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외하러 만난 미팅 자리에서 기획안이 담긴 파일을 매니저 이사님에게 내밀자 갑자기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작가님 왼손잡이시구나? 갑자기 어떻게 아셨어요? 했더니 파일이다른 사람과 반대로 들어있단다. 흠. 의외의 곳에서 티가 나네. 나는 왼손잡이다. 우리 집은 친가 외가 통틀어 가까운 사람 중엔 아무도 왼손잡이가 없는데, 외할머니 한테서 유전되어 나 혼자만 왼손을 쓴다. 지금이야 우뇌발달에 좋다고 부모들이 권하기도 한다지만 내가 어렸던 8-90년 시대에 왼손으로 쓴다는 것은 '굉장히 별난' 일이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밥 먹는 손 들어보세요. 하면 왼손을 드는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다들 쳐다볼 때의 기분이 참 묘했다. 오묘한 기분을 넘어 불편도 따라왔다. 왼손으로 하는 가위질은 아팠고 공책에 글씨를 쓰면 왼손 새끼손가락이 연필을 죄다 훑어 버리니 공책은 번지고 손바닥은 새카매져 있었다. 1인용 책상은 모두 오른손잡이용이라 나는 늘 왼팔이 공중에 뜬 채 어정쩡 하게 필기하며 수업을 받아야 했다. 남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은 겪는 건 불편함이었지만, 억울한 건 의지와 달리 매 순간 반항아로의 시선을 느낄 때였다.패닉이 ‘난 왼손잡이야~’ 를 불렀다는 건 그게 정해진 룰을 지키지 않는 반항으로 보인다는 거였다. 눈에 띄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언제 고칠 거냐는 말은 수시로 들었는데. 오른손잡이에 맞춰 세팅해 놓은 세상에서 기질을 꺾지 않는 나는 센 고집으로 버티는 놈이 되었다. 친가 할아버지는 어디! 경주 김씨 양반 집에서 여자가 상놈처럼 왼손을 쓰냐며 본인 세상 뜨기 전에 뜯어고쳐놔야 한다고 매일 말씀을 하셨다. 왼손으로 못 쓰게 붕대를 감아놔 보라거나, 일주일 동안 오른 손을 쓰면 만원을 주겠다거나, 서예를 오른손으로 시켜보라는 등 특급 미션들이 따라왔지만 3년간 서예를 정성스럽게 해도 나는 아무도 못 볼 때 왼손을 썼다.
근데 갑자기 왼손이야기를 하느냐고. 가뜩이나 눈에 띄는 데 나는 그 왼손으로 하루 종일 뭔가를 쓰고 그리는 애였다. 그리고 그것이 내 정체성이 되었다, 왼손으로 쓰는 애.
뒤에 '글씨 좀 쓰는 애'라는 말이 붙은 건 중학교 때 였다. 어느 날 친구가 글씨를 가만 보더니 왼손으로 쓰는 데도 예쁘다며 책에 이름을 써 달라고 부탁해 온 게 시작이었다.
별 생각 없이 교과서에 이름을 쓱쓱 써 주었는데, 진짜로 황당하게 그게 입소문이 났다. 두 명. 세 명. 써 달라는 애들이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 다른 반에 약간 노는(!) 친구들까지 찾아왔다. 뭐지 갑자기 날 괴롭히려는 건가? 했는데 용건은 빵까지 사들고 책을 들고 와 이름을 써달라는 거였다. 나는 친구들의 이름을 묻고 기쁜 마음으로 글씨를 써주었다. 내가 글씨가, 내 글이 다른 사람이 선물로 여겨주는 게 기분이 좋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때였다.
지금 보니 그 때가 작가의 시작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쓰는 즐거움이 누군가를 위해 써 주는 즐거움이 된 순간 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