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쇼파공장 13화

썩은 동아줄일지라도.

by 선지혜


며칠 동안이나 집 안을 쓸고 닦았다. 젖은 이불과 축축이 늘어진 옷들을 빨고,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벽지를 새로 발랐다. 장판을 들어내 구석구석 문질러 닦았지만 퀴퀴한 냄새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습기와 한숨이 뒤섞인 공기가 방 안에 오래 눌러앉았다.


공장도 다르지 않았다.

전기가 끊긴 지하공장엔 아직 채 빠지지 않은 물이 썩은 냄새를 뿜고 있었다. 아무리 말려도 나무는 뒤틀린 채 제 모양을 찾지 못했고, 가죽의 얼룩은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기계에 기름칠을 해도 돌아가는 소리는 거칠었다. 인성과 애경의 마음에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남았다.

공장이 멈춘 날들이 길어지자 인성의 마음이 자꾸 걸렸다. “그래도, 직원들 월급은 챙겨야지.”

하지만 그런 마음을 모르는 듯 직원들은 하나둘 새 일터를 찾아 떠났다. 오랜 기다림에 그들의 삶도 녹록지 않았으리라. 그들을 떠나보내는 인성의 마음은 더 얼룩져갔다. 그렇게 톱밥 냄새 대신 물비린내가 스민 공장에는 인성과 애경 둘만이 남았다.

“일단 밀린 주문부터 하자. 언제까지 미룰 순 없잖아. 되는 데까지 해 보자.”

운영을 재개하며, 명심에게 잠시 맡겨두었던 아이들을 집으로 다시 데려왔다. 물의 흔적이 채 가시지도 않은 그 단칸방이 무엇이라고. “와! 우리 집이다!” 깔깔대며 베개에 볼을 비비는 아이들은 그 자체만으로 애경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수해 뒤 첫 등교날, 딸아이의 얼굴이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인성과 애경은 미뤄둔 거래처의 주문을 며칠 밤을 새워가며 처리했고, 공장을 다시 일으키려 그렇게도애를 썼다. 어느덧 둘째 아이도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어떻게든이 공장을 이끌어야 했다. 그러나 둘만으로는 예전만큼 주문을 처리할 수 없었고, 거래처도 하나둘 줄어갔다. 주문이 점점 줄고, 공장은 또다시 벼랑 끝에 몰렸다.



“오빠, 우리… 망하는 걸까? 그만해야 될까?”

“아니. 방법은 아직 있어. 우리 애들 살려야지.”

인성은 거래처에 전화를 걸었다.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그들에게 사정을 꺼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국의 거래처에 사정을 알리고, 부탁 전화를 돌린 지 두어 달이 지났을 때였다. 인성의 공장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 여기 괜찮은 공장 자리가 있어요. 한번 와서 보시면 좋겠어요.”

인성은 눈을 감았다. ‘제발.’ 썩은 동아줄일지라도 잡아야 했다. 그는 곧장 그곳으로 출발했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그 간판을 마주했다.


‘인성쇼파가구공장.’

매장이 딸린 부지 100평의 단층 건물. 건물 외벽의 커다란 간판에는 인성의 이름이 걸려 있었고, 필요한 기계들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여기구나. 진짜 내 자리.’

서울로 돌아온 인성은 문을 열자마자 말했다.

“애경아, 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이름이 걸린 가게가 있어.” 애경은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하겠네.”

“그래도 애경아, 예전이랑 달라. 지금 우리는 기술이 있잖아.”

“알았어, 오빠. 다시 해 보자.”

이주는 단숨에 결정됐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보증금에 가진 걸 다 넣으면 살 집이 남지 않았다.

‘그래도 가야 해. 여기 말고는 길이 없어.’



공장 뒤로 난 밭길을 조금만 더 들어가면 아주 오래된 흙집 한 채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문도, 담장도 없었다. 현관 자리에는 천막만 걸려 있었다. 바람도 제대로 막지 못했고, 창문조차 없었다. 마루와 옛날식 연탄아궁이 부엌. 지하수를 끌어다 쓰고,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집 뒤편 저 멀리에 있었다.

‘그래. 일단은 잠만 잘 수 있으면 되지.’


어렵게 부탁해 무보증 월세집을 구했지만 그 집 앞에 애경은 한참을 멈춰 섰다.

‘여기서 살 수 있을까. 그 지하방보다 더한 이런 흙집에서 과연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애경은 자신 없었다. 허나 그녀의 앞에는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조금만 버티면 돼. 돈 벌어서 이사 가자.’ 결심은 섰지만, 명심의 곁을 떠나는 애경의 발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막내야, 철부지가 거기까지 가서 우짤까.”

“언니, 자주 놀러 올게. 김장 때도 올게. 언니가 김치 담가줘야지.”

“그래. 몸 조심하고, 조심히 가고, 전화 자주 하자.”

이불 한 채, 몇 벌의 옷, 손때 밴 공구들. 노끈으로 묶어둔 아이들의 장난감 몇 개.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성은 나무판자를 구해와 현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밑목을 잡고, 세로 판자를 세우고, 틈을 막고, 마지막에 자물쇠를 달았다. 허리를 굽힌 채 온종일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문이 생겼다.

“자, 됐다.”

그 한마디에 애경의 어깨가 살짝 내려앉았다. 문이 있다는 건, 비바람을 한 겹 막아준다는 것이었다.

그 밤, 골목 담장에 피어난 장미향이 5월의 공기를 데웠다. 멀리서 퍼지는 뜸부기 울음소리가 하늘을 채웠다.

“새로운 시작이야, 해 보자.”

그렇게 ‘인성쇼파공장’의 문이 열렸다.







삶이 나를 끝없이 무너뜨려도,
나는 끝내 다시 일어선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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