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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Oct 23. 2021

왼손잡이가 글씨 좀 쓰네

쓰는 즐거움, 써 주는 즐거움


어려서부터 익숙한 일이었다. 책상에 앉아 무언가 쓰고 있으면  사람들은 한참 지켜보다 답을 찾았다는 듯 말하곤 했다. 아까부터 이상했는데, 너 왼손잡이구나.

그 시절 왼손으로 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은 우뇌발달에 좋다고 부모들이 권하기도 한다지만

나는 늘 피곤한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밥 먹는 손 들어보세요. 하면

왼손을 드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쟤 왜 저래? 하고 쳐다볼 때의 기분이란 묘했는데

기분을 넘어 개인적인 불편함 도 따라왔다.

왼손 가위질은 아팠고 공책에 글씨를 쓰면 왼손 새끼손가락이 연필을 죄다 훑어

공책은 번지고 손바닥은 새카매져 있었다.

대학교 책상은 모두 오른손잡이용이라 왼팔은 공중에 뜬 채 수업을 받아야 했다. 남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은 겪는 건 불편함이었지만, 억울한 건 의지와 달리 매 순간 반항아로의 시선을 느낄 때였다.

그거 언제 고칠 거냐는 말은 수시로 들었는데. 오른손잡이에 맞춰 세팅해 놓은 세상에서 기질을 꺾지 않는 나는 센 고집으로 버티는 놈이 되었다. 양반 출신 친할아버지는 여자가 어디 상놈처럼 왼손을 쓰냐며 본인 세상 뜨기 전에 뜯어고쳐놔야 한다고 하셨다. 불편하면 안 쓸 테니 붕대를 감아보라거나 오른손으로 쓰다 보면 되겠지 하고 서예를 배우길 3년.  일주일 간 왼손을 안 쓰면 용돈을 주겠다는 말에 낑낑 써서 돈을 기어코 받아내도 붓글씨 외에 연필은 왼손으로 들었고. 용돈을 받고 나면 바로 손을 고쳐 쓰곤 했다. 아, 굳이 고집 피운 것은 아니다.

어린 나에게 오른손에 비해 왼손이 편했을 뿐.


왜 손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나는 끄적끄적 쓰는 일을 좋아했고

계속 쓰다 보니 왼손이 사람들 눈에 자주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이 내 정체성이 되었다, 왼손으로 쓰는 애.

뒤에 '글씨 잘 쓰는 애'라는 말이 붙은 건  우연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글씨를 가만 보더니 왼손으로 어떻게 이렇게 써? 하곤 책에 이름을 써 달라고 부탁해 온 게 시작이었다.

교과서에 이름을 쓱쓱 써 주었는데 별 것 아닌 일이 입소문이 나면서 두 명. 세 명. 써 달라는 애들이 늘어났다.

다른 반 친구까지 쉬는 시간에 자리로 책을 들고 찾아와 줄 서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재미있었다.  혼자  쓰 글씨를 다른 사람이 선물로 여겨주는 게 기뻤다.

지금 보니 그  때가 작가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 이후 진짜 열심히 쓰기 시작했으니까.

쓰는 즐거움이 써 주는 즐거움이 된 그 순간 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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