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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행복이 특집 편
(식탐 대마왕 행복이)

by 달의 깃털

강아지들은 대부분 식탐이 강하다. 사람처럼 복잡하게 머리 굴릴 것 없이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싸복이 남매도 당연히 그렇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 산 이후로는, 방바닥이나 침대에 널브러져 과자봉지를 뽀시락 거리며 군것질하는 즐거움을 잃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분들은 다 공감할 거다. 식탁(정해진 장소)이 아닌 곳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강아지들에겐 너무 잔인한 일이요. 사람에게도 버티기 쉽지 않은 일이다(강아지들의 애절한 눈빛을 무시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다).


20170728_104828.jpg 식탁이 아닌 곳에서 먹을 경우, 바로 저 짝이 난다.

사람들도 식탐에 개인차가 있듯이, 강아지들에게도 개견(犬) 차이가 있다. 싸복이 남매를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행복이는 식탐 대마왕이다. 싸이와 비교해도 그렇고, 다른 강아지들과 비교해 보아도 평균 이상(?)이다. 한때는 놀리느라, '돼지 나라 삼겹살 공주' '돼지의 탈을 쓴 무늬만 개' 등으로 칭하기도 했다. 잘 먹는 게 너무 예뻐, 많이 먹이다 보니 과거 38kg까지 나가는 비만견이었는데, 다이어트하느라 행복이도 나도 개(?) 고생을 꽤나 한 후에 지금은 28kg를 유지하고 있다(인간승리, 견 승리다). 비만견이었던 시절이나 식단 조절로 배 꽤나 고플 지금이나 음식에 대한 집착은 언제나 상상 초월이다.


KakaoTalk_20200702_164510198.jpg 어멍이 귤을 깐다. 집중 또 집중. 하나 줄지도 몰라.

음식은 좀처럼 씹는 법이 없다. 애기 때는 급하게 삼켜 종종 토하기도 했는데, 대개는 고스란히 음식의 형체가 살아있었다. 개껌이 그 형체 그대로 나와 기함한 적도 있다(개껌 주고 바로 외출해 씹어먹으려니 했지, 통째로 삼킬 줄은 정말 몰랐다). 그때는 초보맘이라 개들이 씹지 않고 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걸 몰라(아니 어떻게 음식을 그냥 삼켜?), 진지하게 수의사쌤과 상담을 했던 기억도 있다. 여덟 살이나 된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다. 간식을 똑같이 줘도, 아껴먹는 싸이와 비교해 순식간에 먹어치우다 보니, 늘 개불쌍 모드로 싸이가 먹는 걸 구경만 해야 하는 처량 맞은 신세가 되기도 한다.


KakaoTalk_20200702_170810871.jpg 집중 또 집중. 싸이 오빠가 남길 수도 있다.

사료 한알도 오도독 오도독 씹어먹는 싸이는, 배가 부를 땐 준 간식을 먹지 않고 숨기기도 한다. 안 먹는 음식이 없는 행복이에 비해(행복이는 산책 가면 나뭇가지도 돌도 흙도 남의 똥까지 주워 먹는다), 싸이는 식성도 제법 까다로워, 먹지 않는 음식도 꽤 많다. 강아지들이 대개 식탐이 강하다고 하지만, 행복이는 내가 본 강아지 중 단연 으뜸이다. 당연히 음식과 관련된 사건사고도 많을 수밖에 없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몇 개 적어보았다.


KakaoTalk_20200702_210522853.jpg 행복이의 시그니처 표정 '멍'

# 사건 일지. 1 어묵볶음

어묵볶음을 한 접시 요리했다. 아주 잠깐 마당에 나갔다 왔는데, 접시가 텅 비었다. 정말 아주 찰나였는데. 어묵볶음에 양파가 상당히 들어있어 완적 식겁했다(강아지는 양파를 먹으면 위험하다). 다행히 행복이는 대형견이라 소량은 먹어도 큰 지장이 없다고(인터넷을 뒤져보니) 나와있어 한시름 놓았던 기억이 난다. 온갖 양념이 뒤범벅된 어묵볶음은 얼마나 맛났을까 싶다.


# 사건 일지. 2 마른오징어

오징어 볶음을 하려는데, 오징어가 너무 딱딱한 거 같아 물에 불려놓았다. 역시 아주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 많던 마른오징어가 다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 그 많은 걸 먹어치울 수 있다니. 그저 놀랍고 또 놀라울 뿐이다. 이러한 사건 이후 나는 음식만 식탁에 둔 채 결코 혼자서 마당에 나가지 않는다. 잠깐 나가더라도 꼭 싸복이 남매를 데리고 나간다(우리는 일심동체~).


KakaoTalk_20200702_170731048.jpg 어멍이 밥을 먹는다. 어쩌면 한 입 줄지도 몰라.

# 사건 일지. 3 브라질너트

비닐포장이 되어 있는 건 못 먹을 줄 알았다. 브라질너트가 건강에 좋다길래, 큰 맘먹고 구입했다. 많이 먹으면 배앓이를 한다고 해, 하루에 3~4개씩 채 몇 번 먹지도 못했는데,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브라질너트 포장 잔해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수십 개가 들어있는 한 봉지를 다 먹어치운 것이다. 음식에 관한 한 튼튼한 위장과 대장을 자랑하는 행복이는, 많이 먹으면 큰일 난다는 브라질너트 한 봉을 다 먹고도 아무런 뒤탈이 없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행복이다.


KakaoTalk_20200702_210615396.jpg 뒤뜰 냥이 밥그릇을 수돗가에 놨더니, 그릇에 붙은 통조림이라도 좀 먹어보겠다고 물어 옮겨다 놓고 용쓰는 중.

# 사건 일지. 4 햇반

맛없어도 먹는다. 설마 햇반 같은 건 안 먹을 줄 알았다. 전자레인지에 돌리지도 않은 햇반이 결코 맛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식탁 위에 올려놓은 햇반 하나가 작살이 나 있다. 그 날 행복이 털에 묻은 밥알을 일일이 떼며 계속해서 입으론 쌍욕을(먹을 거면 묻치지나 말지~) 날렸다. 대단하다 우리 행복이.


KakaoTalk_20200702_170346473.jpg 확대해서 보세요. 입 주변에 흙이 잔뜩 묻어 있어요. 마당에서 흙 주워 먹다 딱 걸린 행복 씨.

# 사건 일지. 5 고양이 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고양이 캔 사건이다. 나는 정말이지 캔을 따 먹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을 못 했다. 행복이한테 여러 차례 습격을 당한 후, 우리 집에서 싱크대나 식탁 위에 음식 비슷한 것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캔만은 안심하고 올려놓았는데, 설마 하니 똑똑하지도 못한(?) 우리 행복이가 캔을 따 먹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고양이 캔이 굴러다니는데, 아. 뿔. 싸. 행복이를 보니 조금 과장해서 피범벅이 되어있다. 캔 뚜껑에 베이는 줄도 모르고, 캔 좀 따먹겠다고 그 난리를 피운 것이다.


KakaoTalk_20200702_165244382.jpg 많이 다친 줄 알고 정말 식겁했지만, 그 와중에도 증거를 남기겠다고 한 컷 찍음.

불가사의한 건, 피를 제법 많이 흘렸는데도 다친 곳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회복력이 좋은 건지, 침과 섞여 피를 많이 흘린 것처럼 보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처음엔 사실 엄청 크게 놀랐고(많이 다친 줄 알고), 많이 다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강아지가 캔 뚜껑을 따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먹겠다고 아픈 줄 모르고 용을 썼을 행복이를 상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똑똑하진 않아도, 음식을 향한 투지와 집착만큼은 돋보이는 우리 행복이가 나는 왠지 자랑(?)스럽다.


KakaoTalk_20200702_165719946.jpg 행복이의 두 번째 시그니처 표정 '졸린 멍'

소똥도 먹고, 나뭇가지도 흙도, 돌도(덜 딱딱한 돌은 이빨로 쪼개어 삼켜, 가끔 똥에서 잘게 부서진 돌이 발견되기도 한다. 마당에 천지에 깔린 게 돌이라, 매번 말리기도 지쳐 나는 거의 포기 상태다) 먹는 우리 행복이의 식탐은 정말 대단하다. 뿐만 아니라 강아지들은 절대 먹지 않는다는 풀도 뜯어먹는다(강아지는 풀을 먹지 않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속담도 있다). 주로 강아지풀을 좋아한다. 덕분에 소화 안 된 강아지 풀이 똥꼬에 걸려(강아지풀은 길쭉하다). 내가 가끔 당겨서 빼내 줘야 하는 아주 더러운(?) 일도 생긴다. 내가 행복이 덕에 별의별 경험을 다해 본다.


KakaoTalk_20200702_170833669.jpg 행복이 너란 강아지, 요상한 매력 터지는 강아지.

처음엔 너무 아무거나 주워 먹어 걱정이 참 많았다. 저런 것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위장에 남아 있으면 건강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이는 다행히도 밖으로 잘 배출하고 있는 듯하다. 가끔 떵(?)을 확인해보면, 쓸데없는 게 참 많이도 나온다. 때때로 장난감의 잔해까지도. 종류 가리지 않는(먹을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식성으로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서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정말 행복이의 위장과 대장은 대단하다 싶다.


KakaoTalk_20200702_164611954.jpg 조카가 아이폰으로 찍어준 사진인데, 행복이가 아닌 것 같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사고를 쳐서 존재감을 팍팍 나타내는 행복이가 없었다면 혼자 사는 내 일상이 참으로 쓸쓸했을 것이다. 말 잘 듣는 싸이는 싸이대로, 말 안 듣는 행복이는 행복 이대로, 내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같은 존재가 되었다. 어멍의 무료하고 심심한 일상을 특별하고 재미있는 일상으로 바꿔주는 싸복이 남매, 특히 행복이 너, 어멍이 사랑하는 건 물론이고,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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