걸까.
내가 언제 이렇게 변한 걸까.
왜 그 작고 약한 아이에게
쏟아붓듯 감정을 내던졌던 걸까.
말을 안 듣는 아이와,
말을 잃은 아이 사이에서
나는 지쳐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감정을 던지는
나는 참 못난 엄마였다.
그날 이후, 매일 다짐했다.
‘예쁘게 보자. 사랑스럽게 보자.’
참 우스웠다.
그걸 다짐해야 할 일이라니.
가장 먼저 휴대폰 속 아이 이름을 바꿨다.
‘내 보물’
정말 보물처럼, 애지중지 아끼던 내 아이.
매일 마주 보고 웃어주고, 예쁘다 말해주고.
사랑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내 눈앞엔 천덕꾸러기가 아닌
진짜 ‘내 보물’이 있었다.
내 눈에 다시 하트가 돌아오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말썽도 짜증도 부쩍 줄어든 아이.
고팠던 엄마의 사랑이 채워진 걸까.
아니다.
아이는 늘 그대로였다.
변한 건, 내 마음이었다.
정말,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이는 내 앞에서 참 많이 재롱을 부렸다.
밥을 먹다 춤을 추고,
새로 배운 노래를 크게 부르고,
미주알고주알 학교 이야기를 쏟아냈다.
“엄마, 나 좀 봐~”
웃긴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며
나는 울컥, 눈물을 쏟았다.
놀란 아이가 물었다.
“엄마, 갑자기 슬퍼? 어디 아파?”
어쩌면, ‘내가 뭐 잘못했나?’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았다.
“우리 딸, 사랑해.
정말 사랑해.
너무 귀여워서 눈물이 났어.”
미안했다. 너무 미안했다.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야속했다.
우유를 첨벙 대던 그 아기,
반짝이는 눈으로 똥빵을 보던 그 아기,
넘어진 동생을 응원하던 그 아이가
작은 손으로 내 등을 토닥였다.
그 조용한 손길에, 나는 다시 일어섰다.
얼마 전, 사춘기의 반항을 한껏 지나고 있는
열세 살이 된 아이에게
나는 조심스레 고백했다.
그 시절,
엄마는 너희를 감당하기에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가끔은
네가 미워 보이기까지 했다고.
하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자책하고 반성하며
너를 다시 ‘내 보물’로 되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고.
한참을 듣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난 하나도 기억 안 나.
엄마가 그런 적 있었어?
난 괜찮아. 난 늘 사랑받았어.”
그 말에
부족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고,
가슴이 아렸다.
“고마워, 우리 딸.
엄마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뻐.”
내가 무너질 듯할 때마다
나를 붙드는 건 언제나—
아이의 작은 손에 담긴
조용한 그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