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텐 그 한 그릇이 참 따뜻했는데.
뜨거운 흰쌀밥에 마가린 한 숟갈을 넣고 덮는다.
간장을 뿌리고, 마가린이 녹으면 야무지게 비빈다.
부드럽고, 촉촉하고, 간간하면서,
기분 좋은 기름진 맛.
어릴 적, 내가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
부모님이 종종 해주시던 밥.
‘마가린 간장밥'
속도 편하고, 위로도 되고.
나한텐 그 한 그릇이 참 따뜻했다.
지난 새벽,
자고 있던 작은애가 안방으로 불쑥 들어왔다.
기척도 없이, 힘이 쭉 빠진 모습으로.
“후야, 왜 그래? 어디 아파?”
기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세상 안쓰럽게 꺼낸 한마디가.
“엄마… 배가 아파.”
한번 자면 업어가도 모를 애가 깼을 정도니,
얼마나 아팠을꼬.
이리저리 촉진도 해보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도 아이는 잘 모르겠단다.
일단 약을 먹여 내 옆에 눕혔다.
“엄마 손 약손 해줄게.”
한참 배를 문질러도, 불편한지 계속 뒤척였다.
“그래도 아파… 화장실 갔다 와 볼게.”
혹시 대변일까 싶어 갔지만 실패.
“푸는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배가 아파…”
“그래, 누워봐. 약손 좀 더 해줄게.”
다시 아이 옆에 누워 배를 천천히 쓸어내리는데,
몸통이 움찔거리는 게 심상치 않다.
..라고 생각 하는 순간.
울컥. 콸콸.
누운 자리에서 저녁 먹은 걸 그대로 쏟아냈다.
손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아이도 스스로 놀라 몸을 떨며 울먹였다.
이불에 토한 게 불편한 건지,
민망함과 괴로움 사이 어딘가에서
몸을 들썩이며 토를 참는다.
“괜찮아. 이불은 빨면 돼. 그냥 다 토해, 괜찮아.”
내 말에 망설이던 아이는 한바탕 더 쏟아냈다.
남편은 겁먹은 아이를 다독이며 욕실로 데려갔고,
나는 이불을 걷었다.
새 이불을 깔고,
진정된 아이를 눕힌 지 몇 분쯤 지났을까.
잠이 들락 말락 하던 아이가 또 이상하다.
엄마의 촉…
2차전이 남았구나.
“후야, 일어나 봐. 화장실 가보자. 또 토할 것 같아.”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1초가 급하다. 안 그러면 지금 막 깔아 놓은 새 이불까지 빨아야 한다.
늘어진 몸을 부축해 욕실로 데려갔고,
아이는 기가 막히게 딱 변기 앞에서
남은 걸 모두 게워냈다.
와.
잠시 스스로 감탄했지만,
아픈 애 옆에서 감탄은 무슨.
남김없이 쏟아낸 아이를 침대로 데려오자,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남편과 나는 새벽 내내 이불을 빨았고,
5분 대기조처럼 아이를 살피며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 아이는 잘 잤는지, 꽤 괜찮아 보였다.
늘 하듯 딸그락 아침상을 차려 아이를 불렀다.
그런데, 식탁에 앉은 아이가 수저를 들지 않는다.
“왜? 못 먹겠어? 아직도 배 안 좋아?”
“아니야.”
“그럼 왜 안 먹어? 어제 토해서 배고플 텐데.”
내 말에 아이가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말했다.
“… 엄마, 맛없어.”
오 마이갓. 멘탈이 증발한다. 민망함에 실소가 났다.
“어? 그래? 맛이 없어?”
부드럽게 먹으라고,
마가린 간장밥을 촉촉~하게 말아줬는데.
맛이 없단다.
정신없는 와중에 얼른 뭐라도 먹여야겠단 마음에
그 밥이 생각이 났던 건데,,,
밤을 새웠더니 정신이 나갔나 보다.
토하고 속 비워진 애한테 기름에 비빈 밥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
“그럼 후야, 뭐 먹을래? 국에 밥 말아줄까? 죽 끓여줄까?”
“아니, 시리얼 먹을래.”
마가린이나, 시리얼이나, 뭐 내가 생각할 땐 거기서 거기 같은데
초코 시리얼 한 그릇을 시원하게 비워낸 아이는
시원한 트림과 함께 미소를 보였다.
“…어. 후야, 너 다 나았구나. 잘했어 ”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가 이렇게 시작됐다.
마가린 간장밥은 나나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