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달콤했던 쇠 맛
인성쇼파공장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인성은 더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
각종 지역 모임에서 사람들은 그에게 자연스레 ‘믿고 맡기는 자리’를 내어주었고, 봉사단체의 회장까지 역임하며 그의 입지는 점차 넓어졌다.
겨울이면 차디찬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연탄을 나르고, 여름이면 숨 막히도록 더운 독거노인 집에
선풍기를 달아주며 자원봉사에도 앞장섰다.
그가 결성한 상인회에서는 해마다 장학금을 기부했다. 빠듯한 살림이어도 기부와 봉사를 멈추지 않았다.
몸은 고되어도 나눌 수 있음에 날마다 감사했고,
“이만하면 됐다”는 말로 소주 한잔 기울이며 고단한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세월은 스치는 바람처럼 바쁘게 흘렀다.
어느덧 큰아이가 대학에 입학했다. 지극히 평범한, 누구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삶이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내 집. 전세도 아닌, 온전한 내 집을 계약하던 날.
“이제 우리도 집을 샀다.”
넘겨받은 열쇠를 손에 쥐는 순간 차갑고 단단한 쇠맛이 인성의 혀끝에 스며들었다. 오래 꿈꿔온 그 쇠맛은 이상하리만치 달콤했다.
인테리어가 시작된 날, 애경은 인부들이 들락날락하는 현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오래된 장판 틈에서 올라오는 눅눅한 냄새는 지나온 세월과 자연스레 겹쳐졌다.
싱크대가 들리고, 뜯겨나간 장판 아래 시멘트 결이 드러나는 모습을 애경은 말없이 오래 바라보았다.
“여보, 나 진짜 믿기지가 않아. 이게… 우리 집이라니.”
한쪽에 놓인 시멘트 포대 위에 조심스레 앉아 눈앞에서 새하얗게 발라지는 벽을 바라보던 애경의 눈가가 어느새 붉게 젖었다.
“우리, 여기까지 왔네.”
“그래. 우리 여기까지 왔어. 그 세월 어떻게 달려왔는지… 참.”
인성은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둘째도 대학에 들어가며 아침 밥상에 둘러앉는 시간이 줄었고, 저녁에 네 식구가 모이는 날은 손에 꼽았다. 둘만 남은 저녁이면 조용한 거실에 마주 앉아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너무 조용하네. 절간 같구먼”
“그러게… 이제야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는데, 애들은 벌써 다 커서 나가버렸네”
둘은 적적함을 달래러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드라이브를 다녔다. 봄이면 봄바람을, 가을이면 단풍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일상이 지난 세월의 보상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날도, 너무나 평범했던 유난히 하늘이 깊었던 주말이었다.
인성은 외지에서 열리는 자원봉사 행사에 나가 있었다. 한참 축사가 이어지던 그때,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축사와 음악, 박수 소리가 겹겹이 쌓인 들판에서 인성이 전화를 놓치자 벨소리는 연신 끊임없이 울려댔다.
“어이 박 사장, 무슨 일이길래 이리도 전화를 해?”
태연히 전화를 받은 인성에게 수화기 너머, 다급한 박 사장의 까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큰일 났어요! 가게에 불이 났어요! 지금 어디 계세요? “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라고?”
“불이요, 불! 형님 가게가 지금 불에 다 타고 있다고요! “
그때 인성의 머릿속을 가장 먼저 스친 것은 불이 난 공장이 아니라, 남겨진 애경이었다.
‘이 사람, 혹시 공장에 있던 건 아니겠지.’
인성은 애경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받지 않았다.
삶이 나를 끝없이 무너뜨려도,
나는 끝내 다시 일어선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