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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l 17. 2020

당신은 강아지와 함께할 자격이
있습니까?

가끔씩 강형욱이 나오는 '개는 훌륭하다'란 프로그램을 본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개를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또 한편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개를 너무 '오냐오냐'하기만 해서 문제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마리를 키우면서 제대로 된 규칙을 만들어 놓지 않거나, 너무 통제하지 않아서, 또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저 넘치게 사랑을 주다 보니 문제가 되는 사례가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개를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경우만큼은 아니지만,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강형욱은 주로 이런 반려인들을 대상으로 일명 '거절 교육'을 시킨다. 적절하게 규칙을 만들고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개들은 훨씬 문제를 덜 일으키는데, 매번 보면서도 참 신기하다. 


나는 종종 싸복이 남매를(특히 행복이를) '사고뭉치견'이라고 부른다. 철딱서니가 없고 소소하게 사건사고를 많이 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지인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싸복이 남매를 보곤, 정말 착하고 얌전하다고 논평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니들이 몰라서 그래, 그런 얘들이 아니라고). 저런 반응을 몇 번 접하고, 또 다른 이들 반려견과 나름 비교를 하다 보니, 행복이가 '사고뭉치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멍 나 겁나 억울해. 내가 왜 사고뭉치견이야?

그런 일이 있었다. 행복이 피부 때문에 피부 전문병원에 원정진료를 간 적이 있었다. 말티즈와 서로 하도 짖어 진료가 끝난 후, 얼른 행복이 먼저 차에 태웠다. 차 안에서 얌전히 나만 바라보던 행복이를 보던, 그 말티즈 반려인들이 감탄해 마지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훈련을 시킨 건가요? 어쩜 저렇게 얌전할 수가 있죠?' '아니... 그게... 저... 훈련을 시킨 적은 없는데요.' 자신들의 강아지는 저렇게 차에 혼자만 두면 아주 난리난리 개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소소한 사건사고를 친다 해도, 우리 행복이가 비교적 교육이 잘된 바른(?) 강아지 축에 속한다는 사실을. '개훌륭' 출연 강아지들을 보면서도 매번 깨닫는다. 싸복이 남매는 정말 모범견이라는 사실을.   


'어멍 우리도 집안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다소 억울해 보이는 싸복이 남매 사진이라 가져와 봄.

문제를 크게 일으키진 않아도 원하는 걸 줄 때까지 짖고 떼쓰거나 보채는 강아지들이 꽤 많다. 싸복이 남매는(싸이는 두말할 것도 없고) 결코 떼쓰거나 보채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비가 와서 새벽 산책을 하지 못한 나는, '산책부터 시켜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갔다. '산책 얼른하고 무한도전 봐야지' 생각뿐이었던 나는, 다음날 아침에서야 알았다. 내가 산책과 무한도전에 꽂혀 저녁밥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밥도 먹이지 않고 산책만 갔다 왔다는 사실을(하루 두 끼 먹는데 저녁 걸렀으니 엄청 배고팠을 거다). 모두가 싸복이 남매가 저녁밥을 달라는 '신호'를 아무것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밥을 굶겨도 끙끙댈 줄 조차 모르는 알고 보면 참 착한 싸복이 남매.

행복이는 자주 장염에 걸린다. 대형견의 경우, 그럴 땐 하루 정도 밥을 굶기는 것이 약을 먹이는 것보다 좋다. 문제는 행복이만 굶기기 어렵다는 데 있다. 싸이만 몰래 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음식에 관해서라면 눈치 백 단 인 행복이를 당최 속일 수가 없다. 행복이가 너무 힘들게 뻔하므로, 싸이 입장에선 몹시 억울하겠지만, 별수 없이 같이 굶긴다(이럴 때만 일심동체). 저런 경우에도 싸복이남매는 한 번도 밥 달라 보챈 적이 없다. 그저 어멍이 밥을 안 주나보다 할 뿐이다(이렇게 착한 아이들이 있나). 


너희들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이니 똑같이 굶어야 되는 거 아니냐. 억울해도 별수 없다.

그뿐인가. 어멍이 '안돼'를 외치는 일에는, 포기와 체념이 빠르다. 가끔 보면 강아지들이 앞발로 보채며 엉기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얌전한 싸복이 남매도 가끔씩 살짝 개길 때가 있는데 단호박 어멍에겐 어림 반푼 어치도 통하지 않는다. '어디 감히? 어멍이 안된다는데?'라는 눈빛 한 방이면 그저 도로 깨갱이다. 생각해 보았다. 싸복이 남매는 어쩌다 이리 모범견이 되었을까. 원래 성향이 그런 것일까. 어멍에게 비법이 있는 걸까. 나는 답을 강형욱이 알려주는 '거절 교육'에서 찾았다. 


유기견인 싸이를 7개월령에 입양했을 때, 오랫동안 '강아지를 키울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새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 5일의 휴가를 냈다. 싸이를 데려오고 2~3일이 되었을 때, 싸이는 약간의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잘 때는 정확히 내 머리맡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고, 잠깐이라도 내가 보이지 않으면 끙끙대고 불안해했다. 마당에 잠깐 나가는 일도 눈치가 보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분리불안이구나 싶었다. 별로 아는 것 없는 초보 어멍이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이의 시그니처 표정 '개 똘망'

분리불안을 고치는 데 좋다는 두 가지 행동을 지키기로 원칙을 세웠다. 집에 들어온 후 '얌전해질 때까지 투명 개 취급하기'와 '잠자리 분리하기'였다. 후자는 결코 쉽지 않았다. 며칠 새 이미 내 머리맡에서 자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안방 문을 잠그고 들어간 첫날, 싸이는 밤새 하울링을 하고, 문지방을 박박 긁어댔다.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성격이 '단호박'인 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다음날은 아예 안방 문에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쳤다. 충분히 높다고 생각했는데 하울링 하던 싸이가 담장을 넘었다. 자다가 나가, 단호하게 혼을 냈다. 다음날부터는 담장도 넘지 않았다. 정확히 1주일이 지나자, 싸이가 포기하고 적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분리불안 초기 증상은 저 멀리로 싹 사라졌다.


싸이는 식탁의자에 종종 올라옵니다. 밥상에 절대 손대지 않는 '매너견' 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제는 함께 자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독립적인 싸이는 꼼지락대 성가신 어멍과 함께 자는 걸 싫어한다. 머리맡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싸이를 생각하면 참 대단한 발전이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싸이가 모범견이 된 것은 아무래도 초기의 단호한 교육 때문인 듯싶다. 뭘 모르고 하긴 했는데, 다소 막무가내 방식이긴 했어도 저것이 바로 '거절 교육'이 아니었을까. 강아지 하울링 소리를 처음 들어 몹시 당황스러웠고, 또 싸이가 안쓰러웠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야, 이 과정을 거쳐야,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행복이 조차도 어멍이 아무리 맛난 걸 먹어도 쳐다보기만 할 뿐 보채지 않습니다. 보챈대야 허벅지에 턱을 괴는 정도죠.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단호박 어멍이었다. 규칙을 많이 정해놓았고, 지키지 않을 경우(특히 행복이가), 단호하게 혼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나도 많이 물러져, 저 시절 정해놓았던 규칙들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사실 싸복이남매가 말을 잘 들으니, 굳이 통제를 할 필요를 못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별 다른 문제 없이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는 건, 저 시절의 단호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무조건적으로 강아지에게 사랑을 퍼주기만 하면 모든 게 다 잘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랑과 함께 적절한 규칙과 통제(훈육)가 필요하다. 사람 아가를 키울 때도 너무 '오냐오냐'가 만사를 그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랑과 훈육, 자유와 통제의 적절한 조화가 강아지와 사람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강형욱이 말했다. '적절하게 통제하는 걸 어려워하는 반려인들은 대개 보면, 응당 반려견들에게 해줘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라고. 적절한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 그리고 산책, 또 너무도 당연한 존중과 사랑 같은 것들, 기본을 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어멍이 집에 없을 때 행복이가 대형사고(?)를 가끔 치긴 하지만, 대체로 우리 집은 보시는 것처럼 평화롭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게는 그런 당당함이 있다. 혼자서 싸복이남매를 케어하므로 다소 부족함이 있는 건 사실이라 해도, 더 이상은 불가능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당당함. 그런 당당함이 자신감 있게 싸복이 남매를 훈육하고 통제할 수 있는 태도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싸복이 남매도 알고 있지 않을까. 어멍이 저리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다소 억울하더라도(?) 혹은 불편하더라도 어멍의 요구는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거라고. 어멍의 말은 법이며 곧 진리라고. 그렇게.


싸이와 하늘이의 뒷모습이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일천만 반려인구시대라고 한다. 네 집 걸러 한 집씩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만큼 우리의 반려문화와 인식이 성숙한지는 의문이다. 가끔씩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너는 왜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를 선택했는지, 너는 함께 사는 반려동물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똑바로 잘 살고 있는지.'라고. 반려동물에게 좋은 '반려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과 다름없지 않을까. 나는 좋은 '반려인'이 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좋은 사람이냐'라고.


반려동물과 살고자 하는, 혹은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잊지 말고 틈틈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좋은 반려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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