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쇼파공장 15화

시간은 묵묵히 제 갈길을 갔다

by 선지혜


어머니를 모셔온 날,

바람이 한 번 크게 집 안을 훑고 지나갔다.

애경은 이불을 한 겹 더 덮어드리며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라는 말의 뜻을 새삼 깨달았다.

빨래는 한 번 더 늘었고, 국은 한 번 더 끓어야 했다. 밥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어머니는 목소리를 높였다. 애경은 그럴 때마다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애야, 나 집에 갈란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문을 열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상실은 말로 다 메워지지 않았고, 치매는 그 마음의 빈자리를 서서히 파고들어 깊어졌다.

애경은 어머니를 모시며 공장일과 아이까지 감당해야 했다. 조금도 쉬어지지 않는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악화되는 어머니 병세에 인성과 애경의 다툼도 잦아졌다. 결국 인성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모두 잠든 고요한 밤, 인성은 애경을 불러 소주 한 잔을 따랐다.

“여보… 어머니, 요양원으로 모실까.”

그 말에 애경은 아무 말 없이 소주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어머니, 다음 주에 또 올게요.”

“그래요, 총각! 다음에 또 만나요.”

어머니는 인성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어머니 마음이 더 편하리라— 인성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시간은 야속할 만큼 빠르게 흘렀다.

어머니는 한 주가 다르게 야위었고, 숟가락을 드는 일조차 힘겨워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인성에게 말보다 깊은 고통이었고, 애경 역시 사라져 가는 어머니를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참으로 맑았던 하늘.

그날은 어쩐 일인지 어머니가 애경을 한 번에 알아봤다.

“어머니!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그럼! 우리 맏며느리지. 아가, 고생이 많다. 니가… 고생이 많아. 그런데, 옆에 이 총각은 누구여?”

아들도 잊은 채 애경만을 기억하던 어머니. 야위었지만 따뜻했던 그 손이 애경의 손을 꼭 감싸 쥐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말 한마디만 남긴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제 그만 쉬세요, 어머니.”

평온해진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애경은 뜨겁고 또 차가운 눈물을 흘렸다.



시간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

인성이 만든 쇼파는 이 지역 어느 집에서나 한 번쯤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조립식 공장에 스테이플이 박히는 소리가 빈틈없이 울려 퍼졌고, 집도 조금씩 사람 사는 모양을 찾아갔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성은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했다. 방은 작고, 벽지는 누렇게 떴지만 집 안에 화장실과 싱크대가 있었고, 아이들 방도 따로 내어줄 수 있었다. 애경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 눈앞이 밝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밤에 화장실 갈 때 엄마 안 깨워도 되겠다!”

아이들 목소리도 한껏 들떴다. 언제든 온수가 나오는 싱크대와 좌변기가 물을 삼키는 모습은 기적처럼보였다.

그 기적 같은 공간에 어머니가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 인성과 애경의 마음 한켠을 오래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네 식구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애경은 요즘 들어 머리가 조여 오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다. 처음엔 피곤해서겠거니 넘겼지만 통증은 점점 깊어졌다. 잠을 자도 쉬는 느낌이 없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눈을 감을 때마다 머릿속 깊은 데까지 울렸다. 며칠째, 애경은 국을 끓이다 말고 벽을 짚고 숨을 고르는 일이 잦아졌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래요. 지금은… 위험합니다. 머리를 쉬게 해줘야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경은 결국 쓰러졌다.

“오늘 넘기기 힘듭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어요.”

병실 앞에서 의사의 말은

인성과 아직 어린 딸아이의 가슴을

조용히, 그러나 깊게 찔러왔다.





삶이 나를 끝없이 무너뜨려도,
나는 끝내 다시 일어선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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