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쇼파공장 17화

그 해 김장은 하지 말걸 그랬다.

by 선지혜

이사 후 첫겨울,

애경은 생전 처음 김장을 담았다.


매년 이맘때면 명심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었다.

“김장해야지. 언제가 좋겠냐? 이번 주 시간 되냐?”


명심은 손이 얼얼해질 때까지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고, 김치통을 채웠었다.

“네가 김치를 어찌해. 그냥 내가 다 해줄게. 맛있게 먹기나 해 “

명심은 해마다 애경의 김장김치를 걱정했다.




그러다 그해는 애경이 먼저 나섰다. 혼자서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도 힘든데, 언제까지 기댈 수 있겠어. 해 보자.’


언니를 거들며 배운 방법으로 어설픈 첫 김장을 하고는 명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김장했어. 나도 이제 할 줄 알아. 언니 것도 했어, 내가 보내 줄게”


명심은 전화기 너머에서 한참을 웃었다.

“뭐라고? 네가 김장을 했다고? 어찌했냐, 힘들었을 텐데. 그래 우리 막내 김치 한번 먹어보자”


며칠 뒤, 명심이 언니들에게
“막내가 김장을 했더라”라고 자랑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애경은 그냥 따뜻해서 웃음이 났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언제부턴가

애경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이상하게 일렁였다.

별일 아닌데도 가슴이 자꾸 쿡쿡 건드려지고,

그날도 커피 향이 평소보다 쓰게 올라왔다.


“애경아, 어디 안 좋아? 왜 그리 힘이 없어?”

인성이 물었다.


“글쎄… 오늘따라 기운이 좀 없네.”

애경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명심의 남편, 막내형부였다.


늘 주고받던 안부전화가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애경의 심장을 흔들었다.

“여보세요… 형부?”


형부의 목소리는 낮고 굳었다.


“처제, 놀라지 말고 들어. 언니가… 쓰러졌어. 중환자실이야.

마음의 준비를… 하라네.”




애경의 귀 안이 먹먹해졌다.

들고 있는 전화기가 애경의 심장과 함께 요동을 쳤다.


“뭐라고요… 형부? 언니가 왜요?”

굳어진 애경 옆에서,

인성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언니가 쓰러졌대. 나 지금 언니한테 가야 돼”

“그래, 지금 바로 가자.”

인성의 목소리도 아주 작은 떨림이 있었다.




중환자실. 그곳에 명심은 미동도 없었다.

차가운 병원 냄새가 애경의 가슴을 죄었다.


마치 자고 있는 사람처럼 평온한 명심의 얼굴.

이제야 짐을 내려놓은 듯한 그녀의 침묵이, 애경의 마음을 더 찢어 놓았다.


“언니… 나 왔어. 그만 일어나, 응?”


언니의 손은 아직 따뜻했다. 그 따뜻함 때문에 더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심은 단 한마디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처제, 언니가 자네 오기를 기다렸나 봐. 이제야 마음이 놓였나 보네. 잘 보내주세.”


그 순간 애경은 넋이 나간 듯했다.

울음도 터뜨릴 새 없이, 너무나 허무하게 언니는 떠났다.


“언니 없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

그때 나 혼자 김장했다고, 실없이 좋아했지. 하지 말 걸 그랬어…”


인성이 천천히 애경의 어깨를 감싸 안자,

그제야 그녀는 주저앉아 목을 놓았다.

“언니, 애들 장가가는 건 봐야지… 그건 보고 가야지…”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엄마였고, 친구였고, 고향이었던 언니.

언니 없는 세상이… 너무나 겁났다.




명심을 보내고,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를 시간 끝에서야

인성의 머릿속엔 명심의 오래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인성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뎌 단칸방에 살던 그 시절,

“내 동생이 그런데…” 하며 애경을 소개해주겠다던

옆방의 억척 아줌마, 명심의 얼굴.


여름이면 돗자리 한 장 들고 한강 다리 밑으로 모두 모여,

삼겹살을 뒤집으며 나누던 그 웃음소리.


인성쇼파공장을 향해 멀리 떠나올 때 눈시울을 붉히며,

“제부, 애경이 좀 잘 부탁해요.” 하던 명심의 그 말.


그 모든 얼굴과 목소리가

인성의 가슴 한쪽을 뜨겁게 쓸고 지나갔다.







삶이 나를 끝없이 무너뜨려도,
나는 끝내 다시 일어선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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