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고, 빈틈없이.
철거가 시작됐다.
“형님, 이쪽은 제가 할게요.”
“소개받고 왔습니다. 뭐부터 할까요?”
소개의 소개로 찾아온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망설임 없이 장비를 들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는 이미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모든 것을 잃고 처음 이곳의 간판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안도감.
아이들이 뛰놀며 깔깔대던 웃음소리.
동네 사람들이 모여 송년회를 하던 시끄러운 밤.
잿더미가 된 지난 시간들을 치우는 대는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다.
쌓인 것은 많았지만, 남길 것은 없었다.
내려앉은 바닥과 타다 남은 기계들. 인성에게는 무너짐의 좌절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버겁게 다가왔다.
철거가 마무리될 무렵, 은행에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 축하드려요. 대출 승인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마음의 빚과 은행 빚까지 어깨에 얹힌 무게는 여느 때보다 컸지만
건물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제야 인성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땅속 깊이 철근이 박히고, 철골이 하나 둘 올라갔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건물은 다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수고하십니다. 커피 한 잔씩 드시고 하세요. “
인성은 자재를 옮기고 커피를 나르며 바삐 움직이는 손들 곁을 지켰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함께하는 것만큼은 빠지지 않았다.
단층짜리 건물의 지붕이 덮일 땐,
인성은 마치 그것이 뻥 뚫린 그의 가슴을 꼭 닫아주는 것만 같았다.
넓은 창에 샤시가 달리고 쇼윈도 유리에는 다양한 쇼파 사진이 붙었다.
벽지가 발리자 제법 번듯한 매장의 모습을 갖추었다.
공사 마무리를 앞두고, 타일공인 명심의 남편이 찾아왔다.
“형부, 어서 오세요. 먼 길 와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 말 하지 마, 처제. 내가 당연히 해 줘야지.”
형부가 작업을 시작하자 바닥에는 크고 단단한 타일이 한 장씩, 한 장씩 깔렸다.
서두르지 않고, 빈틈없이 거친 바닥이 메워졌다.
그리고 무너졌던 자리 위에 또 다른 새로운 시간들이
한 장씩, 빈틈없이 쌓여갔다.
삶이 나를 끝없이 무너뜨려도,
나는 끝내 다시 일어선다.
- 인성쇼파공장, 그 시절의 기록 -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