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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Feb 07. 2020

고양이 같은 강아지 싸이,
강아지 같은 고양이 하늘이

고양이와 살아보기 전 나는, 싸이를 보며 가끔 생각했다.

'쟤는 강아지가 아니라 고양이 같아' '싸이는 혹시... 강아지 탈을 쓴 고양이가 아닐까?'


저때는 고양이란 동물과 동거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저 짐작일 뿐이었다. 몇 년간의 집사 체험에 동네 캣맘이란 타이틀까지 달고 보니, 내 짐작이 맞았다. 지켜보면 볼수록 우리 싸이는 '강아지의 탈을 살짝 빌려 쓴' 고양이가 아닌가 싶다. 


너는 고양이냐 강아지냐 정체를 밝혀라~

싸이는 참 독립적이다. 잘 때도 대체로 혼자 잔다. 가끔 한 번씩 내 곁에 붙어 자다가도 꼬물거리는 어멍이 부담스러운지 금방 자리를 옮겨간다. 먼저 침대에서 잠들었을 때도 내가 들어가면 대개는 슬쩍 도망간다. 함께 사는 반려인 곁에 찰싹 붙어 자는 강아지들이 많다는데, 그저 소문만 들었지 구경을 못해봤다. 독립적인 것이 뭔지도 모르는 어멍 바보 행복이조차, 더위를 너무 많이 타서 어멍 곁에 오래 붙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강아지고, 누가 고양이냐?

싸이는 어멍 무릎에 올라오는 일도 퍽 드물었다. 다행히 어멍에 대한 집착은 좀 있는 편이어서 무릎 고양이 하늘이라는 새로운 연적(?)의 출현으로 어느 날 무릎 강아지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하늘이가 내 무릎에 올라오는 일이 드물어졌는데도 싸이는 그래도 여전히 자주 무릎에 올라온다. 싸이를 무릎에 올라오게 하는 밀당의 기술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내 무릎은 행복이 베개, 행복이 머리는 싸이 베개. 물고 물리는 꼬리 열차 같은 느낌이다.

간단하다. 싸이의 눈먼 질투심을 조금만 활용하면 된다. 행복이를 끌어안고 이뻐하거나, 아주 다정하게 하늘이의 이름을 부르면 위기감을 느낀 싸이는 어멍의 무릎에 심지어 눕기도 한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을 줄 알았으면 진작 애용했을 텐데. 이제야 깨달은 것이 참으로 애석할 뿐. 가끔 어멍을 향한 질투에 눈먼 날엔, 내 무릎 위에서 곁에 있는 행복이를 보고 으르렁댔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천사 미소를 지었다를 반복하는데, 지킬박사와 하이드 저리 가라다. 진짜 혼자 보기 아까운 진풍경이다.


우리 집 저녁 풍경, 직접 찍느라 수십 번의 촬영 끝에 건진 사진. 어멍 무릎은 우리 집에서 제일 인기 있는 아이템(?)

이런 싸이에게는 절대 먼저 다가가선 안된다. 고양이를 대할 때처럼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다.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조금만 크게 올려도 화들짝 놀랄 만큼 소심하고 예민하다. 강제로 들어 올리는 건 절대 금물. 안아서 무릎 위에 앉혀놓으면 바로 도망가 버린다. 먼저 다가가면 도망가고, 포기하면 다가온다는 고양이와 하는 짓이 똑같다. 싸이의 애정을 얻기 위해선 밀당의 고수가 되어야만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단 한 가지, 행복이나 하늘이를 예뻐하면 된다. 그럼 게임 끝. 어멍을 향한 애정에 불만 살짝 당겨주는 센쑤가 필요하다. 


조카가 놀러 왔어요. 공평하게 쓰담해줘야 합니다. 균형이 중요한 법이죠.

싸이의 타고난 예민함과 섬세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싸이가 잠잘 땐 발걸음조차 조심스럽다. 부스럭만 거려도 쉬이 깨어 너무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잠잘 땐 웬만큼 큰소리가 나지 않는 한 결코 깨는 법이 없는 행복이와 참 대조적이다. 아주 상전이 따로 없다. 가끔 이 꼴 저 꼴 어멍 꼴 보기 싫을 때는 안방 침대에 짱 박혀 혼자 자기도 한다. 가끔은 내 의도를 꿰뚫고 있는 것도 같다. 약을 먹이거나 발톱을 깎거나 목욕을 준비 중이거나, 뭔가 본인이 싫어하는 일을 도모할라치면 귀신같이 백 프로 알아채기 때문이다. 이럴 땐 하늘이와 똑같다.


반면 우리 집 고양이 하늘이는 개냥이다. 


타고난 개냥이에서 성인이 되면서 절반(?) 개냥이로 바뀌긴 했지만, 뼛속 깊이 개냥이의 기질이 흐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5개월령에 뒷마당에서 찡찡거리며 울고 있다가 나에게 구조되었는데, 구조된 직후부터 나를 언제 보았다고 애교가 하늘을 찔렀다. 앉아있으면 어딘가에서 슬그머니 나타나 무릎을 차지하고, 골골이+꾹꾹이+뽀뽀 무한 애교 삼종세트를 보여줬다. 저 시절 나는 매일같이 하늘이에게 심장 공격을 당했다.


어릴 땐 그리도 개냥이 짓을 많이 하더니, 이젠 컸다고 어멍과 내외를 하는 건지 원.

어른 냥이가 되고는 무릎에 올라오는 일은 많이 줄었다. 하늘이는 고양이 다운(?) 고양이로 자라난 셈이다. 많이 실망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도도고상한 오리지널 고양이 뭉치와 살아본 나로서는 이마저도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오히려 드물게 한 번씩 무릎에 올라올 때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고양이스런 밀당에 완전 말린 셈이다. 


밀당의 귀재, 요물 중의 요물^^ 하늘이.

퍽 도도하고 쌀쌀맞아지긴 했지만, 잘 때는 어느샌가 슬그머니 꼭 내 머리맡으로 다가와 잠들어 있다. 오히려 잘 때는 싸이나 행복이보다 더 내 옆자리를 지킨다. 물론 자다가 발견한 내가 너무 예뻐 머리를 쓰다듬으면 건들지 말라고 손가락을 깨물기는 하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외출에서 돌아오면 몸을 배배 꼬고 배를 뒤집으며 애교를 부린다. 역시 30센티정도 적당한 안전거리를 두긴 하지만. 어멍이 아는 척을 하면 '냐옹~' 하고 대답을 하는 것도 신비하다. 뭉치는 아무리 불러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역시 하늘이는  다가만 가도 그르렁대는 천상 개냥이.

고양이의 탈을 쓴 강아지 싸이와, 강아지의 탈을 빌려 쓴 고양이 하늘이와 함께 살다 보니, '강아지는 이렇고, 고양이는 저렇다'라고 논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매일매일을 일상 속에서 깨닫는다. 싸이는 싸이만의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하늘이는 하늘이만의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고양이라서, 강아지라서가 아니라, 그저 싸이고 하늘이고, 행복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멍 빼고 삼 남매가 안방에 모여 자는 중. 

가끔 싸이를 보며 함께 잤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을 갖고, 하늘이를 보며 조금만 더 개냥이스러웠으면 하고 바란다. 지나친 욕심임을 잘 안다. 나의 애정은 어쩌면 일방통행식이 아닌가 늘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다. 원하는 걸 해주고, 원하지 않는 걸 하지 않는 단순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사랑임을 잘 알면서도 그게 참 쉽지 않다. 싸이를, 하늘이를 안아 올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나는 오늘도 조금씩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가슴 한 편의 허전한 마음은 이리저리 굴려대도 그저 좋다는 행복이를 껴안고 뒹굴며 채우면서.


행복이 없었음 좀 허전할 뻔했다. 나는 세상에서 행복이가 제일 만만하다. ㅎㅎ

나는 강아지 같은 고양이 하늘이, 고양이 같은 강아지 싸이, 그저 행복이 다운 강아지 행복이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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