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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Dec 21. 2023

에콰도르 킬로토아 별, 바람, 그리고 사람

150일간 좌충우돌 중남미 여행기



하정이 누나는 아침 일찍 먼저 떠났고, 이제 우리가 떠날 차례였다. 키토를 떠나기 전 날 밤 정갑이 형과 민혁이 그리고 나는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 위해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너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만 따라 여행하는 느낌이 든다며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그런 곳을 한 번 가보자고 정갑이 형이 제안했다. 사실 나도 내심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찰나였기 때문에 적극 동의했다. 물론 민혁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정갑이 형이 추천해 준 곳은 해발 3,600미터에 있는 작은 마을 '킬로토아'였다. 그곳의 특징은 바로 큰 호수가 있었다. 마치 백두산 천지, 한라산 백록담처럼 밀이다.


킬로토아는 에콰도르의 안데스산맥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화산으로 물이 고여있는 화산호였다. 남미 여행을 조금 길게 하거나 오지로 여행을 다니는 분들은 가끔 이곳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원래 행선지는 바뇨스라는 곳인데 가는 길 목에 있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킬로토아로 가는 길은 사실 쉽지 않았다. 꽤나 번거로워서 찾아가기 힘들었다. 거기다가 스페인어를 하던 하정이 누나가 떠났기 때문에 혹시나 길을 잃으면 더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우린 가기로 했다. 왜? 우린 여행지이니까!


일단 버스만 3번을 타야 했다. 그래도 이때는 헤매지 않고 나름 잘 찾아갔던 것 같다. 총 3번의 버스를 타고 도착한 그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듬성듬성 집 같이 생긴 것들이 몇 채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대충 이렇게 생긴 마을이다. 구름이 엄청 낮은 걸 볼 수 있다.


약간 형채가 나름 깔끔한 호스텔을 가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대신 상태가 조금 좋지 않은 곳은 말도 안 되게 쌌다. 돈 없는 여행자인 우리는 당연히 가장 싼 호스텔을 선택했다. 하지만 밤이 되자 우린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방의 상태를 보자면 일단 와이파이가 안 되는 것은 기본이었고, 침대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샤워 시설도 당연히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화장실 물도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린 군대도 다녀온 남자 셋이었고, 어차피 그냥 오늘 하루만 있을 거라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속으론 전혀 괜찮지 않았다.


밥을 먹기 위해 근처 레스토랑 같은 곳을 가서 끼니를 때웠는데 진심으로 내가 먹은 파스타와 피자 중에서 가장 맛이 없었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정말 세차게 불었다. 그리고 해가 지니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추위를 피하고자 호스텔로 들어갔지만 전혀 피해 지지 않았다. 호스텔의 가장 큰 문제는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고 냉난방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우리 셋은 밤새 오들오들 떨면서 추위에 잠을 자야 했다.


이게 그나마 가장 호스텔 같은 거였는데 엄청 비싸서 못 갔다... 그냥 돈 좀 쓰고 저기 갔어야 했다. 하고 엄청 후회했음..


일단 가지고 있는 옷들을 모조리 다 꺼냈다. 그리고 바지를 두 세 겹으로 입고 위에는 가장 두꺼운 후드티와 군대에서 입던 깔깔이를 입고 그 위에 또 외투를 입었다. 남미 여행할 당시에는 그렇게 추운 날씨가 없어서 주로 얇은 옷들을 여러 벌 들고 다녔는데 이때는 패딩이 없는 게 너무 아쉬웠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바람 소리에 잠을 들 수가 없었고, 너무 추워서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셋은 그것도 웃기고 재미있다고 킥킥킥 거리면서 오지 않는 잠을 계속 청했다. 그곳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왜 남미를 오게 됐으며 여행을 끝내면 뭘 할 건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결국 우린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한 가지 기억에 많이 남았던 건 바로 밤하늘의 별이었다. 고도가 높았기에 더 가까이 보이는 듯했다. 내 생애 그때까지 그렇게 많은 별을 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너무 춥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단 1초도 밖에 서 있을 수 없었다.


꼬불꼬불 길을 따라 30분 정도 내려가면 화산이 보인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일찍 일어난 우리는 밤새 웅크리고 있던 몸을 폈다. 그리고 화산호를 보기 위해 가기로 했는데 진짜 마음 같아선 빨리 그곳을 뜨고 싶었다. 그래도 근처에 있어서 얼른 가서 보고 다음 행선지로 가자고 했다.


화산호를 보려면 마을에서 걸어 내려가야 했는데 한 30분 정도 걸으면 됐다. 문제는 올라올 때였다.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이런 느낌이다. 진짜 백두산 천지 같았다. 물고기 사는지 봤는데 안 보였음.


막상 내려가서 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안 보고 갔으면 아쉬울 뻔했다. 그곳에서 사진도 좀 찍고 하면 됐을 텐데 사진이 거의 없다. 주로 영상으로만 많이 찍어서 사진이 많이 없는 게 너무 아쉬웠다. 여행은 결국 기록으로 남기는 게 전부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여행을 끝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여행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름 기억에 많이 남았던 킬로토아였다. 당시엔 최악이라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힘든 만큼 추억이 깃든 곳이 되었다. 우리 셋은 그 후 킬로토아만 생각하면 추웠던 기억밖에 없어서 나중에 더욱 때마다 킬로토아를 생각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1박 2일 킬로토아에서 밤을 지새우고 우린 다음 행선지인 바뇨스로 행했다. 바뇨스에서는 또 다른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콰도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뇨스 그곳에서는 꽤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된다. 에콰도르 마지막 도시 바뇨스에서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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