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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Oct 17. 2017

길냥이 '뭉치'와 인연이 닿다

뭉치를 처음 본 건 일 년 전쯤일까. 


앞 집 옥상 난간에 고양이가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길냥이가 아닌 회색빛의 '러시안 블루'다. 신기하군. 그렇게 지나쳤다. 그러다가 우연히 뒤꼍에서 마주쳤다.(나는 뒤뜰에 길냥이 급식소를 만들어 밥을 주는 나름 캣맘이다) 그날도 밥 주러 가는 길이었는데, 어랏, 그때 보았던 회색 고양이가 떡 하니 나를 바라본다. 다른 길냥이들처럼 도망가지 싶었는데. 이런, 도망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심지어 자기를 쓰다듬으란 신호를 보낸다. 우리 집에서 밥 먹는 길냥이가 한 두 마리가 아닌데 모두들 나를 보면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그런데 뭉치는 처음부터 살갑게 사람 손을 탔다. 이런 신기한 일을 보았나.


실물이 훨씬 예쁜 뭉치. 틈틈이 보는 사이라 예쁘게 사진 찍어주기도 쉽지 않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 뭉치를 만났는데 앞집 잔디마당에 앉아있다. 앞집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자기 집에서 아들이 밥을 주니 눌러살다 시피하고 있단다. '뭉치'란 이름도 지어줬단다. 오호, 그렇구나. 그 후로 여러 번 뒤꼍에서 밥을 먹는 뭉치와 마주쳤다. 자세히 보니 배가 조금 나와있다. 임신했나 싶어 안쓰러움이 더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후 만난 뭉치는 배가 홀쭉해져 있다. 내 예상대로 임신 중이었던 거다. 앞집에 가서 새끼를 보았는지 물었다. 앞집의 앞집이 빈집이라 사람이 살지 않는데 거기에 새끼를 낳았단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주머니도 모르겠단다. 그 빈집은 자물쇠로 꽁꽁 잠겨 있다. 게다가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는 일. 가본데도 사실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뭉치를 중성화 수술을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길냥이들과 달리 사람 손을 타는 뭉치에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암컷 길냥이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몇 해 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저대로 두면 계속해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할 것이 불 보듯 훤했다. 혼자만의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닌데 수술을 해줘야 하나. 나도 그달 벌어 그달 쓰는 월급쟁이에 불과한데. 불쌍한 유기동물을 모두 다 내가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모르는 척할까. 고민하는 나에게 친한 직장동료가 한 마디 한다. '오지랖' 도 태평양이라고.


통조림 캔을 열심히 먹고 있는 뭉치

그러다 결심했다. 에라 모르겠다. 한 번 시도를 해보자. 그렇게 맘먹었을 때 우연찮게 아침에 뒤꼍에서 뭉치와 마주쳤다. 이게 웬 떡. 이전에 수술시켜줄 것을 대비하여 한 두 번 슬쩍 안아 올려 봤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은 터였다. 뭉치를 들어 올렸다. 순순히 안긴다. 하지만 1차시도 실패. 하필 마당에 나와있던 싸복이 남매와 마주치자 나의 팔에 손톱자국을 남기고 도망을 친다.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았다. 2차 시도. 일단 가까운 보일러 실에 가두는데 성공. 출근을 해서 강아지가 아프다고 뻥(?) 치고 집으로 달려왔다. 조심스럽게 보일러실 문을 연다고 열었는데 날쌔게 도망간다. 이런. 2차 시도도 실패. 외출까지 달고 왔는데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뭉치를 찾으러 앞집으로 갔다. 허걱. 죽은 줄 알았던 새끼들이 살아있다. 그것도 세 마리나. 앞집 마당에서 살고 있단다. 


중성화 수술 후 우리 집에 하루 묵어갈 때의 모습. 힘들고 지쳐 계속해서 잠만 잤다.

아주머니와 공동작전으로 '족발'로 유인하는데 성공, 뭉치의 중성화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수술 후 의사쌤이 하루는 데리고 있다 풀어주는 게 좋겠다고 해서 우리 집 작은방에서 하룻밤 재웠다. 뭉치는 사람을 홀리는 무한 매력을 가진 고양이였다. 다음 날 뭉치를 보내려는데 너무나 아쉬웠다. 앞집 마당에 뭉치를 놓고 돌아서는데 짐짓 나를 따라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으나 웬걸. 그것은 나의 기대였을 뿐. 뭉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서운한 마음에 뭉치를 보며 농담을 건네 본다. '돈값해야 해. 오래오래 살아.'


우리 집 보일러실에서 통조림을 먹고 있는 뭉치

뭉치를 집 안에 들이는 것을 고민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자유롭게 동네를 오가며 살던 뭉치를 집 안에 강제로 들이는 게 옳은 일인 건지. 세 마리 새끼는 저대로 두어도 되는 건지. 앞집에서도 크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밥이나 주는 정도인데, 겨울이 오면 얼어 죽지나 않을는지. 아직까지도 고민 중이다. 요즈음은 특히 뭉치를 자주 만난다. 볼 때마다 통조림 캔을 따 주었더니 확실히 나를 많이 따른다. 아마도 부지런히 우리 집에 드나드는 듯하다. 어제 일이다. 오후에 잠깐 집에 들렀다. 마침 앞집에서 우리 집으로 건너오려던 뭉치. 마당의 강아지들을 본 후 멈칫한다. 대문 넘어 내가 고개를 내민다. 뭉치가 나를 알아본다. 내가 말한다. '뭉치야~ 돌아서 뒤뜰로 와' 뒤꼍에는 뭉치가 와 있다. 뭉치가 반가운 내가 얼른 통조림 캔을 따준다. 


뭉치야~ 아줌마가 통조림은 실컷 먹게 해 줄게~ 우리 집에 자주 놀려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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