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가 있는 마당.
타지의 바람은 늘 차가웠다. 낯선 말투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 사이에서 웃어야 했다.
“인맥이야, 인맥.”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인성은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낮엔 거래처를 돌고, 밤이면 모임에 나갔다. 사람들을 만나 이름을 알리며 입지를 넓혔고, 주문도 조금씩 늘어갔다. 일손이 모자라 직원을 들이자 애경의 고단함도 그만큼 깊어졌다. 공장의 미싱 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고, 직원들의 식사와 빨래까지 감당해야했다.
그렇게 공장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 기계 소리가 공장을 울렸다. 관공서, 호텔, 학원… 큰 계약이 잇달아 들어오며 ‘인성쇼파공장’은 쉬는 날이 없었다.
“이제 진짜 공장답네.”
이만하면 살만하다 싶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바쁘게 하루가 돌아가던 어느 날, 공장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인성아! 니 아부지가 죽었다!”
그 순간,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멎었다. 톱밥이 날리던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인성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오색천이 걸렸던 마당에 이번엔 상복이 나부꼈다. 웃음이 피었던 그 자리에 울음이 깔렸다. 인성은 제상 앞에 향을 올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마당엔 늘 내 인생이 걸려 있구나.’
바람에 흔들리는 호롱불 옆으로 향 냄새가 마당을 메웠다. 곡소리와 웃음소리가 뒤섞인 아버지의 마당 끝, 낡은 담장 앞 대추나무는 유난히 붉었다.
어린 시절, 미군들이 던져주던 초콜릿 하나에 형제들이 기뻐하던 곳. 라면 한 그릇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곳. 지옥 같은 목수공장에서 도망쳐 돌아오고 싶던 곳. 결혼식을 올리던 날, 웃음이 가득했던 그곳.
이제 그곳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저녁연기 냄새도 사라졌다. 부엌 벽에는 그을음만 남아 있었고, 낡은 장독대 위엔 비 맞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애경아, 어머니 우리가 모시고 가야겠어.”
“…응.”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속엔 천근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장례가 끝나고, 인성은 마지막으로 본가의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리며 천천히 대문을 닫았다.
덜컥—
작은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그 소리는 어린 시절 웃음소리와 겹쳐져 한동안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 갑시다.”
인성은 조용히 어머니의 팔을 붙잡았다. 더는 ‘돌아갈 곳’이 아닌 이곳. 문틈 사이로 바람이 스쳤다. 무성한 대추나무의 배웅을 받으며, 인성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삶이 나를 끝없이 무너뜨려도,
나는 끝내 다시 일어선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