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한 마음의 치료법
어찌 지나왔는지 모를 14년이 흘렀다.
큰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결혼식을 올렸고,
남편을 따라, 아무도 없는 이곳에 왔다.
정기검진으로 가는 병원 말고는
아는 사람도,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9시가 넘어 돌아오는 남편은
늘 바빴다. 전화 한 통 건네는 것도 어려웠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보는 날이면
사랑스럽게 아내의 배를 쓰다듬는 남편들 틈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나도 남편 있어요!'
억울한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곤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도, 나는 여전히 갈 곳이 없었다.
한 달 된 아기를 안고 골목을 나서도
참… 막막하기만 했다.
날이 이렇게 좋은데, 벚꽃이 피는데.
외로움은 깊어졌고,
우울감에 정신없이 땅만 팠다.
그러다 50일 된 딸아이의 울음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핏덩이 하나가, 자꾸 나를 깨웠다.
백일쯤 되었을 때, 생각했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는 못 살겠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혼자 견디기엔 버거웠다. 누군가와 이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그 시절, 육아 블로그가 한창이었다.
나는 무작정 블로그를 개설해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웃어주었다.
세상과 연결된다는 느낌이 나를 살렸다.
조금씩 협찬이 들어오고,
육아용품의 80%를 체험단으로 감당하며
뿌듯한 날들을 보냈다.
신상 오가닉 웨어를 입히고
신상 유모차를 밀며 산책을 나가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게 내 프라이드였고, 그때의 행복이었다.
블로그가 우울을 덜어주고
예전의 내가 돌아오고 있다고 느낄 즈음,
어느 날,
좋아하는 빵을 앞에 두고도
내가 사진을 찍을 때까지 기다리는 아이를 보았다.
가슴이 저릿했다.
'이게 뭐지? 누굴 위한 거지?'
그날로 육아 블로그를 접었다.
아이가 모델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 말고는
이야기할 나 자신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심 끝에 찾아낸 건, 요리였다.
이유식에 ‘이응’도 모르고 배달 이유식을 먹이던 내가
음식을 만든다고 별별 시도를 했다.
그 덕에 솜씨는 금세 늘었다.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
버터 반죽으로 츄러스를 튀기고,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직접 만들었다.
그 시간들이 즐거웠다.
그러다 어느 날,
간식을 기다리며 혼자 노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함께 요리 했다.
세 살짜리가 뭘 만들겠나. 그래도 같이 했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랑스러운 내 말벗.
남편도, 친정 부모님도
내게 산후우울증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씩씩하게, 성깔로 밀어붙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돌아보면, 나는 많이 아팠다.
내 발로 정신과 문을 두드릴 만큼.
그런데 그 밥상머리에서
아이와 마주 앉아 웃고, 요리를 하며
그 아픔이 조금씩 나았다.
아이는 매번 함께 요리하며 자랐고,
나도 그 옆에서 함께 자랐다.
우리가 함께한 요리는
아이만을 위한 것도, 나만을 위한 것도 아닌
서로를 위한 치료였다.
지금도,
소통이 필요하거나 위로가 필요할 땐
우리는 함께 요리를 한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우리만의 확실한 치료제다.
나는 오늘도 밥을 지으며 마음을 나누고,
글을 쓰며 하루를 견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