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반려동물과 함께 잠을 잔다는 건

by 달의 깃털

반려동물과 함께 잠을 잔다는 건

머리맡에 하늘이, 옆에 누운 행복이, 발 끝에 싸이, 빈틈없이 꽉 찬 침대. 우리 집 밤 풍경이다.


처음부터 아이들과 함께 잤던 건 아니다. 싸이를 입양하고 며칠 되지 않아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분리불안을 없애볼까 하는 생각 반, 잘 때만큼은 편하게 자고 싶은 마음 반 해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강아지들과 함께 자지 않았다. 어쩌면 안방 침대만큼은 온전한 나만의 공간으로 남겨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 한편에서 싸복이남매와 함께 자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이 욕망에 맞서 내 침대를 온전히 지키고자 했던 나의 결심이 무너지게 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다.


20181028_184014.jpg 어멍은.... 음.... 어디에 누워야 하는 걸까...

싸복이 남매는 안방에서 자던 내가 기침만 해도 반응을 했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지 않은 상태에서, 눈을 뜨기만 해도 어떻게 어멍이 일어난 줄 알고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거실로 나가면 죽은 사람 다시 살아온 듯(?) 반겨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싸복이남매가 거실 개방석에서 편하게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내가 안방에 자러 들어가면 밤새 안방 문 앞에서 잔다는 것을. 특히 행복이가. 그걸 알게 된 순간, 편한 자리에서 편하게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스스로가 많이 부끄러웠다. 저렇게 간절하게 어멍을 원하고, 나도 사실은 마음으로 원하고 있는데, 아니 우리가 무슨 견우직녀도 아니고 왜 따로 자야 하는 거지? 하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20181222_192255.jpg 음... 어멍은.... 또 어디에 누워야 하나...

그 이후로는 안방 문을 확(?) 오픈했다. 오픈 후에도 의외로 싸이는 거실에서 잘 때가 더 많았다(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행복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주야장천 어멍 곁에서 잔다. 알고 보면 우리 행복이는 어멍 바보다. 더위를 많이 타서 붙어 자는 법은 드물지만 대개는 침대 어딘가에서 자고 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자 이제 고양이 식구까지 더해, 넷이 함께 복닦복닦 자는 풍경은 우리 집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아예 나는 이제 거실에서 잔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 뒹굴뒹굴 자고 싶었던 나의 욕망이 결국은 '온전하게 혼자 자고 싶은 욕망'에 맞서 승리하게 된 것이다.


20181217_075613.jpg 음.... 오늘도 역시... 누울 곳이 없네...

아이들과 함께 자는 일은 생각보다 퍽 행복하다. 특히 행복이 대형 쿠션을 안고 잘 때 기분은 뭐라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 지난번에도 밝혔지만, 행복이 쿠션은 우리 집에서 인기 절정 아이템(?)이다. 나도, 싸이도, 하늘이도 잘 때는 모두 행복이를 찾는다. 나는 행복이 쿠션을 뒤에서 끌어안고 자는 걸 좋아하고, 싸이와 하늘이는 은근슬쩍 행복이 궁둥이에 기대어 자는 걸 좋아한다. 행복이가 도대체 뭐라고, 안는 순간 세상 모든 시름이 날아간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불면의 밤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런 밤조차 행복이 쿠션을 안고 있으면 '뭐, 잠 못 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하는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다. 매직이 따로 있을까 싶다.


KakaoTalk_20190212_170559482.jpg 음...초대형 인절미의 튼실한 궁둥짝에 기대면 잠이 솔솔 쏟아진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반작용 혹은 부작용이 있는 법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는 일이 매번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행복이 쿠션은 일반 쿠션과 달리 무겁다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대개는 행복이가 거실에서 먼저 잠들었다가, 내가 잠든 후에 침대로 입장한다. 꿀잠 중인데 행복이가 덮친다고 상상해 보시길. 때로는 머리채를 밟고 지나가고, 때로는 몸 위에 턱 하니 기댄다. 자다가 머리끄덩이 잡히는 기분이 유쾌할 리 없으며, 30킬로짜리가 (특히 가슴팍에) 퍽하고 몸을 기대면 진짜로 숨이 턱 하고 막힌다. 물론 가끔 발길질에 채이기도 한다. 자다가 추워서 깨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십중팔구 행복이가 이불 위에 올라가 있어 제대로 이불을 덮지 못한 경우다. 이불은 좀처럼 꼼짝을 않고, 춥기는 하고, 때때로 자다가 벌떡 일어나 행복이를 옮겨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 무겁긴 좀 무거운가 - 아 정말 이럴 땐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20181121_081606.jpg 음... 초대형 인절미 품이 제일 따뜻하고 포근하다....

어쩌다 한 번씩은 침대에 먼저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가장 가관인 것은 정확히 딱 대각선으로 누워 자고 있을 때다. 퀸사이즈 침대에 어디 한 구석 내 몸을 뉘일 빈틈이 없다. 언젠가는 이런 행복이를 옮겨 보겠다고 양손으로 질질 끌다가(깨운다고 일어날 애가 절대 아니므로), 행복이와 함께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적도 있다(그 당시에 침대가 제법 높았다). 나도 엄청 놀랐거니와, 꿀잠 자던 행복이는 완전 '개 놀람+개 당황' 했다. 놀라서 두배로 커진 행복이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샌다.


KakaoTalk_20190212_170559207.jpg 음... 궁둥이에 기대자는 것도 나쁘지 않군.. 역시 초대형 인절미 짱....

무지개다리를 건넌 뭉치는 또 어떠했던가. 어멍의 넓디넓은 몸뚱이 중에 하필 (숨쉬기 곤란하게) 가슴팍에 눕고, 자고 있는 중에 굳이 머리에 꾹꾹이를 하기도 했다(어멍은 집사가 받으면 행복해진다는 '꾹꾹이'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어요). 가장 황당한 건 목 위에 올라와 잘 때다. 정확히 누르면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급소를 찾아 목 위에 발을 디딜 때면 정말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자다가 비명횡사할까 봐. 맞다. 자는데 오줌 스프레이를 뿌려 고양이 오줌을 뒤집어쓴 일도 있었지. 뭉치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이 마저도 떠올리면 행복한 추억이다.


20181008_061847.jpg 반려동물과 함께 잔다는 건 = 엄청나게 행복하다는 것

잠에서 깨면 내가 맨 처음으로 하는 것은 아이들을 확인하는 일이다. 각각의 위치를 확인하고(잘 자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아이를 호출한다(주로 싸이는 거실에서 잘 때가 많다). 부르면 백발백중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오는 싸이와 인사하는 것으로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반갑다고 하늘이 머리를 쓰다듬으면 새벽 댓바람부터 손가락을 깨물 깨물 놀자고 달려든다. 아, 물론 이 부산스러운 와중에도 행복이는 '행복이스럽게' 절대 깨는 일이 없다. 그래도 내가 이제 일어나라고 배를 문지르면, 자는 와중에도 문지르게 쉽게 살짝 다리를 들어주는 센쓰 정도는 보여주기도 한다(행복이의 성품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동스러운 일이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놀랍게도 단 하루도 지겹지 않고 행복한 나의 아침 풍경이다.


때때로 사는 게 고역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해서, 아이들과 함께 잠들고 눈 뜰 수 있어서 참 좋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싸복이 남매의 아주 더러븐(?) 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