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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l 18. 2017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매주 금요일, 나는 시골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아버지랑 전화 통화하는 것은 너무 어색하고 낯설다. 좀처럼 전화하기가 쉽지 않다. '습관들이기'를 잘하는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하기 위해 금요일로 날을 정했다. '스스로와 한 약속에 엄한 나'답게 빼먹지 않고 금요일 저녁마다 아버지와 통화를 한다. 처음에는 '저녁 드셨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말고는 한 말이 전혀 없어 채 2분을 넘기기도 힘들었던 통화는, 이제 제법 5분 넘게 통화가 이어지는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다.


아버지는 올해로 일흔여덟. 10여 년 전에 위암 수술을 받으신 후 체력이 급격히 약해지시다가, 급기야 작년에는 치매 초기와 불안장애 진단을 동시에 받으셨다. 안 그래도 연세에 비해 기력이 쇠했던 아버지는, 신경정신과 약을 드시고 난 후부터는 눈에 뜨게 더 많이 약해지셨다. 치매에 걸리면 평균적으로 7년 정도 산다고 한다. 노쇠한 아버지를 보면, 아버지와의 이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닌 '정해져 있는 이별'이 나를 철들게 하는 걸까. 아버지와는 일절 전화통화를 하지 않던 무뚝뚝한 딸이었지만, 나는 이제 삼 남매 중에 유일하게 전화를 자주 하는 '기특한 둘째 딸'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어릴 적 살았던 한옥집 마당에서 젊은 시절 아버지와 언니와 함께. 아버지에게도 이렇게 젊은 시절이 있었다니.

내 또래의 부녀관계가 대개 그러하듯이, 아버지와 나의 관계도 특별할 건 없다. 무뚝뚝하고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와, 그 못지않게 무뚝뚝한 딸. 어릴 땐 아버지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목말라했던 적도 있었는데, 나도 이제 쉰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되고 보니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 가 싶다. 까칠하고 예민한 데다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내게 큰 상처였다. 엄마에게 폭언을 퍼붓던 아버지. 간혹 부서져 있는 살림들. 아버지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쌍욕을 하는 걸 듣던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 장면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 나이가 들고, 상담을 공부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조금씩 아버지를 어머니를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 아빠가 엄마한테 쌍욕을 하는 사람이었지'라고 다른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할 만큼 저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첩에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사진에 온통 엄마뿐이다.

한때 내가 멀쩡한데(?)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매번 이상한 넘들만(?) 만나는 것도 어쩌면 저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안다. 분명한 내 의지이고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대개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젊은 시절 아버지 또한 그저 미숙하고 불완전하고 나약한,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기에는 부족한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불완전한 인간이었던 그렇지 않았던, 아버지가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건, 그냥 아버지는 특별할 것 없는 내 아버지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비록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고 해도.


서슬이 퍼랬던 아버지가 늙고 약해지고 병들어 가는 것을 보는 일은 참 슬프다. '내가 얼마나 살겠어'라고 자조하는 아버지에게 '왜 이래, 아빠, 에이, 좀 더 사셔야지~' 하며 농을 건넨다. 한때는 영민함이 넘쳤던 아버지. 하지만 이제 서서히 기억을 잊어가는 아버지. 언젠가는 사랑하는 가족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될 아버지. 누군가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특별한 부녀관계는 아니라 할지라도 늙어가는 아버지는 그저 애틋하기만 하다.


다부진 몸매에 잘생긴 얼굴. 노년의 지금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늙고 병들고 언제 가는 죽게 되는 것. 그것이 누구나 알고 있는 삶의 이치다. 질병, 수술, 입원, 퇴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 역시 늙고 병드는 것의 슬픔과 쓸쓸함을 실감하고 있다. 찬란했던 젊은 시절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스러지는 것의 아쉬움과 쓸쓸함을 이제 배워가는 것이다. 아버지와 이별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아직 먼 일이라 해도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이별을 준비한다. 준비한다고 해서 이별이 덜 슬픈 건 아니겠지만.


나는 매주 금요일이면 아버지와의 통화를 할 것이고, 한 달에 한 번쯤에 시골집에 내려가겠지. 언젠가 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날. 금요일 저녁이 유별나게 쓸쓸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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