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쇼파공장 16화

아득히 멀어지는 기차소리

by 선지혜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병원,

수액줄이 스칠 때마다 애경은 몸을 조금씩 움츠렸다.


의사들은 병명을 단정 짓지 못했고,

며칠째 이어지는 검사는 애경의 기력을 끝없이 갉아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마음의 고통이었다.


‘내가 없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되지?’

삶과 죽음이 오가는 어둠의 경계에서

단 하나 흔들리지 않은 것은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잠깐씩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그 생각이 애경의 심장을 억지로 뛰게 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애경이 천천히 눈을 떠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의사는 위기를 넘겼다며 퇴원을 말했고

애경은 아무 말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한다 해도,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말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날, 먼지 쌓인 집안을 쓸고 닦았다.

밀린 빨래를 널고 식탁에 앉자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그날따라 더 청량하게 들렸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애경을 꼭 끌어안았다.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보송하게 마르는 베란다의 빨래.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그날따라 가슴을 벅차게 채웠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애경은 병원을 오가며 독한 주사를 버텨야 했다.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약도 잊지 않고 챙겨 먹어야 했다. 힘들고 고된 날들의 반복이었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버티는 동안 애경의 건강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리를 찾아갔다.


아이들도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일상의 리듬을 되찾았고, 인성쇼파공장의 기계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둘째가 중학생이 되면서, 거실 한 편의 미닫이 방이 아닌 온전한 자기 방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은 오래 미뤄두었던 ‘다음 걸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그들은 기차역 근처의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조금 더 번화하고, 조금 더 시끄럽고, 조금 더 넓은 곳.
늦은 밤까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가는 그곳은, 이 가족에게 또 하나의 큰 도약이었다.


이삿날,

바쁜 애경을 위해 명심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짐을 정리하고 청소를 도와준 뒤 다 같이 저녁상 앞에 앉았다.


“애경아, 애썼다. 장하고 대견해. 제부, 정말 고생했어요.”


인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많이 왔지요.”


그날 밤, 애경과 명심이 나란히 거실 바닥에 누웠다.창문 너머로 마지막 기차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와 도시의 끝자락을 스쳐 지나가며 남기는 묵직한 울음 같은 소리.

애경은 베개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 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기차는 마치 “오늘도 잘 버틴 하루”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서서히 아득해졌다.


‘저 기차는 어디로 가는 걸까.

저 안의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가게 될까.’


기차소리가 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저 그 소리가 사라질 즈음, 하루 동안의 걱정이 마음 한편에서 조금씩 풀려나가는 듯, 작은 진동처럼 애경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다.


고요가 내려앉은 거실, 애경이 조심스레 몸을 돌려 명심에게 속삭였다.


“언니,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

순간 명심은 고개를 들어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너무 잘하고 있지. 그 모진 세월 다 버티고, 여기까지 왔잖아.”


그 한마디가 애경의 마음을 다시 한번 단단히 세워주었다.
늦은 밤의 공기와 명심의 말은 오래도록 애경의 가슴속에 잔잔한 힘으로 남았다.






삶이 나를 끝없이 무너뜨려도,
나는 끝내 다시 일어선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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