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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l 03. 2020

오랜만의 행복이 특집 편
(식탐 대마왕 행복이)

강아지들은 대부분 식탐이 강하다. 사람처럼 복잡하게 머리 굴릴 것 없이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싸복이 남매도 당연히 그렇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 산 이후로는, 방바닥이나 침대에 널브러져 과자봉지를 뽀시락 거리며 군것질하는 즐거움을 잃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분들은 다 공감할 거다. 식탁(정해진 장소)이 아닌 곳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강아지들에겐 너무 잔인한 일이요. 사람에게도 버티기 쉽지 않은 일이다(강아지들의 애절한 눈빛을 무시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다).


식탁이 아닌 곳에서 먹을 경우, 바로 저 짝이 난다.

사람들도 식탐에 개인차가 있듯이, 강아지들에게도 개견(犬) 차이가 있다. 싸복이 남매를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행복이는 식탐 대마왕이다. 싸이와 비교해도 그렇고, 다른 강아지들과 비교해 보아도 평균 이상(?)이다. 한때는 놀리느라, '돼지 나라 삼겹살 공주' '돼지의 탈을 쓴 무늬만 개' 등으로 칭하기도 했다. 잘 먹는 게 너무 예뻐, 많이 먹이다 보니 과거 38kg까지 나가는 비만견이었는데, 다이어트하느라 행복이도 나도 개(?) 고생을 꽤나 한 후에 지금은 28kg를 유지하고 있다(인간승리, 견 승리다). 비만견이었던 시절이나 식단 조절로 배 꽤나 고플 지금이나 음식에 대한 집착은 언제나 상상 초월이다. 


어멍이 귤을 깐다. 집중 또 집중. 하나 줄지도 몰라.

음식은 좀처럼 씹는 법이 없다. 애기 때는 급하게 삼켜 종종 토하기도 했는데, 대개는 고스란히 음식의 형체가 살아있었다. 개껌이 그 형체 그대로 나와 기함한 적도 있다(개껌 주고 바로 외출해 씹어먹으려니 했지, 통째로 삼킬 줄은 정말 몰랐다). 그때는 초보맘이라 개들이 씹지 않고 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걸 몰라(아니 어떻게 음식을 그냥 삼켜?), 진지하게 수의사쌤과 상담을 했던 기억도 있다. 여덟 살이나 된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다. 간식을 똑같이 줘도, 아껴먹는 싸이와 비교해 순식간에 먹어치우다 보니, 늘 개불쌍 모드로 싸이가 먹는 걸 구경만 해야 하는 처량 맞은 신세가 되기도 한다.  


집중 또 집중. 싸이 오빠가 남길 수도 있다.

사료 한알도 오도독 오도독 씹어먹는 싸이는, 배가 부를 땐 준 간식을 먹지 않고 숨기기도 한다. 안 먹는 음식이 없는 행복이에 비해(행복이는 산책 가면 나뭇가지도 돌도 흙도 남의 똥까지 주워 먹는다), 싸이는 식성도 제법 까다로워, 먹지 않는 음식도 꽤 많다. 강아지들이 대개 식탐이 강하다고 하지만, 행복이는 내가 본 강아지 중 단연 으뜸이다. 당연히 음식과 관련된 사건사고도 많을 수밖에 없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몇 개 적어보았다. 


행복이의 시그니처 표정 '멍' 

# 사건 일지. 1  어묵볶음 

어묵볶음을 한 접시 요리했다. 아주 잠깐 마당에 나갔다 왔는데, 접시가 텅 비었다. 정말 아주 찰나였는데. 어묵볶음에 양파가 상당히 들어있어 완적 식겁했다(강아지는 양파를 먹으면 위험하다). 다행히 행복이는 대형견이라 소량은 먹어도 큰 지장이 없다고(인터넷을 뒤져보니) 나와있어 한시름 놓았던 기억이 난다. 온갖 양념이 뒤범벅된 어묵볶음은 얼마나 맛났을까 싶다. 


# 사건 일지. 2 마른오징어 

오징어 볶음을 하려는데, 오징어가 너무 딱딱한 거 같아 물에 불려놓았다. 역시 아주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 많던 마른오징어가 다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 그 많은 걸 먹어치울 수 있다니. 그저 놀랍고 또 놀라울 뿐이다. 이러한 사건 이후 나는 음식만 식탁에 둔 채 결코 혼자서 마당에 나가지 않는다. 잠깐 나가더라도 꼭 싸복이 남매를 데리고 나간다(우리는 일심동체~).


어멍이 밥을 먹는다. 어쩌면 한 입 줄지도 몰라.

# 사건 일지. 3 브라질너트

비닐포장이 되어 있는 건 못 먹을 줄 알았다. 브라질너트가 건강에 좋다길래, 큰 맘먹고 구입했다. 많이 먹으면 배앓이를 한다고 해, 하루에 3~4개씩 채 몇 번 먹지도 못했는데,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브라질너트 포장 잔해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수십 개가 들어있는 한 봉지를 다 먹어치운 것이다. 음식에 관한 한 튼튼한 위장과 대장을 자랑하는 행복이는, 많이 먹으면 큰일 난다는 브라질너트 한 봉을 다 먹고도 아무런 뒤탈이 없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행복이다.


뒤뜰 냥이 밥그릇을 수돗가에 놨더니, 그릇에 붙은 통조림이라도 좀 먹어보겠다고 물어 옮겨다 놓고 용쓰는 중.

# 사건 일지. 4 햇반

맛없어도 먹는다. 설마 햇반 같은 건 안 먹을 줄 알았다. 전자레인지에 돌리지도 않은 햇반이 결코 맛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식탁 위에 올려놓은 햇반 하나가 작살이 나 있다. 그 날 행복이 털에 묻은 밥알을 일일이 떼며 계속해서 입으론 쌍욕을(먹을 거면 묻치지나 말지~) 날렸다. 대단하다 우리 행복이.


확대해서 보세요. 입 주변에 흙이 잔뜩 묻어 있어요. 마당에서 흙 주워 먹다 딱 걸린 행복 씨.

# 사건 일지. 5 고양이 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고양이 캔 사건이다. 나는 정말이지 캔을 따 먹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을 못 했다. 행복이한테 여러 차례 습격을 당한 후, 우리 집에서 싱크대나 식탁 위에 음식 비슷한 것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캔만은 안심하고 올려놓았는데, 설마 하니 똑똑하지도 못한(?) 우리 행복이가 캔을 따 먹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고양이 캔이 굴러다니는데, 아. 뿔. 싸. 행복이를 보니 조금 과장해서 피범벅이 되어있다. 캔 뚜껑에 베이는 줄도 모르고, 캔 좀 따먹겠다고 그 난리를 피운 것이다. 


많이 다친 줄 알고 정말 식겁했지만, 그 와중에도 증거를 남기겠다고 한 컷 찍음.

불가사의한 건, 피를 제법 많이 흘렸는데도 다친 곳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회복력이 좋은 건지, 침과 섞여 피를 많이 흘린 것처럼 보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처음엔 사실 엄청 크게 놀랐고(많이 다친 줄 알고), 많이 다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강아지가 캔 뚜껑을 따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먹겠다고 아픈 줄 모르고 용을 썼을 행복이를 상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똑똑하진 않아도, 음식을 향한 투지와 집착만큼은 돋보이는 우리 행복이가 나는 왠지 자랑(?)스럽다.


행복이의 두 번째 시그니처 표정 '졸린 멍'

소똥도 먹고, 나뭇가지도 흙도, 돌도(덜 딱딱한 돌은 이빨로 쪼개어 삼켜, 가끔 똥에서 잘게 부서진 돌이 발견되기도 한다. 마당에 천지에 깔린 게 돌이라, 매번 말리기도 지쳐 나는 거의 포기 상태다) 먹는 우리 행복이의 식탐은 정말 대단하다. 뿐만 아니라 강아지들은 절대 먹지 않는다는 풀도 뜯어먹는다(강아지는 풀을 먹지 않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속담도 있다). 주로 강아지풀을 좋아한다. 덕분에 소화 안 된 강아지 풀이 똥꼬에 걸려(강아지풀은 길쭉하다). 내가 가끔 당겨서 빼내 줘야 하는 아주 더러운(?) 일도 생긴다. 내가 행복이 덕에 별의별 경험을 다해 본다.


행복이 너란 강아지, 요상한 매력 터지는 강아지.

처음엔 너무 아무거나 주워 먹어 걱정이 참 많았다. 저런 것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위장에 남아 있으면 건강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이는 다행히도 밖으로 잘 배출하고 있는 듯하다. 가끔 떵(?)을 확인해보면, 쓸데없는 게 참 많이도 나온다. 때때로 장난감의 잔해까지도. 종류 가리지 않는(먹을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식성으로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서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정말 행복이의 위장과 대장은 대단하다 싶다.


조카가 아이폰으로 찍어준 사진인데, 행복이가 아닌 것 같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사고를 쳐서 존재감을 팍팍 나타내는 행복이가 없었다면 혼자 사는 내 일상이 참으로 쓸쓸했을 것이다. 말 잘 듣는 싸이는 싸이대로, 말 안 듣는 행복이는 행복 이대로, 내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같은 존재가 되었다. 어멍의 무료하고 심심한 일상을 특별하고 재미있는 일상으로 바꿔주는 싸복이 남매, 특히 행복이 너, 어멍이 사랑하는 건 물론이고,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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