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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Nov 26. 2023

내 이름은 이창훈, 마르셀로라고 해요

150일간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장기여행을 하면 좋은 점이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굉장히 여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시간이 쫓기지 않아도 되고 하루 정도 푹 쉬어도 괜찮다. 그렇기에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자주 가는 카페가 생기고 지도를 보지 않고 길을 다닐 수 있게 되며 사람과 관계를 형성해 갈 수 있게 된다.

여행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임에도 장기여행에서는 잠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 잠깐의 시간 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게 된다. 조금 더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의 삶을 통해 다시금 나의 삶 또한 드려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한다.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 보고타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조금은 느껴볼 수 있게 되었던 좋은 기회였다.




보고타에서 2주를 지내게 된 것은 물론 카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때문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었던 것 같다.


2주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헤어졌다.

그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 면면들을 기억에서 꺼내어 보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보고타에 온 지 2~3일쯤 됐으려나? 첫날부터 함께 있었던 우석이를 더해 사이타 게스트 하우스에는 20대 남자들만 총 6명이 모이게 된다.


나이대는 거의 비슷한 또래들이었다. 그중 내가 가장 많았고, 거의 다 20대 초 중반이었다.  다들 한 살 터울씩이어서 더 재미있었다.


강표와 현식이는 서로 친구 사이로 페루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잠시 여행을 왔다. 그리고 창훈이와 인태는 혼자서 콜롬비아까지 혼자서 왔다.


이렇게 6명의 남자들이 며칠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왼쪽 위부터 우석이 강표 인태 그리고 가장 오른쪽 밑에 현식이 나 셀로 창훈이


여기서 빠질 수 없는 한 사람이 더 있다.

그의 이름도 창훈이다. 그런데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바로 콜롬비아 사람이다.

이름은 마르셀로, 줄여서 셀로라고 불렀다.


그는 창훈이(한국인)의 지인으로 앱을 통해서 만났다고 했다. 창훈이가 한국말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콜롬비아 친구를 만났다고 하여 호스텔로 초대했다.

실제로 외국인이 이렇게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건 당시 샘 해밍턴 이외에 처음 봤었다.


정말 위화감 하나 없이 한국말로 대화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어떻게 한국말을 이렇게 잘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알고 보니 그의 어머니께서는 삼성전자 보고타 지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게 됐고,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도 많아졌다.

그렇게 그는 대학을 진학하고 2년간 어학당을 다니면서 한국어를 익히게 되었다.


실제로 무한도전이나 한국 예능을 자막 없이 본다고 하니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페이스 북에서 그가 활동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얼굴만 빼면 그냥 한국인이다.

여느 한국 10대들이 쓰는 은어들도 곧잘 썼으며, 심지어 그의 친구들도 비슷했다.


이렇게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어까지 잘하다니... 약간 국뽕이 차오를 뻔했다.




한국말을 잘하는 창훈이 마르셀로 덕분에 콜롬비아 보고타 여행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할 수 있었다.

셀로의 차로 그가 다니는 대학교도 방문해 보았고, 그가 사는 집에도 초대되었으며, 그의 친구들도 만나 함께 놀 수 있었다. 콜롬비아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직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어서 너무 고마운 친구였다.


그는 매일 아침이면 사이타 호스텔로 출근(?)을 했다.

여러 관광지를 직접 대려다 주며 가이드를 자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신기했다.

그래서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며 매일 아침마다 찾아오는지 궁금했다.


아마 그가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한국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한국어를 현지인들에게 뽐낼 수 있다는 것에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으니~ 나로 말하자면 대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100% 경상도 말을 네이트브로 쓰는 사람이다.


아마도 그는 태어나서 네이티브로 경상도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한 번은 차를 타고 가면서 말을 걸었는데 내가 한 질문과 전혀 다른 답을 하는 게 아닌가.

뭔가 이상해서 셀로에게 내가 하는 말 알아 들었어? 하고 물으니 약간 화를 내는 듯하면서 당연히 알아들었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엔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은근히 한국어 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국뽕은 내가 차오르는 게 아니라 셀로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함께 갔던 소금성당이 있던 마을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보통 20대 외국인이 한국을 좋아하면 K팝류의 음악을 듣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이창훈이라고 부르고 마르셀로라고 하는 한국인이면서도 콜롬비아인은 좋아하는 한국 가수가 무려 이문세이며 김건모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김광석도 알고 있더라.. 이 사실을 듣고 우린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자신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줬던 선생님의 플레이리스트를 그대로 흡수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잔잔하고 감성적인 노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곤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ㅎㅎ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됐지만 그럼에도 약간 의아스러워 진짜 좋아하는 걸그룹 없냐고 엄청 물어봤더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진짜 특이한 친구다.




콜롬비아는 이미지상 위험하고 여행하기 어려운? 그런 나라로 많이들 생각할 것 같다.

그래서 어두운 밤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으려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뭔가 삘을 받았는지 남자 7명이서 밤에 놀러를 나가게 됐다.

20대 한국인 남자 6명과 콜롬비아 현지인 1명 이렇게 말이다.


사실 우리끼리 있었으면 안 나갔을 텐데 현지인 셀로가 있으니 뭔가 든든했다.

그래서 술집도 가고 음식점도 가고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게 놀았다.

아마 셀로가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던 것 같다.


셀로는 내가 2주간 콜롬비아에 머무르는 내내 함께 했고, 떠나는 날에는 버스 터미널에 직접 배웅까지 와줬던 잊을 수 없는 친구이다.

꼭 한국을 오라고 말했지만 아직도 오지 않은 건지 이제는 소식을 접할 길이 없다.


그가 한국에 오면 먹고 자는 건 충분히 다 해줄 수 있는데 말이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꼭 경상도 사투리도 가르쳐 주고 싶다 ㅎㅎ


그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보고 싶은 마르셀로 잘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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