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의 대 향연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이 마당있는 집에 살 수 있을까

by 달의 깃털

벌레라면 기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개의 여자들은 그렇다. 난 좀 다르다. 어려서부터 유난스럽게 무서워하지 않았다. 모두들 몸서리치는 '바퀴벌레'를 봐도 그저 시큰둥한 편. 아마도 내가 벌레라면 식겁하는 사람이었다면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꿈 조차 꾸지 않았을 것이다. 단언컨대, 벌레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마당 있는 집'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의외로 시골이 도시보다 벌레가 많지 않다'는 글을 우연히 읽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시골은 절대 그렇지 않다. 세상의 모든 벌레가 다 우리 집에 모여있는 것만 같으니까.


첫 번째 살았던 '마당 있는 집'은 정말 첩첩산중이었다. 7개월을 살면서 깨달았다. 내가 본 벌레는 지구 상의 벌레 중 단 0.1프로 밖에 안 되는 거라는 걸. 세상에 벌레가 이토록 다양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만만치 않다. 집 뒤가 바로 산이기 때문이다. 집 안 팍으로 거미가 득실거리는 것은 기본(거미줄 걷는 건 포기했다. 걷자마자 바로 또 치므로 의미가 없다)이다. 어느 날은 현관 처마에 무당벌레 수십 마리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욕실에는 습기를 좋아하는 벌레가, 파리는 사시사철 우리 집에 상주하며, 6월부터 11월까지는 모기들의 천국이다.


거미.jpg 무방비 상태로 거미줄을 얼굴로 맞이해본 적이 있는가. 종종 겪는 일인데 좀체 적응은 쉽지 않다.

우리 집 모기는 '산모기'다. 일반 모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해가 지면 밖에 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고, 한여름엔 한낮에도 밖에 나가기 힘이 들 정도. 아침에 잠깐 텃밭에 채소따라 가거나 고양이 밥 주러 가는 사이에도 어김없이 모기에 한두 방 물리기 마련이다. 이놈의 산모기는 옷도 뚫는다. 마당일을 좋아하는 나는 주말 한낮에 마당에서 일할 때가 많은데, 이사 초기에는 정말 엄청나게 모기에 많이 물렸다. 궁여지책으로 모기장 옷을 구입했다.(그런 게 있는지 마당 있는 집에 살고 나서 알았다) 모기장 옷을 입으면 안전하냐고? 다 괜찮은데 궁둥이는 아니다. 앉아서 일을 하면 궁둥이 쪽 옷이 팽팽히 당겨지면서 모기가 모기장 옷 사이로 빨대로 꽂는다. 모기란 녀석, 정말 대단치 아니한가.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라는 책이 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다. 원래도 그다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던 나는, 이 책은 읽은 후에 벌레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가급적이면 벌레를 죽이지 않는다.(물론 모기나 파리, 벌은 예외다) 예외가 또 있다. 꼽등이나 귀뚜라미 같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벌레들은 무서워서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때도 꼭 미안한 마음은 갖도록 한다. 다음 생에는 내가 벌레로 태어나겠다고 약속하면서 말이다.


무당벌레.jpg 무당벌레는 대개는 좋아한다. 우리는 해충인지 아닌지 보다는 보기에 좋은지 아닌지를 가지고 벌레에 대한 '호불호'를 정하는 게 아닐까.

나는 한 여름밤 풀벌레 소리를 좋아한다. 창문을 열고 자야 하는 무더운 한 여름밤, 창 아래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듣는 것이 나를 참 행복하게 한다. 한때 '풀벌레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기도 했을 만큼. 풀벌레 소리를 듣는데 열중했던 어느 시절에는 몇 가지 풀벌레 소리들을 구분할 수 있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유난히 청량하고 맑은 소리로 우는 풀벌레가 있었다. 나는 그 소리가 유독 좋았다. 어느 날이었다. 내가 무서워하는 곱등이류의(팔짝팔짝 뛰어다니는) 엄지손가락 만한 벌레가 들어왔다. 나는 에프킬라를 사정없이 뿌렸다. 그때였다. 벌레가 울기 시작한다. 아. 내가 유독 좋아했던 그 풀벌레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학대하는 나쁜 남자가 된 기분. 딱 그 기분이었다.


나비.jpg 우리집 마당에서는 흰나비를 자주 볼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벌레도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 생태계의 일원으로 존중하고 있다기보다는, 나는 '벌레'를 대하는 방식도 다른 '좀 깨어있는 사람'이지 하는 자만심을 즐겼던 건 아닐까. 지구는 내 것이 아니니까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쓰레기조차 줄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벌레를 대하는 나의 마음이 그렇게 다소 이기적이라 해도, 어쨌든 나보다 약한 존재에 대해 너그럽고, 자연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러한 욕심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종종 더 좋은 결과를, 삶의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므로.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건, 세상의 온갖 종류의 벌레와 함께 산다는 것. 벌레들을 너그럽게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오늘도 난 갈등한다. 벌레를 죽여야 하는지 적당히 모르는 척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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