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네 식구다.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그리고 나.
나 어멍, 올해 벌써 여덟 살이 된 첫째 싸이, 둘째 행복이(알고 보면 행복이도 여덟 살이라는 건 안 비밀), 그리고 이제 겨우 2살 된 하늘이. 다견+묘 가정이 평화롭긴 쉽지 않다고들 한다. 특히 나처럼 혼자서 케어하는 경우라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 집은 평화롭다. 아니 그런 편이다(소소한 사건사고야 늘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상극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우리 집에선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다. 우리 집 막내, 고양이 하늘이는 싸이와 행복이를 참 좋아한다. 특히 싸이를 향한 애정은 거의 '사생팬' 수준이다. 싸복이 남매와 산책 갔다 집에 오면 나보다도 싸이를 더 반기고(나는 본체만체, 싸이에겐 애정 뿜 뿜), 시시때때로 싸이의 가슴팍을 물어댄다. 처음엔 변태 고양이(?)인가 싶었는데, 아마도 놀아달라는 신호이자 애정표현인 듯싶다.
재미난 건, 싸이의 반응은 그저 시큰둥하다는 것. 가끔 한 번씩 놀아주긴 하지만, 행복이를 대하는 것과는 그 반응이 천지차이. 대개는 멀뚱하게 쳐다볼 때가 더 많고, 잠자는 데 다가오면 종종 개(?)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내가 어멍 봐서 너랑 놀아주긴 하는데, 봐주긴 하는데, 좀 적당히 해라. 나 너 별로 안 좋아하거든' 쯤이 우리 싸이의 속마음이 아닐는지. 상황이 이런대도, 가끔씩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하늘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은근슬쩍 늘 싸이 뒤꽁무니를 쫓는다.
하늘이에겐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콧대 높은 우리 싸이도 행복이 앞에서는 상황이 바로 역전된다. 행복이를 향한 싸이의 애정은 가히 경이로울 지경이다. 시시때때로 행복이에게 기대거나 치대는 것은 기본이고, 매일 여기저기를 핥아주느라 참 바쁘다. 가끔 웹캠으로 지켜보면 낮에도 열심히 행복이를 핥아주는데 참 그 정성이 갸륵하다(여기서 중요한 건 어멍은 잘 안 핥아준다는 사실~). 이것은 행복에게만 집중되는 특급 서비스다.
행복이에 대한 애정이 폭발하는 순간은 어멍과 행복이만 외출했다 돌아오는 순간이다. 행복이가 병원을 자주 가는 편이라 왕왕 그럴 때가 있다. 우리 둘이 집에 들어올 때 더욱 반가운 건 행복이다. 어멍에 대한 애정도 만만치 않은 편이지만, 행복이 앞에서는 왠지 내가 2등으로 슬쩍 밀리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날 두고 어디 갔다 온 거냐며, 온몸으로 행복이에게 말하는데, 은근슬쩍 질투가 날 지경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싸이를 향한 행복이의 반응이다. 정확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반응. 처음엔(그러니까 애기 때는) 아예 싸이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나마 시간이 흘러 그래도 싸이에게 좀 관심을 가지는 편(나이 먹고 철들었나?). 하지만 행복이가 싸이를 핥아주는 걸 본 적이 없는 걸 보면(어멍은 맨날 핥아준다), 싸이의 애정 또한 하늘이처럼 일방통행인 셈이다. 행복이는 싸이를 대할 땐 엄청 쿨한 느낌인데, 어멍을 대할 때는 또 이야기가 백팔십도 달라진다.
일전에도 밝힌 적 있듯이, 행복이는 어멍 바보다. 행복이에게는 그저 어멍이 제일 중하다. 잠뽀답게 숙면을 하다가도, 불현듯 깨어 꼭 내 앞으로 다가와 앉는다. 그때 눈빛이 딱 그렇다. '어멍~ 어디 갔었어. 내가 찾았잖아.' 야, 가긴 어딜 가. 난 계속 여기 있었거든.' 그렇게 다가와선 집중적으로 얼굴을 핥다가, 잠시 후엔 백발백중 나에게 몸을 치댄다. 얼마 전 보모를 불러놓고 4박 5일 여행을 갔을 적엔, 보모 왈~ 산책하는데 자꾸 집을 안 떠나려고 해서 애 좀 먹었단다. 이 바보 개가 어멍이 집에 있는 줄 알았던가 보다. 행복이에겐 어멍이 일 순위다. 싸이고, 하늘이고 그저 동거견(묘) 일뿐 그리 중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하늘이 <싸이 <행복이 <어멍, 우리 집 일방통행 직진식 애정 생태계 피라미드 순서다. 결국 우리 집 애정 생태계의 최상위는 나, 어멍인 셈이다. 하늘이는 싸이를, 싸이는 행복이를, 행복이는 어멍을. 니들이 아무리 서로 물고 물리는 애정관계래봤자, 결국 결론은 모두 나, 어멍에게로 향한단 말이렸다. '내 이래 봬도 우리 집의 최고 권력자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해보지만, 무슨 최고 권력자의 삶이 이렇게 고단한가 싶어 금세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밥도 내가 해줘, 똥오줌도 내가 치워줘, 돈도 나만 써, 일도 나만해. 최고 권력자는 개뿔, 이쯤 되면 최고의 '마당쇠'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 최고 권력자인 나 어멍은, 애정 생태계 피라미드 최하층인(?) 하늘이에게만은 유독 쩔쩔맨다. 사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하늘이는 좀 무섭다. 나를 향해 하악질을 하는 순간에는 몹시 '오싹'하기까지 한 것이 이러다 물리지 않을까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만만함을 넘어서 다소 우습기까지 한(특히 행복이가) 싸복이 남매와는 천지차이인 것이다. 싸복이남매는, 음, 어멍이 달라고 하면 간 쓸개 다 빼줄 것 같은 느낌이다. 반면, 하늘이는 내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하면, 어멍에 대한 애정을 쓱~ 아주 쉽게 거두어 갈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다 예쁘기는 왜 이렇게 예쁜 건지. 그러니 하늘이에게는 매번 쩔쩔매는 수밖에.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 집의 실세 중에 실세는 결국 막내 하늘이가 아닐까. 애정 생태계의 최고 상위를 차지한 줄 알고 잠시 우쭐했었는데, 아. 이것은 어리석고 어리석은 어멍의 거대한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뭐, 최고 권력자면 어떻고, 마당쇠면 어떻겠는가. 그저 우리 네 식구 평화롭고 행복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삼 남매를 위해 일을 하고, 밥을 차리고, 똥을 치운다. 이렇게 우리 집은 오늘도 평화롭게 굴러간다. 아, 근데 뭔가 조금은 억울한 느낌이다. 이 느낌은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