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일간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며칠간 함께 지냈던 친구들을 한 명씩 떠나보냈다.
여행은 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떠남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그 와중에 셀로(창훈)만이 여전히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숙소로 새롭게 온 사람은 해주와 성식이 그리고 선영누나이다.
선영누나는 보고타 일정이 짧아 이틀 정도밖에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대신 해주와 성식이는 그래도 비교적 길게 함께해서 셋이서 자주 밖을 돌아다녔다.
보고타에 있으면서 참 많은 것들을 했다.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것들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첫 번째는 보고타에서 가장 유명한 보테로 미술관을 갔던 것이다.
콜롬비아 메데진 출신인 보테로는 자신만의 그림체가 아주 뚜렷한 예술가였다.
유명한 그림으로는 모나리자를 통통하게 그린 것을 꼽을 수 있다.
사실 미술관은 잘 가지 않는 나에게는 그리 큰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고타를 왔으니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기꺼이 가 보았다.
무엇보다 해주가 엄청 가고 싶어 해서 갔는데 그전에는 이런 미술관이 있는 줄도 몰랐다.
미술관을 잘 가지 않던 나도 직접 가서 작품을 보니 좋았고, 미술관 시설도 꽤 괜찮았다.
두 번째는 몬세라떼라는 산을 함께 올라갔던 것이다.
낮에는 걸어서 한 번을 올라갔고, 밤에는 야경을 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갔었다.
낮에 걸어 올라갈 때는 John이 이르길... 자신은 너무 자주 올라가서 30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1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축지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 2배나 빠르냐고 했지만,
실제로 가보니 정말 가파르고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John은 30분 만에 올라와 여유롭게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몬쎄라떼는 밤에 올라가는 게 정말 기가 막힌다.
보고타의 야경을 한눈에 다 내려다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세 번째는 콜롬비아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알겠지만 남미라는 대륙이 전체적으로 축구에 미쳐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등 남미 축구선수 중 유명한 사람도 많이 있다. 메시도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그래서 남미 곳곳을 다니며 간접적으로 축구를 겪을 수도 있고, 동네에 공 차는 애들도 많다.
당시 해주와 성식이는 내가 처음 보고타에 왔을 때 방문했던 소금성당을 가기로 했다.
난 이미 한 번 다녀왔기 때문에 굳이 갈 필요가 없어서 의도치 않게 숙소에 혼자 남게 되었다.
항상 나와 함께 했던 셀로도 그들을 태워다 주기로 해서 함께 떠났다.
혼자 숙소에 있으니 심심하기도 했고, 보고타에서 할 만한 건 다 해봐서 뭘 할지 모르겠더라..
마침 호스텔에 농구공이 있길래 근처에 작은 운동장이 있어서 혼자 농구를 하러 갔다.
그런데 이미 몇몇 콜롬비아 애들이 거기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농구장에서 말이다.
혼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축구하는 걸 구경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좀 끼워주지...'
그런데 무리 중 한 친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스페인어로 뭐라 말을 했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자 그 친구는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영어라니... 콜롬비아에서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이 친구.. 영어를 하네??
같이 한 게임하자고 해서 30분 정도 같이 축구를 했다.
처음에는 다치면 안 되니까 가볍게 뛰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어디 그렇게 되나..
생각보다 콜롬비아 애들 승부욕이 강해서 나도 모르게 전력질주를 하게 되었다.
도저히 힘들어서 이제 못하겠다고 하니 그들도 이제 가 봐야 한다며 축구를 끝냈다.
같이 공차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이더니 다들 영어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들 중 몇 명은 대학생이고, 알바로 영어학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한다고 했다.
(선생님을 할 정도의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덕분에 콜롬비아에서 축구도 다 해보고,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네 번째는 해주의 친구인 카렌이라는 현지인 친구와 함께
콜롬비아 현지 커피를 직접 내려서 먹을 수 있는 체험을 해 보았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커피 원산지로 콜롬비아는 특히나 유명하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는데 콜롬비아에서 커피에 눈을 뜨게 되었다.
존 더치라는 카페였는데 주인아저씨가 스페인어로 설명을 하면
해주가 한국어로 통역을 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해주는 스페인어를 좀 할 줄 알아서 지내는 동안 참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한 번은 들고 다니던 노트북이 고장이 났었다.
핸드폰도 없었던 나에게 노트북마저 고장이 나면 더 이상 한국과 연락을 취할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쳐야 해서 John에게 노트북 고치는 곳을 물어봤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는 결국 해주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녀 덕분에 고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도움의 손길은 사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전히 카드가 해결되지 않아 그날도 호주 은행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영어로는 도저히 원활히 대화가 되지 않아 한국인 직원이나 통역을 바꿔달라고 했다.
그래서 바꿔 받았는데 갑자기 중국어를 하지 않는가?? 순간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끊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어 정확히 "KOREAN"이라고 말했음에도 또 중국인이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니하오?"라고 하는데 너무 어이없고 열받아서 전화기를 던질 뻔했다.
그렇게 빡쳐서 수화기로 욕을 퍼붓고 있으니 해주가 옆에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오빠 저는 이제 여행이 거의 마지막이라 곧 한국으로 돌아가요.
저한테 안 쓰는 체크카드가 있는데 여기에 돈을 이체시켜서 쓰면 되지 않을까요?"
순간 나는 그게 가능한가? 남에 명의의 카드를 내가 막 써도 되는 걸까?
혹시 불법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했다.
그런데 당사자가 그렇게 제안을 하니 적어도 불법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빨리 마무리 짓고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해주에게 그래도 괜찮냐고 물었고, 그녀는 흔쾌히 괜찮다며 국민은행 카드를 나에게 줬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인터넷 뱅킹이 블락되어 있어서 이체를 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전화를 걸어 시도했을 때는 뭔가 일이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내원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눈치였다.
그렇게 결국엔 인터넷뱅킹을 풀게 되었고, 돈의 일부를 해주의 카드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했던 카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이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해주와 선영누나를 서울 홍대에서 만났다.
너무 고마웠던 난 그녀에게 고기를 사주면서 덕분에 여행 즐겁게 했다고 전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한국으로 먼저 돌아간 그녀는 내가 체크카드를 쓸 때마다 날아오는 문자 덕분에
한 번 더 여행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더불어 나의 여행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고 했다.
아~ 오빠 이제 페루로 넘어갔네? 하면서 말이다. ㅋㅋㅋㅋ
이렇게 나의 여행은 늘 타인의 도움으로 이어나 갈 수 있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홀로 일어서야 했다.
2주간 지냈던 보고타를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